이번 동남아 여행에서 마지막 도시를 가오슝(高雄市, Kaohsiung)으로 택한 이유는 오래 전부터 인연이 닿지 않아 타이페이 외에는 가 볼 수 없었던 도시였기 때문이다.(*참고: 대만 高雄市의 한글 표기는 '가오슝'이다. 이전 글의 '카오슝'을 '가오슝'으로 고쳐야겠다.) 가오슝은 대만 남부의 주요 도시이면서 홍콩, 싱가포르와 더불어 큰 컨테이너 항으로 유명하여 우리나라의 부산과 비견할 만하여 평소 관심이 있었던 곳이다.
오전에 크루즈선에서 하선한 후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신쭤잉역 근처의 가든빌라(Gardenvilla) 호텔로 갔다. 사실 신쭤잉역(高鐵左營站, Xin Zuoying Station) 근처라고는 하나 위치가 조금 애매해서 역까지는 걸어서 20분, 차로 약 8분 정도 거리에 있는 호텔이다. 우리가 이 호텔을 택한 것은 3월 2일 아침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기 위해 고속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그나마 역과의 거리가 가까운 곳이었던 이유가 컸다. 신쭤잉역 주변에는 이렇다할 호텔이 없었다.
시간이 일러 호텔에서는 체크인이 되지 않아 우리는 짐만 맡겨 둔 채 먼저 불광산불타기념관(Fo Guang Shan Buddha Museum)에 가기로 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박물관으로 알려진 이곳은 가오슝의 외곽 지역에 있어서 도심에서는 거리가 꽤 멀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려면 신쭤잉역에서 불광산까지 가는 E02 직행버스를 타야 한다. 오전 8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마지막 출발은 17:50) 매시 정각에 있다. 버스비는 편도 1인당 35TWD(약 1,500원) 정도로 싼 편이다.
E02 직행버스 시간표 https://www.kbus.com.tw/upload/timetable/harvard.htm
그런데 버스의 좌석이 다 차면 승객을 더 태우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시간을 더 기다려 다음 차를 타야 한다. 우리도 신쭤잉역에서 탈 때 줄이 끊겼는데 일정상 시간이 많지 않았던 까닭에 우리는 줄에 서 있던 현지인 세명과 1인당 150TWD(약 6,400원, 다섯명이니 총 750TWD)에 합승하는 조건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차에서 내리면 주차장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게 되는데 기념품 상점, 식당, 카페 등이 있는 예경대청(禮敬大廳)이다. 기념품은 불교 관련 상품들이 대부분이고, 불교 관련 건물인 만큼 채식 위주의 식당이 주를 이루고 있다. 평일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우리는 이곳의 한 식당에서 약 40여 분을 기다려 겨우 간단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들어왔던 맞은편 방향으로 예경대청을 나오면 바로 기념관의 중앙 광장이 나온다.
불광산불타기념관(Fo Guang Shan Buddha Museum)은 가오슝의 대수(大樹) 구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박물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박물관은 2011년에 개관하여 불교 예술, 역사, 문화에 대한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은 어마어마한 규모와 부지를 자랑하는데 전시관뿐 아니라 교육 센터, 도서관,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넓은 중앙 광장 등이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먼저 양 옆으로 탑 건물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 있고, 그 중앙 끝 본관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좌불상 '불광대불(佛光大佛)' 위엄 있게 앉아 있다. 우리는 양 옆 탑들의 행렬을 지나 본관으로 들어가 각 층별로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내부의 여러 전시실은 각각의 주제에 따라 부처님이나 보살들을 모시는 법당이 대부분이었다. 그외 불교 미술관, 도서관, 약 4,000명이 동시에 공양을 할 수 있다는 대제당, 몇 개의 수행센터 등이 있었다.
불광산불타기념관에서 다시 신쭤잉역으로 돌아기 위해 버스 출발 30여분 전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좌석이 다 차는 바람에 1시간을 더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야 했다. 참고로 시간이 있다면 불광산불타기념관(Fo Guang Shan Buddha Museum)이 아니라 종점인 불광사에서 하차해 불광산대불성(佛光山大佛城, Fo Guang Shan Great Buddha Land)을 먼저 가 기념관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고 내려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는 체력이 된다면 기념관에서 불광산으로 올라가서 사찰을 둘러보고 종점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타면 좌석 여유가 있으니 안전하게(?) 탈 수 있을 것이다.
기념관 버스 정류장에서 혼자 여행하고 있는 인하대 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장장 1시간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E02 직행버스를 타고 신쭤잉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 저녁 타이페이로 간다는 학생과 함께 역 안의 식당가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학생이 건강하게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와 헤어졌다. 호텔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편의점에서 이지카드를 샀다. 이지카드(Easy Card, 교통카드)는 카드값이 최하 100원(대만 달러, 카드 디자인에 따라 값이 다름)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하지만 버스, 트램, 지하철, 페리 등 거의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할 뿐 아니라 이용 시 할인이 적용된다. 단, 버스는 지하철에 비해 대체로 배차 간격이 길어 오래 기다려야 해서 다소 불편했다. 또 이지카드는 박물관, 미술관, 편의점 등 다양한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어서 혹시 떠날 때 충전 금액이 남으면 편의점이나 다른 가맹점(공항 내 식당이나 상점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에서 잔액을 쓰면 될 것 같다. 나는 다음 여행을 위해 이 카드에 잔액을 남겨둔 채 집으로 가져왔다.
치진섬(旗津, Cijin)은 폭이 약 1km, 길이가 약 11km(*섬의 전체 길이에 대한 정보는 2km에서부터 11km, 15km 등 다양해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 다만 구글 지도로 치진 페리 터미널에서 섬의 맨 끝점을 찍어 보니 약 9km였으니,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것은 아마도 11km일 것으로 생각된다.)로 세로로 긴 막대 모양의 작은 섬이다. 원래는 가오슝 본토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1975년 가오슝 항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항구의 두 번째 입구를 만들면서 육지와 분리되었다.
가는 방법은 우선 MRT 오렌지라인을 타고 시즈완역(西子灣站, Sizihwan Station) 1번 출구로 나온다. 나온 방향으로 6분 정도 걸어 구산 페리 터미널(鼓山輪渡站, Gushan Ferry Pier Station)로 간다. 여기서 치진 터미널(旗津輪渡站, Cijin Ferry)까지 페리를 타면 되는데 거리가 아주 가까워 페리로 5분이면 도착한다.
섬의 길이가 길고 대중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은 공용 자전거(Kaosiung Citybike)나 전기 스쿠터를 빌려 타고 섬을 둘러본다. '무지개 교회', '풍차 공원' 등은 예쁜 구조물이 설치돼 있어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인기가 많고, 섬의 동쪽 해안에는 '치진 석회암 동굴'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전거도 스쿠터도 빌리지 않고 오직 두 발로 걸어야 했기 때문에 페리 터미널에서 그나마 가까워 보이는 치허우 산으로 올라가 포대와 등대에 가 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따라가니 주차장 한쪽에 이정표가 있었다. 우리는 이정표에서 왼쪽에 있는 치허우 포대(旗後砲台, Cihou Fort)를 먼저 가 보기로 했다. 경사가 그리 급한 곳은 아니었지만 날도 더운데다 올라가기가 수월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왼쪽을 바라보니 바다가 보이는 시원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치진 해변(旗津海邊, Cijin Beach)이다. 이 해변은 특이하게도 모래사장이 검은색 모래로 이루어져 있고, 맑은 바닷물은 원호 모양으로 해안선이 수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다. '치진 해안공원'과도 인접해 있고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어 물놀이뿐만 아니라 서핑과 패러세일링 등 해양 스포츠도 즐길 수 있어 인가가 많은 곳이란다.
치허우 포대(旗後砲台, Cihou Fort 또는 Cihou Battery)는 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되어 폐허처럼 남겨져 있었다. 치진 지역은 오래 전부터 개발되었던 곳이고, 군사적으로도 중요해서 청나라 강희(康熙) 때 병영 포대를 설치하여 군대가 주둔했다. 이때 6개의 중국식 대포를 안착시키고 가오슝 항을 지켰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벽면과 계단 등 포대의 건축은 전통적인 중국 건축 양식으로 대부분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포대에서 등대가 있는 곳까지는 작은 오솔길로 이어져 있어 쉽게 갈 수 있다. 구글 지도로는 약 300미터, 6분 정도의 거리이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등대까지 걸었다. 가오슝 등대(高雄燈塔)는, 치허우 등대(旗後燈塔,Cihou Lighthouse) 라고도 불리는데, 1883년 영국 기술자에 의해 사각형 벽돌로 건축됐다. 일제 시기인 1918년에는 원래 등대 옆에 팔각형의 원형 지붕 벽돌 등대를 증설했고, 이후 개조 공사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등대는 1985년에 역사적 건물로 지정되면서 일반에 공개되었단다. 등대 외벽은 흰색, 높이는 15.2미터로 18km 거리의 바닷길을 비추고 있다.
등대 앞 전망대에 서면 대만 해협과 가오슝 시내가 모두 한눈에 들어와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굳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이유는 바로 이 풍경을 바라보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는 시원한 바다 풍경을 보며 뙤약볕 아래에서 발걸음을 옮기며 흘렸던 땀을 잠시 식힌 후, 다시 항구를 향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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