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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2024 년 1월~2월 태국-동남아 크루즈-대만 카오슝

동남아 크루즈 4. 기항지(2) 프에르토 프린세사, 보라카이

  대만을 제외하면 기항지 일곱 곳 가운데 베트남 푸미(Phú Mỹ), 브루나이 반다르세리베가완(Bandar Seri Begawan),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를 거쳐 왔으니 이제 필리핀 도시로 간다.

 필리핀(Pilipinas)은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군도(群島) 국가로 수도는 마닐라(Manila)이다. 북부의 루손섬, 중부의 비사야 제도, 남부의 민다나오 섬 이렇게 크게 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크고 작은 이 7,000여 개의 섬들 중 사람이 사는 섬은 약 880개 정도이고, 그나마 이름이 붙여진 섬도 약 2,700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다. 또 환경적으로는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화산 활동도 활발하다. 

  필리핀은 16세기 초반까지 통일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 즈음 마젤란이 세부에 도착하면서 필리핀이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565년 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었으며 325년 동안 식민통치는 지속되었다. 그러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 미국에게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  등의 지배권을 양도하게 된다.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하자 필리핀인의 최초의 공화국인 필리핀 제 1 공화국이 건립되었으나, 미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식민지화 하자 이에 저항하는 미국-필리핀 전쟁이 일어난다. 이 전쟁에서 필리핀은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에 많은 희생자를 낳고 굴복하게 된다. 그 후에도 로마 가톨릭 사제 수녀들이 주동하는 필리핀 민중들의 독립 투쟁은 계속되었으나 독립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은 또 한번 일본군의 점령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 1943년 일본은 필리핀 독립을 승인했고, 전쟁이 끝난 1946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한다. 공화제를 채택한 필리핀은 마누엘 로하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내 안내 방송에 따라 배에서 내리니 이번에도 환영 행사가 한창이다. 이번엔 여학생들로 구성된 악대가 나와 뙤약볕 아래서도 웃음을 띠고 하선하는 승객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해 주었다. 아이들의 밝은 얼굴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진심이 느껴져 반갑고 고마웠다.

(↑ 환영하는 악대)

  푸에르토 프린세사(City of Puerto Princesa)라는 도시 이름은 스페인어에서 온 말로  '공주의 항구'라는 뜻이다. 팔라완 주의 주도로 팔라완 섬 중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먼저 걸어서 10분~15분 거리에 있는 해변 공원(Puerto Princesa City Baywalk Park)으로 갔다. 날씨가 맑아서 짙푸른 하늘도 바다도 맑고 투명했다.

(↑ 푸에르토 프린세사 해변 공원(Puerto Princesa City Baywalk Park))

   사실 푸에르토 프린세사(Puerto Princesa)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지하강 국립공원(Puerto-Princesa Subterranean River National Park)을 가기 위한 목적으로 이곳을 들른다. 하지만 차로 1시간 40여 분이 걸리는 먼 곳이라 개별적으로는 가기가 쉽지 않고 나는 이미 가 본 곳이라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몇 군데만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간 곳은 성모 수태 성당(Immaculate Conception Cathedral)이다.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872년 스페인 탐험대가 푸에르토 프린세사에 와서 처음 미사를 드린 곳에 세워진 작은 성당이다. 내부는 방금 미사를 마친 상태로 마침 한창 공사 중이었다.

(↑ 성모 수태 성당(Immaculate Conception Cathedral))

  성당에서 나오면 바로 뒤편으로 쿠아르텔 광장(Plaza Cuartel)이 있다. 이곳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미군 150여 명을 학살한 현장으로 아픈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팔라완 대학살'로 명명된 이 사건은 1944년 12월, 일본 수비대가 쿠아르텔 광장에 있던  미군 특수부대원들을 공습 대피소에 몰아 넣고 불을 질렀다. 그나마 다행히도 필리핀 게릴라들의 도움으로 이들 중 11명만은 겨우 살아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사건에 관한 안내문이 쓰인 입간판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고, 지금은 예쁜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인기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 쿠아르텔 광장(Plaza Cuartel) 입구와  팔라완 대학살 안내문)
(↑ 우리도 기념 사진 한장!)

  광장에서 나온 우리는 푸에르토 프린세사를 가로지르는 주도로인 리잘 거리(Rizal Avenue)를 따라 걸었다. 제법 넓은 도로에는 상점이 늘어서 있고 먼지를 날리며 차와 트라이시클(Tricycle), 지프니(Jeepney) 등이 지나다니는 모습으로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는 길에 꽤 넓은 야외 공연장이 있는 멘도자 공원(Mendoza Park)을 지나기도 하고, 초우킹(Chowkig)졸리비(Jollibee) 같은 필리핀 현지의 낯익은 패스트푸드점들도 만나니 반가웠다.(사실 졸리비는 브루나이에서도 갔었지만)

(↑ 리잘 거리(Rizal Avenue)의 풍경과 멘도자 공원(Mendoza Park))

  우리가 목표로 도착한 곳은 MCCC몰(New City Commercial Center)이었는데 크루즈항과는 걸어서 약 2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쇼핑몰이다. 각종 상점들은 물론 푸드코트도 있고 1층에 제법 큰 슈퍼마켓도 있다. 우리는 몰 밖에 있는 초우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몰 안의 현금 인출기에서 며칠 간 쓸 현금도 조금 인출했다. 시간 여유가 있었던 우리는 몰 1층에 있는 마사지 가게에서 한 시간 동안 발마사지를 받고 개운해진 몸으로 MCCC몰 앞에서 트라이시클을 타고 항구로 돌아왔다.

(↑ MCCC 몰(좌), 우리가 탔던 트라이시클과 기사님)
(↑ 크루즈가 정박한 항구의 모습)

 

  우리에게 보라카이(Boracay)는 각종 해양 액티비티를 즐기며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감상하는 휴양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관광객들과 무분별한 쓰레기 투척 등으로 자연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이로 인해 필리핀 정부는 관광객 입장을 전면 통제하고 지난 2018년에 6개월 간 대대적인 환경 복원 작업을 실시했다. 현재는 재개장한 상태로 여전히 관광객들에게는 인기있는 휴양지이다.

   세계 3대 비치로 이름이 높은 이트 비치(White Beach)는 보라카이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그 외 조개 껍데기가 잘게 부서져서 만들어진 반짝이는 백사장이 특징인 푸카 쉘 비치(Puka Shell Beach)가 있고, 비록 현재 전망대는 폐쇄됐지만 보라카이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루호산(Mount Luho)에도 올라가 볼 수 있다. 

  보라카이(Boracay)는 작은 섬이라 큰 배들이 입항할 수가 없어 우리 배는 바다 위에 정박하고 보트를 내려 보라카이 항구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내리니 역시나 열렬한 환영 공연이 한창이었다. 이 환영 공연으로 즐거운 마음을 안고 선착장을 나왔다. 선착장(Boracay Jetty Port)에서 화이트 비치까지 가는 길은 주 도로를 따라가면 되니 크게 어려울 것은 없으나 약 2.5Km 거리로 걸어서 35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래서 나는 선착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 중 한 명과 80페소(약 1,900원)에 흥정해 화이트 비치와 연결된 디몰(D Mall)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했다.  

(↑ 바다 위에 떠 있는 노르웨지안 주얼호와 선착장에 도착한 보트)
(↑ 환영 공연과 보라카이 항구)

  길이 4km의 산호 모래(그래서 모래 색이 하얗다.) 백사장인 화이트 비치는 보라카이섬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대표적인 해변이다. 위치는 보라카이섬 서쪽에 있는데 작은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부두가 있어 섬의 약 95%의 주택과 상업 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그 중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디몰(D Mall)은 몇 블럭에 걸쳐 수많은 상점이 밀집해 있는 야외 쇼핑몰이다. 또 바다 쪽으로 걸어 나가면 긴 해변을 따라 호텔과 리조트, 식당, 카페, 술집, 해양 스포츠 관련 상점들이 수없이 보인다. 나는 해변을 잠시 걷다가 더운 날씨에 땀을 식히기 위해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넋 놓고 한참을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 화이트 비치 입구의 디몰)
(↑ 화이트 해변을 따라 늘어선 상점들. 낯익은 한국 간판이 반가웠다.)
(↑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선내 여행사에서 바로 화이트비로 가는 배를 예약한 친구는 해변에 먼저 도착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가 내가 있는 카페로 왔다. 우리는 바다 쪽으로 나와 잠시 걷다가 디몰 안에 있는 한식당에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한식의 갈증을 풀었다. 점심 식사 후 친구는 예약한 배를 다시 타야 해서 부두 쪽으로 가고 나는 지프니를 타고 다시 항구로 다시 돌아갔다. 지프니는 트라이시클과 같이 필리핀을 대표하는 교통 수단이다. 특히 지프니는 서민들을 위한 소형 버스나 태국의 송테우 같은 것이어서 1인당 20페소(약 500원)로 아주 저렴했다.

(↑ 필리핀의 대중 교통 수단 지프니(좌), 보트를 타기 위해 가는 길)

   보트가 닿는 곳에 이르니 이번에는 여학생들로 구성된 악단이 환송 공연을 하고 있다. 보트를 기다리며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도 음악에 맞춰 박수도 치고 춤도 춘다. 여학생들의 밝고 예쁜 모습에 나도 한껏 기분이 좋아져 무려 100페소(약 2,400원)를 팁으로 주로 돌아왔다.

(↑ 소녀들의 환송 공연)
(↑ 항구에서 보트 승선(좌)과 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