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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2024 년 1월~2월 태국-동남아 크루즈-대만 카오슝

동남아 크루즈 3. 선내 생활

  이번 동남아 크루즈는 승객이 약 2,400명으로 모든 객실이 매진된 상태였고, 이 승객들 중 절반(折半) 정도인 약 1,200명이 미국인이었으며 영국, 캐나다 등 북미와 유럽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한국인은 극히 드물었는데 우리가 알아낸 바로는 네 팀 열 명 정도의 한국인이 있었다. 우리가 선내에서 오가며 만난 승객들 중에는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은 80~90대의 노인들도 있었고, 다리를 다쳐 보조 기구를 사용하거나 휠체어를 탄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승객의 대부분은 70대 이후의 노인들이 많았으나 은퇴한 50~60대도 있었고 비교적 젊은 30~40대도 보였다. 또 드물기는 했지만 유모차에 탄 어린 아이와 부모로 구성된 가족 단위 승객들도 있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연령대는 70대 이후의 노인들이었다.

 

  크루즈 상품 예약을 하고 나면 여러 번에 걸쳐 인터넷, 음료나 술, 식사 등의 유료 패키지 상품, 기항지 투어 상품 등의 홍보와 안내 메일이 온다. 더불어 나처럼 낮은 등급의 객실을 구매한 사람들에게는 상위 객실로 옮겨갈 수 있는(업그레이드) 입찰(Bidding) 안내 메일도 받는다. 상위 객실로의 입찰은 미리 정해진 1인당 최저액 이상으로 금액을 정해 입찰에 응하면 된다. 나는 발코니가 있는 방에 최저 금액으로 입찰 요청을 했다. 이 입찰은 출항 당일까지 유효하고 중간에 입찰 금액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 만일 입찰이 성공하면 미리 등록한 신용카드로 입찰금이 청구되고 상위 객실로 방이 재배정된다. 내 경우 크루즈가 만석이었고 입찰 금액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상위 객실 입찰은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 방은 창문이 없는 내부 객실로 실내가 비교적 좁긴 했지만 짐을 넣을 공간이 많았고, 더블 베드에서 두 개의 싱글 베드로 분리가 가능한 침대 아래에도 빈 공간이 있어서 캐리어를 넣을 수 있었다. 욕실은 공간이 넉넉한 편이었고 손을 씻을 수 있는 액체 비누와 샴푸, 바디워시 등이 갖춰져 있어서 세수를 하거나 샤워하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객실 청소는 매일 해 줬고 수건과 샤워 타월은 넉넉히 제공되었다. 작은 냉장고 안에 몇 가지 음료가 있긴 했으나 가격이 비싼 편이었고 식수는 따로 주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가 미리 가져온 물병에 매일 저녁 물을 담아 오는 일이 중요한 저녁 일과 중 하나였다.

(↑ 가운데 긴 복도 양쪽으로 객실이 있다.)
(↑ 객실 내부(상)와 욕실)

  객실은 긴 복도를 끼고 양쪽으로 촘촘하게 배치돼 있어서 자칫하면 방을 지나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멀리서도 쉽게 우리 방을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손잡이에 빨간색 손수건을 묶어 놓았다. 다른 객실에는 각자의 방을 구분하기 위해 문 위에 여러 가지 장식을 붙여 꾸며 놓은 곳도 여럿 있었다. 매일 아침이면 그날의 여러 행사나 중요한 정보를 담은 신문(소식지)이나 각종 출입국 서류, 투어 확인서 등이 객실 번호가 있는 벽면 꽂이에 꽂혀 있다. 우리는 첫날 이 서류들을 챙기지 않아 7층 안내 데스크를 여러 번 오가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 우리가 묵었던 객실. 선내 소식지(좌)와 빨간 스카프)

  각 기항지의 출입국 정보나 투어 안내, 그 날의 각종 행사 등은 소식지에 상세하게 안내돼 있다. 이 소식지는 미리 다운 받은 NCL 앱에서도 매일 업데이트 되기 때문에 PDF 파일로 볼 수도 있다. 또 객실 안 TV의 선내 안내 채널이나 선내 방송을 통해 일정이나 중요 사항을 매일 안내해 준다. 

(↑ 선내 소식지와 브루나이 투어(차량) 티켓)

 

  이번 크루즈의 전체 일정 중 이틀은 기항지에 내리지 않고 바다 위에 있어야 했다. 이 때는 승객들이 모두 선내에 있을 수밖에 없어서 식당이나 수영장 등은 하루종일 사람들로 붐볐다. 이런 날은 배 안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매우 심심할 것 같지만 실제 우리는 소식지에 있는 소소하지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행사들을 시간 맞춰 여기저기 찾아 다니느라 꽤 바쁘게 보냈다. 

  우리는 8~9시 사이에 아침을 먹고 수영을 하거나 헬스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등 운동을 했다. 이후 점심을 간단히 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PC로 블로그에 글을 쓰는 작업을 했다. 물론 인터넷 연결이 안 되기 때문에 텍스트만 오프라인으로 메모장(Notion)에 저장해 두는 정도만 할 수 있었다. 참고로 배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은 하루 한 개의 장치에 $29.99/$39.99(동영상 스트리밍 가능), 또는 전체 일정에 약 $300~$400로 가격이 매우 비싸다. 그래서 특별히 중요한 일이 아니고는 선내에서 인터넷 사용을 하지 않고, 기항지에 도착하면 약하게나마 로밍 데이터가 잡히므로 이 때 인터넷을 연결해 사용했다.

(↑ 야외 공연도 하는 수영장은 항상 인기가 많은 곳이다.)

  신문에 소개된 시간별 행사는 야외에에서는 스포츠 행사가 많았고, 실내에서는 크고 작은 공연, 여러 가지 형태의 친목 도모를 위한 모임을 하거나(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모임도 있었다.) 댄스 파티(주로 밤 10시 즈음) 등이 자주 있었다. 또 유료 행사인 그림 경매, 요가나 그림 그리기 수업 등도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공기놀이, 화투, 카드 등을 따로 챙겨 갔었는데, 카드룸에 보드게임 도구와 카드는 여럿 있어서 쓸모가 없었고, 공기놀이는 할 시간이 없었다. 다만 화투는 굳이 카드룸에 가져가서 딱 한 번 해 보기는 했다. 

(↑ 여러 가지 공연과 댄스 파티)

 

  저녁 5~6시 사이에는 저녁 식사를 했다. 우리는 메인 식당인 '차르 팰리스(Tsar’s Palace)' '아주라(Azura)'를 주로 이용했는데 두 곳 모두 꽤 넓은 곳이어서 미리 예약할 필요는 없었다. 두 곳 다 양식당으로 메뉴는 비슷했는데 주요리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요리, 파스타 등이 있었다. 음식은 전체, 주요리, 후식이 있어서 차례대로 주문했다. 물과 차(커피)를 제외한 음료나 술은 유료로 따로 주문해야 한다. 여러 가지 요리를 맛보고 싶을 경우 1인 하나 이상의 요리를 주문해도 되고 리필을 받을 수도 있다. 

(↑ 우리가 먹었던 여러 가지 요리들)

  아시아 요리 전문 식당인 '친친(Chin Chin)'은 규모가 너무 작아 사전에 예약을 해야 했다. 주로 중국식, 일본식 또는 동남아식 요리를 낸다. 우리는 탕수육과 춘권(Spring Roll), 매운 국수를 주문했다. 또 차르 팰리스(Tsar’s Palace) 아주라(Azura)에 비해 분위기가 캐주얼한 '오시한(O’Sheehan’s Bar & Grill)'에서는 저녁으로 피시앤칩스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다.

(↑ 친친(좌)과 오시한의 요리)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공연 시작 전까지 우리는 7층의 야외 데크를 2~3 바퀴씩 걸었다. 13층에 정식 조깅 트랙이 있지만 나는 크고 작은 보트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한쪽에 여러 가지 구명 장비들이 쌓여 있는 7층이 훨씬 좋았다. 이곳은 선수(船首)와 선미(船尾)를 지나 배를 완전히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길이 나 있다. 보통 우리가 야외 데크로 나올 때는 해가 질 무렵이어서 태양이 망망대해의 수평선을 넘어가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는데, 일몰 후 서서히 어둠이 내려 사위(四圍)를 감싸고 끝내 모든 풍경을 삼켜 버리는 시간 속을 지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주변이 모두 깜깜한 어둠 속에 사라진 후, 걷다가 문득 바라본 풍경은 내가 어느 먼 곳에서 순간 이동을 해 도착한 낯설고 알 수 없는 세상처럼 신비로웠다.

(↑ 7층 야외 데크. 바닥에는 사방치기 같은 선도 그려져 있고 서양 장기 놀이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일출 시간을 잘못 알고 늦게 나온 적도 있고 날이 흐려 하늘이 구름에 가려 해를 볼 수 없던 때도 있었는데, 우리가 하선하기 하루 전 날 아침 드디어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바다 위 수평선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둥근 해는 아니었지만, 멀리 겹겹이 앉은 낮은 산들의 머리 위로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붉고 빛나는 아침 해를 맘껏 바라보았다. 

(↑ 배 위에서 본 일출)

 

   하루 일과 중 가장 기대되는 행사는 스타더스트 극장(StardustTheatre)의 공연이었다. 공연은 저녁 7시 15분과 9시 15분 하루 두 차례 있었다. 공연 내용은 다양해서 마술, 뮤지컬, 악기(바이올린) 연주, 춤과 노래, 서커스 등이 있었다. 공연의 수준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아 매일 공연이 기다려졌다. 

(↑ 극장 공연은 항상 인기가 많았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인 것은 네델란드 출신의 가수 이사벨 코만되르(Isabel Commandeur)의 공연이었다. 그녀는  네덜란드 판 'American Idol'에 해당하는 TV 쇼 'My Name Is'에 참가해 최종 우승했고, 오페라와 클래식을 노래하는 네덜란드 TV 쇼 'ARIA'의 최종 후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장르를 넘나들며 널리 알려져 인기있는 팝(Pop)뿐만 아니라 뮤지컬, 오페라와 클래식 곡도 부른다.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강렬하지만 섬세한 감정도 잘 표현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그녀의 공연 세 번 모두를 봤다.

(↑  이사벨 코만되르(Isabel Commandeur)의 공연)

  우리가 최종 하선하기 하루 전 날 밤에는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뮤지컬 팀, 서커스 팀 등이 펼치는 'Le Cirque Bijou'라는 합동 공연이었는데, 규모도 크고 출연자들도 많았으며 내용도 아주 화려했다. 또 공연 끝에는 크루즈 내 승무원들을 소개하는 순서도 있었다. 그 동안 오가며 보았던 여러 승무원들이 한 명씩 소개될 때마다 승객들은 그들의 노고에 큰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 

(↑ 'Le Cirque Bijou' 공연과 승무원들의 무대 인사)

 

  공연이 끝나면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 미리 다운 받아 온 네플릭스의 드라마를 보고 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또 가끔 밤 10시 무렵 시작하는 라틴 댄스 교실과 13층 블리스 라운지나 수영장 야외 무대에서 열리는 댄스 파티에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