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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2013. 12~ 2014.01 볼리비아, 페루

페루 와라즈(Huaraz)

2014년 1월 16일(목) 리마->와라즈(Hwaraz)
07:00 기상
08:10 아침(삶은 달걀, 사과)
09:20 Union 역 출발 2sol
10:00 National 역 도착, Linea 터미널 예약증->표 교환 30sol(삼성카드)
10:05 터미널 2층 감자빵 3sol
10:35 버스 출발
15:30 식당 앞 중간 정차, 과자 1.2sol
16:15 버스 출발
19:10 와라즈 리네아(Linea) 터미널 도착
19:20 수퍼(달걀, 빵 과자 6.1sol)
20:20 숙소 Alkipo 도착 2박 도미 숙박료 30sol, 빙하투어 30sol
20:40 저녁(라면 반 개, 과자)
23:00 취침


  아침은 달걀 2개를 삶아 하나는 사과와 먹고 하나는 점심용으로 사과 하나랑 봉지에 담았다. 몇 사람이 함께 나오느라 9시가 조금 넘어 포비네를 출발했다. 지상철을 타고 Linea 버스 터미널에는 10시가 되어 도착했다. 어제 밤 인터넷으로 예약한 컴퓨터 화면을 찍은 휴대전화 사진과 여권을 내밀어 버스 티켓으로 교환했다. 함께 왔던 다른 사람들은 원하는 지역의 표가 없어 다른 터미널로 가고 나는 구수한 빵 냄새가 나는 2층으로 가 부실한 아침을 보충하기 위해 빵 하나를 시켰다. 전자랜지에 데워 나온 건 빵이 아니라 구운 감자 크로켓 같은 거였다. 으깬 감자 안에 소를 넣어 구운 것으로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버스는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좌석이 2층 맨 앞 자리라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있어 긴 시간임에도 대체로 편안했다. 오후 3시 반쯤 중간 정차를 한번 하고 차는 계속 달렸다. 모래 언덕을 깎아 놓은 도로가 리마의 모래 위에 만든 도시만큼이나 위험해 보였다. 황량한 모래 언덕도 지나고 나무가 꽤 많은 큰 마을, 넓게 펼쳐진 옥수수밭도 지났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사방이 어두워지자 도시가 나타났다. 드디어 와라즈 리네아(Linea)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먼저 18일 밤 차 시간과 가격을 알아봤다. 날짜마다 가격이 다른지 밤 10시 30분 리마행 소프트 까마(Soft Cama) 좌석은 80sol이란다. 옆 크루즈델수르(Cruz del Sur)에도 가 봤다. 밤 10시 출발, 가격은 86sol이란다. 일단 시간과 가격은 알았으니 표는 내일쯤 사기로 하고 숙소를 찾아 나섰다. 미리 받아온 숙소 명함에는 터미널 있는 길에서 한 블럭을 나가 큰 길로 네 블럭쯤 가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숙소 근처에 다 와서 명함을 보여 주며 길을 물었는데 댭해 주는 사람마다 대답이 달랐다. 큰 길가에 있는 내가 찾는 숙소를 눈앞에 두고 근처 다른 골목들을 들락거리며 한 시간 가까이를 찾아 헤맸다. 다시 명함의 주소와 지도를 보여 주며 골목 안 어느 미용실에 들어가 물었더니 바로 내가 지나온 큰 길가에 있는 3층짜리 큰 건물이라고 정확히 알려 준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알끼뽀(Alkipo) 입구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젊은 청년이 웃으며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낸다. 자기는 이름이 레오나르도라며 내 이름을 묻는다. 나는 습관대로 '신'이라고 소개하고 리셉션으로 갔다. 일단 여기서 이틀을 묵을 예정인데 내일 아침 69 호수 투어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청년은 69호수는 해발 4,600미터 높이에 걷는 시간이 길어 하루 정도 적응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한다. 내일 하루는 그냥 와라즈 시내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는 게 좋겠다며 굳이 권하지 않는다. 그러면 빙하 투어는 어떠냐고 하니 그건 해발이 조금 더 높긴 하지만 걷는 시간이 짧아 가능할 거란다. 그럼 내일 빙하 투어를 먼저 하고 다음 날 69 호수 투어를 하겠다고 했다. 일단 이틀분 숙박료와 내일 투어비를 정산했다. 청년은 농담을 섞어가며 도미토리 방, 휴게실, 부엌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리고 뭐든 필요하면 자기를 부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와라즈(Huaraz) 행 리네아 버스)

(↑와라즈(Huaraz)  가는 길) 

(↑와라즈(Huaraz)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 있던 꾸이)


  나는 일단 짐을 내려놓고 늦은 저녁으로 리마에서부터 가져간 라면 반개에 오다가 가게에서 빵과 과자와 함께 산 달걀 하나를 넣어 끓여 먹었다. 그나저나 밖에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내일 투어는 가능할지 슬슬 걱정스럽다. 아침 8시 출발이라니 얼른 자야겠다.    


2014년 1월 17일(금) 맑음,흐림,비, 와라즈(Huaraz)<->빙하투어(빠스또루리(Pastoruri))
06:10 기상
07:10 아침(커피, 초코빵)
08:00 사과4개, 빵 한 봉지, 메추리알5개 3sol, 물 2.5L 3sol
08:45 투어 차량 출발
09:30 식당 앞 정차 코카잎 1sol, 사탕 0.5sol
10:30 차 안에서 가이드가 국립공원 입장료 모음 10sol
10:40 작은 호수(바토코차 Batococha) 사진 찍기
10:50 약수터(철 성분이 많은 탄산수)
11:10 뿌야(Puya) 나무 서식지
12:00 국립공원 입장(빙하 전망대까지 50분 소요)
13:50 투어 차량으로 귀환(하산 30분 소요), 물 2sol
16:20 식당 정차, 저녁(뚜루차,밥,감자) 이스라엘(Ysrael)이 하나 시켜 둘이 먹음.
17:10 식당 출발
18:00 와라즈 시내 도착
18:10 Linea 버스표 60sol(2층 세미까마)
18:20 Linea->아낄뽀(Akilpo) 택시(2sol 이스라엘이 냄)
19:30 내일 69 호수 투어 신청 40sol
20:00 코코넛 과자, 메추리알, 망고주스, 초코볼 7sol
22:30 취침


  어제 이곳 직원들의 추천대로 오늘은 그나마 오래 트래킹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빙하 투어를 하기로 했다. 커피와 어제 산 초코 크림이 든 페스트리로 아침을 해결하고, 시장으로 나가 사과, 메추리알, 빵 한 봉지를 사고 가게에서 물도 큰 걸로 하나 샀다. 일단 점심 준비까지 마치고 기다리고 있으니 차량이 대기 중이라는 연락이 왔다. 봉고형 버스가 늘어선 어느 주차장으로 가 투어 차량을 탔다. 8시 45분쯤 되자 좌석은 만석이 됐고 차는 곧 출발했다.
  가이드가 오늘 투어에 대한 설명을 스페인어로만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 옆 자리에 있던 젊은 청년이 자기는 페루인이며 지금 출장 중인데 오늘 하루 쉬게 돼서 투어를 간다고 했다. 영어를 배우는 중이라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한다는 이 청년은 이름이 이스라엘(Ysrael)이란다. 가이드는 이 지역의 긴 산맥을 이루고 있는 지형을 설명하는 듯했는데 청년은 내게 가끔 영어로 통영해 준다.
  가이드는 차 안에서 국립공원 입장료를 미리 걷었다. 그리고 바토코차(Batococha)라는 이름의 작은 호수에 차를 세워 사진 찍을 시간을 준다. 이스라엘의 설명에 의하면 '바토'는 '오리'라는 뜻이란다. 그러고 보니 호수 위에 오리들이 몇 마리씩 보인다. 다시 10분쯤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약수터인데 물은 철 성분이 많이 함유된 탄산수였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가이드는 이 물을 마시면 피부도 고와지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차가 지나는 황무지에 가까운 산 언덕에는 이곳에 사는 뿌야(Puya)라는 특이한 식물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선인장 종류 같은데 키가 4미터나 자라는 모양도 희한한 식물이다.

(↑중간 정차한 식당 앞)

(↑작은 호수 바토코차(Batococha))

(↑땅에서 올라오는 지하 탄산수)

(↑뿌야(Puya) 나무 서식지)

 
  비포장 산길을 구불구불 거슬러 올라가 거의 12시쯤 우리는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이 워낙 고산이라 입구에는 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빙하가 있는 약 2/3 지점까지 사람을 태워 실어나른다. 물론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만. 나는 원래 계획대로 말의 유혹을 뿌리치고 걸어 가기로 했다. 아무리 느린 걸음으로도 1시간 안에는 도착한다고 했으니 도전해 보기로 한다. 그런데 처음 15분 정도 오르는데 가슴이 아프고 걸음을 옮기는 다리가 무겁다. 숨을 헐떡이며 중간에 여러 번 쉬면서 물병에 코카잎을 넣어 우린 물을 계속 마셨다. 코카차 덕분인지 15분쯤 지나자 호흡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다리도 점점 가벼워진다. 나중에는 오르막도 큰 무리 없이 올라갈 정도가 되었다. 5,400미터라는 표지판 앞에서 자랑스럽게 인증 사진 하나를 찍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빙하 전망대는 거기서 다시 20여 분을 더 올라가야 했다. 총 50분에 걸쳐 드디어 빙하가 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랐다. 멀리 설산만 보일 때와는 달리 얼음 색이 푸릇했다. 빙하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호수가 있고 주변이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이곳을 지켜온 저 눈과 얼음은 얼마나 오랜 동안 세상의 변화를 지켜 보았을까? 그 헤일 수 없는 시간 앞에 인간의 일생은 얼마나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을까? 여기 저기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내려오면서 내가 5,400미터 고지에 올랐다는 자부심과 무한한 세월 앞에 한없이 작아진 나를 만나는 다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빠스또루리(Pastoruri) 빙하)

 
  약속한 2시가 되자 여행객들은 모두 차로 돌아왔다. 이제 산길을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산을 내려오는 도중 차에 이상이 생겼다. 타이어 펑크는 아닌데 차 뒷부분이 자꾸 땅에 부딪히는 충격이 계속돼 속도를 최소한으로 줄여 겨우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올 수 있었다. 우리보다 뒤에 출발한 차들을 먼저 앞세우고 처음 정차했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와라즈 시내로 귀환했다.
  하필 차가 와라즈 정류장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리네아 버스 정류장까지 비를 맞고 나를 함께 따라가 내일 밤 버스표 사는 것까지 도와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멀지 않지만 비가 그치질 않아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이스라엘과는 숙소 알끼뽀 앞에서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5,000m 빙하를 오르내리는 산길)


  방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내일 69 호수 투어를 예약했다. 직원이 투어의 전반적인 설명을 하는데 트래킹은 4,000미터에서 시작해 4,600미터 까지 약 3시간을 올라가야 한단다. 다시 내려오는 데만 2시간 이상이 걸리는 쉽지 않은 트래킹이란다. 물론 고도는 조금 더 높긴 했지만 오늘 왕복 1시간 30분 정도의 트래킹도 쉽지 않았는데 내일은 정말 걱정이다. 제발 내 몸이 잘 견뎌 줘야 할 텐데...


2014년 1월 18일(토) 맑음·흐림·비·눈, 와라즈(69 호수 투어)
05:20 기상
06:10 투어 차량 탑승
07:40 길 정지 작업으로 정차(25분), 아침(빵, 주스, 사과, 과자)
08:20 식당 앞 정차
08:50 식당 출발
09:30 트래킹 시작
13:00 69 호수 도착(산 두 개 넘기), 10분 채류
13:10 69 호수 하산
15:30 투어 차량 귀환
17:45 Akilpo 도착
19:30 저녁(모듬 꼬치 구이, 구운 닭 1/4) 5명(41sol) 9sol
21:40 Akilpo->Linea버스 터미널 택시 2sol
22:20 버스 출발(간식, 음료 제공)


  어제 저녁 오늘 69 호수 투어를 신청하자 직원이 지도를 펼쳐 놓고 위치며 투어 코스, 특히 트래킹 시간과 난도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 줬다. 나는 그저 어제 다녀온 빙하의 고도가 5,400미터니 4,000~4,600미터에서의 3시간 정도 트래킹쯤이야라는 생각으로 그의 설명을 대충 들었다. 그는 또 아침 5시 50분까지는 차량을 탈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 어제 추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장갑이며 목도리도 챙기고 눈, 비 올 때를 대비해 프론트에서 판초형 우의도 빌렸다. 이른 이각 출발이라 아침, 점심 요기가 될 만한 빵, 주스, 사과, 코코넛 과자도 준비했다. 6시 10분쯤 차량이 도착했고 우리 숙소에서도 이미 여러 사람이 차에 타고 있었다. 그 중 20대 한국 대학생 한 명도 있어 서로 인사를 나눴다.
  차는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포장 도로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비포장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제 내린 비로 길이 일부 유실됐는지 중장비가 동원돼 공사를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25분쯤 기다렸는데 나는 차 안에서 빵과 주스, 사과로 아침을 해결했다. 막힌 도로가 뚫려 정체가 풀리자 차는 유독 속력을 내며 달리더니 산길 어딘가에 있는 작은 식당 앞에 정차했다.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자 30여 분 후 차는 다시 출발했다.
  호수가 있는 국립공원 입구에는 8시 50분쯤 도착했고 가는 길에 두 개의 커다란 호수가 얼마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있었다. 가이드가 없어 호수의 내력이나 지형 등에 대해 따로 설명을 들을 수가 없어 조금 아쉬웠다. 나중에 돌아와 아낄뽀(Akilpo) 직원에게 들으니 우리가 간 와라즈 북부 지역 국립공원에는 약 300여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있다고 한다. 그 중 우리가 지나치며 본(나중에 돌아올 때 기사가 사진 찍을 시간을 주긴 했지만) 두 개의 호수는 원래 이곳 원주민어인 케추아어로 남자 호수, 여자 호수라는 이름이 있다고 했다. 아마 스페인 식민 시대 전에는 그 많은 호수들이 각각 이름이 있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이곳을 지배하자 당시 원주민어를 알 수 없었던 식민 지배자들이 호수의 수가 많으니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어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단다. 내가 왜 호수 이름이 69냐고 묻자 직원이 설명한 내용이다. 잠시 우리의 일제 식민 시절 우리말이던 지명들이 일본식 한자어로 바뀌어 굳어진 것이 떠올랐다.
  투어 차량 기사는 공원 입구를 지나 9시 30분쯤 아무런 표지도 길도 보이지 않는 곳에 차를 세우더니 작은 산길로 내려가라고 한다. 69호수까지 가는 트래킹이 시작되는 곳이란다. 좁은 바윗길을 내려가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넓은 초지가 나온다. 칼로 벤 듯이 한 면이 깎인 바위 산에서는 작은 폭포가 흘러 초지 중앙에 작은 강으로 흘러들어 제법 거센 물살을 만들고, 주인을 알 수 없는 소들이 여기저기 한가로이 흩어져 있다.   
  운전 기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앞서 가기 시작한다. 이제 4,000미터 고지에서 호수가 있는 4,600미터까지 약 7km의 산길을 3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나는 일단 앞 그룹에 속에 따라가기로 한다. 그런데 잠시 후 숨이 차 오르며 걸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를 추월해 간다. 평원을 지나니 오르막 산길이 나온다. 어제 저녁 호스텔 직원이 약도를 그리며 설명해 준 바에 따르면 두번의 평지와 두번의 급경사 오르막이 있다고 했는데 이게 그 첫번째 오르막인 듯하다. 산 중턱 쯤에서 내 뒤에 오던 남미계 20대 여자 두 명마저 나를 앞서간다. 이제 앞서간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멀어지고 고개를 들 때마다 아득한 산길만이 보인다. 숨이 차고 다리 힘이 풀리니 이제 갈등이 시작된다. 내가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만약 죽을 힘을 다해 간다고 해도 그게 또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오늘 이렇게 힘을 다 쓰고 몸살이라도 나 앓아 누으면 이 여행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러면서도 이 한 굽이만 돌면 조금 수월하겠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건 나 자신에게 지는 거다라는 생각을 하며 힘겨운 한 걸음 한 걸음을 겨우 옮긴다. 대여섯 발 내딛고 한 번 쉬고 다시 산마루를 올려보며 남은 거리를 재면서 겨우 산 하나를 넘었다.
  자, 이제 반은 지나온 셈이다. 호스텔 직원의 말대로 다시 평지가 나온다. 앞서 간 사람들은 이미 저 멀리 평지를 가로질러 다시 산을 오르고 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일단 반은 왔으니 돌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저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상에 오르는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될 뿐이다. 나는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를 향해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내 체력에 맞는 속도대로만 걸어갈 뿐이다. 내 앞에 가는 저들이 만나게 될, 그리고 사력을 다해 오르고 있는 내가 맞닥들이게 될 그 호수가 세상에 다시 없는 비경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천천히 이 눈, 비바람과 싸우며 무엇보다 나약해지려는 내 자신과 싸우며 끝까지 올라가 보는 거다. 그곳에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내가 목표로 한 곳에 내 두 발을 디뎌 보는 것, 이제 그것이 다른 목표가 되었다.
  햇볕이 났다, 비가 왔다, 눈이 우박이 됐다, 바람이 눈 앞을 가렸다 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날씨는 내게 오히려 오기가 생기게 했다. 평원을 지나 이제 다시 산길이다. 산 정상 어디쯤에 개미만하게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 저기만 넘으면 되는구나! 아득하긴 했지만 다시 발길을 옯기기 시작했다. 어제 빙하 투어에 지난 주 와이나픽추 오를 때 허벅지 근육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걸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그나마 멀리 보이던 사람들마저 보이지 않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진다. 두번째 산을 거의 다 오를 무렵에는 먼저 올라갔던 사람 너댓명이 내려오고 있다. 이제 15분 정도만 가면 된다며 힘내라는 인사를 건낸다. 다시 몇 걸음 걷고 쉬기를 반복하며 드디어 마지막 고개를 돌았다. 외길이 나 있고 눈앞에 멀리 호수가 들어온다. 호수에 닿았을 때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나를 보자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낸다. 나는 눈보라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고 손이 얼어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앞서 온 한국인 학생에게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주며 나 대신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청년은 판초 우의를 입고 일그러진 인상으로 호수 앞에 선 내 사진 하나와 호수 주변 풍경 사진을 몇 장 더 찍어 건내준다. 통상 거의 3시간만에 오른다는 이곳에 나는 3시간 30분만에 겨우 도착했다. 하지만 날씨 탓인지 내 몸이 힘들었던 탓인지 호수는 듣던 만큼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물 색깔이 옥빛으로 다른 호수와 조금 다를 뿐 규모도 작고 주변 풍경도 그리 신비롭지 않았다. 사진은 찍었고 대충 풍경은 살펴봤고 날이 추워 손이 곱을 지경이라 오래 지체하지 못하고 10여 분만에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7km의 트랙킹 길) 

(↑69 호수) 


  내려가는 길도 쉽진 않았다. 내리막이라 숨이 조금 덜 찰 뿐 눈, 비가 온 뒤라 길이 미끄러워 속도를 낼 수도 없고 위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산 정상 근처에 소가 새끼를 낳다가 죽은 시체가 있었다. 송아지 머리가 나온 상태에서 어미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은 것 같았다. 어미의 목 부분만 뼈가 드러나 있고 나머지는 몸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힘이 빠져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산을 내려오면서 끝도 없이 이어진 길을 보며 내가 이 길을 왜 그리 기를 쓰며 올랐는지 회의가 들 정도였다. 이번엔 아무리 내려가도 평지가 보이지 않는다. 길은 외길이니 잘못 들어섰을 리는 없는데 나와야 할 평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걸음을 멈추지 않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가니 드디어 처음 시작했던 평원이 나오고 멀리 산 중턱에 차 한 대가 서 있다. 나는 그제서야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먼저 온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에 다달았다. 돌아오는 사이 날씨가 다시 맑아져 아까는 제대로 뵈지 않던 주변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풍경 사진도 몇 장 더 찍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나무 다리 위에 앉아 편안한 표정으로 내 사진도 한장 더 찍었다.

(↑하산 후 여유롭게 바라본 풍경) 


  하산을 시작한지 2시간 반만에 차로 돌아왔고 물살이 센 곳에서 뒤에 오던 남미 아가씨 두 사람을 도와주려 기다렸던 한국인 청년과 아가씨들도 모두 다시 차에 올랐다. 기사는 뭔가 바쁜 듯이 차를 몰았다. 우리가 지나온 두 개의 호수 중 하나 앞에 차를 잠시 세우더니 아무 설명도 없이 10여 분 정도 사진 찍을 시간을 준다. 그리고 다시 차를 몰아 와라즈 시내까지 논스톱으로 달린다. 그렇게 해서 숙소 아낄뽀(Akilpo)에 도착한 시각은 채 6시가 안 된 5시 45분쯤이었다.

(↑69 호수 오르는 길에 있는 호수)


  나는 일단 아침에 맡겨둔 가방을 찾아 세수부터 했다. 잠시 쉬다가 저녁 7시 반쯤 오늘 투어를 같이한 청년과 같은 숙소에 있던 한국인 3명, 나까지 모두 다섯 명이 숙소 아낄뽀 바로 옆 큰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닭을 비롯해 각종 육류를 구워 파는 집인데 우리는 모듬 꼬치구이와 감자와 함께 나오는 닭구이 1/4, 2리터 잉카 콜라 한병을 시켰다. 처음엔 적은 듯했으나 다섯 명이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몇 조각을 남겼는데도 모두 배가 불렀다. 맛도 괜찮았다. 모두 41sol로 가격도 싼 편이었다. 네 명이 8sol씩, 내가 9sol을 냈다. 

 

(↑아낄뽀 옆 식당에서 푸짐하게 먹은 저녁 식사)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숙소의 친절한 스텝들 몇 명에게 기념으로 즉석 사진을 하나씩 찍어줬다. 모두들 고맙다며 좋아한다. 휴대전화 충전도 시키고 같이 밥 먹은 사람들과도 작별한 후 Akilpo를 나와 Linea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30여 분을 기다려 차를 탔는데 2층엔 손님이 많지 않고 특히 맨 앞자리는 내가 앉은 3번 좌석 외에는 모두 비어서 아주 편안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차는 10시 20분쯤 출발했는데 잠시 후 안내양이 와 간식과 음료를 서비스했다. 나는 일단 편안한 자세로 담요 두 개를 덮고 잠을 청했다.

 

 

<와라즈(Huaraz) 추천 숙소 아낄뽀(Akilpo)>

가격 : 욕실 포함 6인 여성 전용 도미토리 15sol/1박

주소 : Avenida Raymondi 510 lima31 Huaraz
예약 가능한 사이트 : www.hostelworld.com 

참고 : 본인은 사전 예약 없이 리마 '포비네'에서 추천 받아 갔음.

(↑아낄뽀 입구)

(↑묵었던 방)

(↑욕실)

(↑옥상 주방)

 

 

(↑옥상에서 내려다본 시장 풍경)

(↑친절했던 아낄뽀 직원)

 


 

<와라즈 경비 : ₩91,124>

페루 솔 : Sol 239.8(≒₩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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