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화) 아테네(Athens) 2일(12,600보 / 7.6km)
- 아테네 숙소 → 아크로폴리스(ἀκρόπολις, Acropolis) → 아크로폴리스 박물관(Μουσείο Ακρόπολης, Acropolis Museum) → 신타그마 광장(Syntagma Square) → 모나스트라키 플리마켓(Monastiraki Flea Market) → 숙소
우리가 데살로니키에서 시작한 그리스 여정의 마지막 도시는 아테네(아티나 Αθήνα, Athens)이다. 아테네는 알려진 대로 현재 그리스의 수도이다. 아테네 광역 지역인 아테네 도시권(Athens Urban Area) 전체 인구는 약 370~400만 명, 면적은 약 412 km²로 서울시의 3분의 2 정도가 된다고 한다. 1834년 나플리오에 이어 현대 그리스의 수도가 되었다. 아테네는 BC 11세기부터 사람이 정착한 도시로 특히 고대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함께 가장 강력한 도시 국가이자 예술, 학문, 철학의 중심지였으며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이다. 도시 곳곳에는 이러한 고대의 화려했던 영광의 흔적들이 널려 있는 곳으로 나는 이 도시를 돌아보며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그 과거를 짐작해 보려 한다.
아테네에 도착한 다음 날 우리는 제일 먼저 지하철을 타고 아크로폴리스(ἀκρόπολις, Acropolis)로 갔다.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어로 '높다'는 뜻의 '아크로(Acros)'와 '도시'라는 뜻인 '폴리스(Polis)'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로 '높은 도시' 또는 '언덕 위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또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이외에도 여러 도시의 중심에 만들어졌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은 도시의 높은 언덕이나 구릉에 성채와 신전을 짓고 그외 극장이나 개선문 등을 추가하는 형식으로 지어졌다. 아크로폴리스는 원래 신(神)을 모시는 성역(聖域, Sanctuary)이었다. 그러나 여러 부속 건물이 들어서면서 평상시에는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고 사교의 장으로서의 역할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전쟁 등 유사시에는 요새로서의 기능도 하게 되었다.
아크로폴리스의 언덕 위에 신전이 처음으로 지어진 시기는 미케네 문명 때인 BC 6세기 경이었고, BC 510년 경에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은 후 신들만을 위한 영역이 되었다. 한편 이때의 신전들은 목조로 되어 있었는데 BC 480년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의 침략에 의해 모두 불태워져 버렸다. 이후 기원전 449년 당시의 위정자였던 페리클레스(Pericles)가 전면적인 재건축 계획을 세우고 석조 건물로 신전을 재건축했는데, 이것이 고대 그리스의 최대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강력한 고대 도시 국가로서의 아테네의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BC 4세기 이후에는 서서히 쇄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아테네는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차례로 받으면서 역사적 부침을 겪게 된다. 문화적으로는 고대 도시 국가의 흔적과 함께 로마 제국의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혼재된 상태로 남게 된다. 이에 따라 아크로폴리스도 긴 역사와 함께 수많은 훼손을 당하게 되었고, 그리스의 독립 이후에는 잘못 된 복원이나 과도한 관광객 등의 요인으로 지금까지도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대부분의 동상 등 유물들은 거의 모사품으로 진품은 근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의 전형을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198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매표소에서 우리는 아크로폴리스를 포함한 7개의 유적지를 첫 개시일로부터 5일 간 둘러볼 수 있는 통합 입장권(Ticket Package)을 샀다.
매표소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언덕 아래 쪽에 객석이 있는 원형의 극장 터가 보이는데 바로 디오니소스 극장(Θέατρο του Διονύσου, Theater of Dionysos)이다.
디오니소스(Διόνυσος, Dionysos)는 로마 신화의 바쿠스(Bacchus)에 해당하는데, 고대 그리스 신화의 술(포도주)과 풍요, 축제, 연극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가 둘인 사람'이라는 뜻인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공주 세멜레의 아들이다. 어미니인 세멜레는 질투 때문에 복수하려는 제우스의 부인 헤라에게 속아 제우스를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데, 그만 그 광채에 타 죽게 된다. 이때 세멜레는 제우스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여서 제우스는 세멜레의 자궁에서 아이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넣어 기른다. 이윽고 달이 차서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머니의 자궁에서 생겨나 아버지의 허벅지에서 태어났으니 어머니가 둘인 셈이 되었다 하여 그 이름을 디오니소스라 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처음에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신전으로 지어졌으나, 아테네의 시민들이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축제를 열고 연극을 공연하는 장소로 바뀌게 되었다. 한때는 당시 예술 형식으로 새롭게 탄생한 연극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를 보기 위해 약 4만 명 정도의 관객이 모였다는 큰 규모의 극장이다.
디오니소스 극장을 지나 언덕을 조금 더 오르면 왼쪽에 또 다른 원형 극장이 보이는데 이것이 로마 제국 시대인 190년에 지어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Ωδείο Ηρώδου του Αττικού, Odeon of Herodes Atticus)이다. 당시 큰 부자였던 헤로데스 아티쿠스에 의해 지어진 이 극장은 디오니소스 극장과는 달리 입구의 아치가 눈에 띄는데, 로마 시대의 것이니만큼 로마 콜로세움의 아치를 연상하게 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는 중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비교되기도 해 '고대의 메디치'라 불리기도 한단다. 자신의 부를 대중을 위해 쓰기도 하고, 그리스 문화와 유적에 관심이 커서 아테네, 델피, 코린토스 등의 유적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극장은 그의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는 이곳 외에도 여러 곳에 그리스 시대의 원형 극장을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이 극장은 1950년대에 객석, 오케스트라를 위한 무대 등 대대적인 복원 및 보수 작업을 거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마리아 칼라스, 조수미 등의 콘서트 등이 열렸으며, 현재에도 크고 작은 공연이 열리는 야외 음악당이자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필라이아( προπύαααα, Propylaia)는 아크로폴리스의 신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聖)과 속(俗)을 가르는 기준으로 인간의 영역에서 신들의 영역으로 건너가는 입구인 셈이다. 마치 불교 사찰 입구의 첫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프로필라이아는 파르테논이 완성된 직후인 BC 437년 건축을 시작했으나 BC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중단된 이후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겨졌다.
프로필라이아 바로 옆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건물은 아테나 니케 신전(Naos tis Athinas Nikis, Temple of Athena Nike
)으로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한 신전이다. 니케는 그리스어로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아테나 니케'는 '승리를 가져다 주는 아테나'라는 뜻이다. 신전 안에는 날개 없는 아테나 니케 상이 안치돼 있었다는데, 니케의 상징인 날개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아테나 여신이 아테네에 영원이 머물기를 기원했던 아테네 시민들의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신전의 동쪽과 서쪽에 각각 4개씩의 기둥 머리에 소용돌이 모양의 장식이 있는 이오니아식 기둥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Παρθενών, Parthenon)은 그리스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페리클레스 시기인 BC 448년에 착공하여 BC 432년 완공되었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파르테논(Παρθενών), 현대 그리스어로는 파르쎄노나스(Παρθενωνας)라는 말은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파르테논 신전은 '처녀 신전' 또는 '처녀 아테나 신전'이라는 뜻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도리스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건축적으로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의 로고가 이 파르테논 신전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만 보아도 문화적 중요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에는 흔히 황금 비율(1:1.618)이 적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는 9:4의 비율을 적용해 균형미를 살렸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의 착시 현상을 감안하여 건물의 수평은 약간 둥글게 하고, 기둥은 가운데가 양끝보다 조금 굵은 배흘림 기법(엔타시스 entasis)을 사용해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기둥의 간격이 모두 같을 경우 끝으로 갈수록 간격이 커 보이는 착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실제 기둥의 간격은 양쪽 모서리쪽으로 갈수록 좁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면 건물 전체가 반듯한 사각형 형태로, 기둥이 모두 직선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전체 크기는 길이 70m, 너비 31m로 내부 중앙에는 상아와 황금으로 만든 12m나 되는 아테네 여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신전의 입구인 동쪽과 서쪽의 페디먼트(건물의 지붕 아래 삼각형 벽면의 부조)와 메토프, 프리즈 등 화려한 부조들로 건물을 장식했다.
그러나 이 화려하고 장엄했던 신전은 아테네의 몰락과 함께 긴 세월이 지나면서 신전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크게 훼손되었다. 로마,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 건물로,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미나렛(모스크의 탑)이 추가되기도 했었다. 또한 화재로 인한 피해를 입었고 종교적 이유로 나체 조각상이 파괴되기도 했으며 여러 차례 약탈도 겪어야 했다. 특히 오스만 제국 때는 무기고로도 사용되었는데 1687년 베네치아와의 전쟁 중 폭발하면서 신전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한편 1799년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 주재 영국 대사로 임명된 토마스 브루스 엘긴(Thomas Bruce, 7th Earl of Elgin)은 재임 후 약 20여년 간에 걸쳐 파르테논 신전을 약탈하고 훼손해 이곳에서 떼어낸 많은 문화재들을 자국인 영국으로 가져갔다. 그리하여 현재 남아 있는 신전의 조각들 중 약 반이 대영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그가 가져간 그리스 유물을 '엘긴 마블'이라 하는데, 그리스 정부에서 돌려 줄 것을 요구했지만 영국은 아직 반환할 의사가 없는 듯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의 유물의 일부는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도 전시돼 있다고 한다. 비슷한 역사를 겪었던 우리로서는 국력이 약해 자국의 문화 유산이 아무런 연유도 없는 여러 나라에 쓸쓸히 전시되고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엘긴 마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부산일보의 영국 대영박물관 편 참고)
파르테논 신전의 맞은 편에 있는 에렉테이온 신전(Ἐρέχθειον, Erechthion)은 페리클레스가 세운 건설 계획 중 마지막 건물로 BC 406년에 건축되었다. 이 신전의 이름은 아테네의 건국 영웅인 에렉테우스(Ἐρεχθεύς, Erichthonius) 왕의 이름에서 명명된 것이며 그를 모시는 신전이다. 또한 도시 아테네를 놓고 서로 겨루었던 아테나와 포세이돈 두 신을 위한 신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쪽으로는 아테나 여신을, 이노니아식 기둥이 있는 북쪽은 포세이돈 신을, 남쪽의 카리아티드 기둥이 있는 쪽은 에렉테우스 왕을 위한 공간으로 각각 분리했다.
바닥의 경사 때문에 신전의 서쪽과 북쪽은 동쪽과 남쪽에 비해 약 3.5m 정도 낮게 지어졌다. 전체적으로 이오니아식 기둥이 늘어선 외관에 내부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 폴리아스(Athena Polias)' 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외부 기둥 중 사람 형상을 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카리아티드이다. 카리아티드(Caryatid)는 여인 모양의 기둥을 말하는데, '카리야이(고대 펠로포네스에 있던 도시 국가)의 처녀(maidens of Karyai)'라는 뜻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당시 카리야이(Karyai)는 그리스 연합군의 패배를 예상하고 페르시아 쪽에 섰다. 그러나 전쟁은 그리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그리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카리야이의 남자들은 모두 죽이고 여자들을 데려와 노예로 삼았다. 또한 신전 건축에 카리야이의 여인 모양을 기둥으로 만들어 배신을 영원히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 있는 카리아티드는 모조품이고 진품 중 하나는 영국 대영 박물관에 나머지 다섯 개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에렉테이온 신전이 지어진 이곳은 신화 속에서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이 도시를 놓고 서로 겨루던 자리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아테나의 올리브 나무와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세워져 있었다는데 지금은 신전 옆에 아테나 여신이 이 도시에 선물로 준 올리브 나무가 한쪽에 자라고 있다. 물론 수천 년 전 그 옛날의 것은 아니지만 그 후손 나무쯤은 되지 않을까 한다.(실제 100여 년 전에 다시 심은 것이라 한다.)
아크로폴리스 정상의 전체 크기는 동서로 270m, 남북으로 약 156m에 이르는 꽤 넓은 공간인데, 파르테논 신전 맞은 편 그리스 국기가 있는 동북쪽으로는 건물이 없이 광장처럼 빈 공간으로 남겨져 있다. 이곳은 마치 전망대처럼 사람들이 모여 아테네 시네 전경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 동쪽에서 시내를 바라보면 멀리 작은 산이 보이는데 이 산이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해발 277m의 리카베투스 언덕(Lycabettus Hill)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신전들은 긴 영욕의 세월을 겪으면서 파괴되고 훼손되어 당당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쉽게 그려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옛날 아테네 사람들이 가졌을 자부심은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해 본다. 도시 중심 156m의 언덕에서 자신들이 일군 시가 전경을 바라보며, 또 도시 어느 곳에서나 고개만 들면 눈에 들어오는 이 아크로폴리스의 신전을 바라보며 그들은 자신들의 영광의 역사가 영원하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아크로폴리스의 정문 프로필라이아로 발길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프로필라이아에서 바라보면 맞은편에 낮은 언덕이 하나 보이는데 이곳이 프닉스 언덕(Πνύξ, Pnyx Hill)이다. 이곳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클레이스테네스가 민주 개혁을 한 후 BC 507년부터 국가 운영의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민회가 열렸던 곳이자 당대의 유명 정치인이 대중을 상대로 연설을 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즉 아테네 민주주의의 상징인 곳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외침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과 신을 섬기는 성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가 하면 이곳 프닉스 언덕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쩍하게 떠들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해야 했으므로 신을 모신 성스러운 장소인 아크로폴리스와는 구별되는 영역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장소에 6천 명에서 1만 명 정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토론을 하거나 연설을 했으므로 프닉스는 '숨 막힘', 또는 '숨 쉬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한다.
프로필라이아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큰 바위 언덕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아레오파고스이다. 아레오파고스(또는 아레이오스파고스 Άρειος Πάγος, Areopagos)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 기구로서 최초의 법정의 기능을 했던 곳인데, 그 뜻은 ‘아레스 신의 바위’라는 의미이다. 신화에 의하면 포세이돈의 아들인 할리로티오스(Halirrothios)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의 딸 알키페(Alkippe)를 납치하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아레스는 자신의 딸을 납치하려 했던 할리로티오스를 살해한다. 이후 포세이돈은 격분하여 아들을 살해한 아레스를 신들의 법정에 고발한다. 이에 신들은 이곳 아레오파고스에 모여 아레스의 살인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고 한다. 재판 결과 아레스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이렇게 하여 이곳이 인류 최초의 법정이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신화적 의미와 상징성 때문에 지금도 그리스의 대법원을 아레오파고스라 부른다고 한다.
한편 아레오파고스는 초기 기독교와 관련하여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이 51년에 이곳에서 최초로 기독교 교리를 설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성을 기억하기 위해서인지 바위 남쪽에는 당시 다신교를 숭배하던 아테네인들에게 유일신인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는 내용인 사도행전 17장 22절~34절의 말씀이 새겨진 동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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