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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2013년 7월 남부 아프리카

트럭 여행 3(나미비아 스와곱문트, 스피치코프)

2013년 7월 29일(월) 맑음, 트럭킹 6일째(소서스블레이→스와곱문트)

05 : 45 기상(밤새 바람 엄청 불었음)

06 : 30 아침(빵, 커피)

07 : 00~09 : 00 사막투어(나우클루프 국립공원 내 소서스블레이 듄)

09 : 30 출발

10 : 00 남회귀선

14 : 00 스와곱문트 바닷가(플라밍고 서식지)

15 : 00 액티비티 회사(Township tour 420R/1인)

16 : 30 숙소(Amanpuri Lodge) 도착

20 : 30 이태리 식당 저녁(스파게티 72R, 피자75R, 콜라)

22 : 30 취침

  지난 밤, 바람이 무섭게 불었던 탓에 춥기도 하고 엄청난 소리에 놀라기도 해서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이른 시각 어쩔 수 없이 침낭을 털고 일어났다. 아침은 역시 간단하게 빵과 커피로 잠이 덜 깬 위를 채웠다. 우리가 케이프타운 노마드 사무실에서 출발 전 지불했던 액티비티팩 가운데 두번째 사막투어를 하는 날이다.(첫번째는 첫날 San족(부시맨)의 생활 문화를 간단하게 체험했던 투어였다.) 오픈 트럭을 타고 우리를 데리러 온 현지 가이드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주로 사막에서 이동하면서 살았던 부시맨들이 어떻게 혹독한 환경에서 적응해 왔는지, 사막 곳곳의 크고 작은 동식물들을 발견할 때마다 독성 유무나 위험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재미있었던 가이드)

(↑우리가 탔던 트럭에서 본 풍경)

(↑사막 투어 중)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차가 심한 사막이라 나는 늘 이런 꼴(?)로 다녀야 했다.)

 

  오전 투어가 끝나자 우리는 플라맹고의 서식지이자 온갖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독일보다 더 독일답다는 도시(독일의 식민지로 유럽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았다고 한다.) 스와곱문트(Swakopmund)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남회귀선(南回歸線, Tropic of Capricorn)을 지났는데 위키 백과에는 '태양이 머리 위 천정을 지나는 가장 남쪽 지점을 잇는 위선이다. 매년 북반구의 겨울 동지 때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며, 동지선(冬至線)이라고도 한다.'고 나와 있다. 더불어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 않아 1년에 약 15m씩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단다.

(↑남회귀선을 지나며)

 

  스와곱문트에 도착해 우리가 처음 본 것은 바닷가에 있는 수많은 홍학(플라밍고 Flamingo)떼였다. 우리는 모두 함성을 질렀고 가이드 투투씨는 플라밍고를 잘 볼 수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플라밍고는 긴 다리와 목은 학을 그대로 닮았지만 다리와 몸 색깔이 분홍빛을 띄고 있다. 긴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우리는 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도시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흡사 어느 유럽의 휴양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바닷가 산책로는 잘 닦여 있었고 중간 중간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나 잔디도 예쁘게 조성해 놓았다. 눈에 띄는 사람들은 거의 백인들이었고 바닷가를 향해 있는 집들은 정갈하고 예뻤다. 아마 우리가 다음날 타운쉽투어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이 도시를 한적하고 깨끗한 백인들이 많이 사는 그런 도시로만 기억했을지 모른다. 

 (↑홍학떼, 망원 렌즈가 없어 좀더 가까이 당겨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바닷가 산책로에서 바라본 풍경)

 

  이제 우리는 온갖 액비티를 할 수 있다는 이곳에서 내일 각자 어떤 것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스카이다이빙에서부터 돌고래크루즈, 샌드보딩, 카약킹 등 하늘, 바다,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온갖 즐길 것들이 있다. 액비비티 상품을 파는 회사 사무실에서 DVD로 각 활동 내용을 본 후 우리는 저마다 하나씩을 고른다. 나는 이곳 흑인들이 주로 사는 모습이 궁금해 타운윕 투어(Township tour, 420R/1인)를 하기로 한다. 내일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이 투어에는 나와 내 동료 선생님, 호주 아줌마 줄리, 그녀의 친구인 영국인 지네인과 두 딸이 신청했다. 이제 숙소로 가는 길. 이곳 스와곱문트에서는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된다. 더운 물이 콸콸 나오고 와이파이도 잡히는 깨끗한 롯지의 2인 1실에서 이틀 밤을 묵게 된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만푸리 롯지(Amanpuri Lodge)! 아침을 제외한 3끼를 사 먹어야 하지만 마트가 멀지 않고 큰 길가에 있는 이 숙소를 우리는 모두 만족해 했다. 우리가 각자 방을 배정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지난 며칠 간 먼지로 뒤범벅이 된 옷을 모아 세탁을 맡기는 일이었다. 빨랫감을 싸 들고 리셉션으로 갔더니 우리 팀 대부분이 세탁물을 맡기고 있었다. 다음으로 한 일은 더운 물에 샤워하기. 내가 원래 깔끔을 떠는 사람은 아니지만 며칠 간 사막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난 후 하는 샤워는 그 동안의 피로가 풀리는 것은 물론 기분도 아주 상쾌하게 해 주었다. 저녁은 투투씨와 엘로이가 추천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단체로 하기로 했다. 대체로 서양 사람들이 많이 먹는 까닭에 1인분의 양이 아주 많았다. 스테이크를 시킨 옆 사람들을 보니 고기 크기가 우리에겐 2인분은 될 듯했다. 크림스파게티를 시킨 동료 선생님은 결국 반 정도밖에 못 먹었고 피자를 시킨 나도 결국 반은 싸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휴게 시설이 잘 갖춰진 아만푸리롯지)

(↑우리가 묵었던 방 내부)

 

2013년 7월 30일(화) 맑음, 트럭킹 7일째(스와곱문트)

07 : 00 기상

08 : 00 아침(토스트, 달걀, 커피, 요쿠르트)

12 : 10~16 : 00 타운쉽 투어(Township tour)

17 : 00 마트(저녁거리 쇼핑)

18 : 20 저녁(과일, 닭튀김)

21 : 00 취침

  늘 새벽에 일어나야 했던 며칠 간이 습관이 되어 버린 건지 아침에는 일찍 눈을 떴다. 이불 속에서 미적거리다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간다. 시리얼, 커피, 우유, 요쿠르트 등이 준비돼 있고 우리가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토스트와 달걀 주문을 받는다. 간단하지만 적당하게 아침을 먹고 다시 여유 시간을 갖는다. 10시에 투어 차량이 올 것이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 와이파이가 잡히니 카톡도 보내고 뉴스도 검색하며 시간을 보낸다. 10분쯤 전에 리셉션으로 갔더니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 투어가 11시로 미뤄졌단다. 투어를 일찍 마치고 도시 이곳 저곳을 돌아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어중간하게 되었다. 그러나 11시에도 차량은 오지 않았고 다시 12시에 투어를 시작한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2시간이나 지체한 후에 차량과 가이드가 나타났다.

  타운쉽(Township)이란 단어를 찾아 보니 원래는 우리의 군(郡), 구(區)와 같은 행정 구역을 뜻하는 거지만 남아프리카 지역에서는 흑인 거주지를 이르는 말로 쓰인단다. 물론 지금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누구에게나 있지만 식민 시절에 흑인들은 이곳 타운쉽에서만 거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대부분 흑인들이 살고 있는데 우리가 묵은 숙소 근처 도심이 왜 한적하고 주로 백인들만 눈에 띄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흑인 거주지는 이렇게 투어 형태가 아니고는 여행자가 개별로 다니기에는 다소 위험하다고까지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에 선한 인상이었다. 이곳 규모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의외로 컸다. 초기에 조성된 원도심에는 아직도 낡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지만 사막처럼 황량하고 광활한 지역 한쪽에는 재개발 사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아직 전기나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활에는 많은 불편이 있다고 한다. 어린이 집과 초등학교, 재개발 지역, 전통 의상을 입은 유명한 아주머니가 있는 한 가정을 방문하고 난 뒤 가이드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들이 평소 먹는 소박한 음식과 음료를 차려놓았다. 투어 마지막이라며 가이드 청년은 집 뒤쪽 작은 공터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거기에는 전통 복장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청년들은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부르며 환영했다. 서너 곡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짧은 공연은 끝났고 나는 얼마 되지 않은 팁과 함께 즉석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오늘 이 동네 여기저기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즉석 사진을 찍어줬는데 언제나처럼 사진을 받아든 그들 모두는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이 청년들도 의외의 선물인 사진을 받아들고 아주 좋아하는 눈치다.

(↑마을 입구에 있는 가게)

(↑어린이 집)

(↑하교하는 학생들)

(↑작은 시장)

(↑개발이 한창 중인 신시가)

(↑구시가 마을 풍경)

(↑우리가 방문한 초등학교)

(↑이 마을에서 꽤 유명한 아주머니, 친 자식을 포함해 열 서너 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단다.)

(↑가이드의 집에 차려진 손님을 위한 밥상)

(↑우리를 위해 공연을 하는 청년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청년)

 

  투어가 끝나고 나와 동료 선생님은 이곳 학교에 작은 선물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아프리카로 여행 오기 전에 각자 100$씩 현지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는데 그 중 첫번째 100$을 여기서 쓰기로 했다. 투어를 안내했던 가이드 청년에게 우리의 의향을 말했더니 현금보다는 학용품을 사 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투어가 끝나고 우리 세 사람은 근처 마트로 함께 갔다. 그리고 가이드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이 학교에서 필요할 것 같은 물품들을 사 담았다. 100$이 그리 큰 돈은 아니나 이것저것 사 담으니 카트에 가득 찼다. 가이드 청년은 내 이메일을 적어 가 학용품을 전달해 주고 메일로 알려주겠노라고 한다.

  오늘은 투어를 늦게 시작했던 탓에 시내를 둘러볼 시간적 여유는 없었지만 마음은 뿌듯하고 보람이 있었다. 부디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2013년 7월 31일(수) 맑음, 트럭킹 8일째(스와곱문트→스피치코프)

06 : 30 기상

07 : 00 아침(토스트, 달걀, 커피, 요쿠르트)

09 : 00 출발

13 : 00 스피치코프 캠프 도착

13 : 30 점심

14 : 20 드라이브(돌산 오르기)

15 : 00 가이드 투어(산책, 부시맨 파라다이스)

18 : 40 저녁(소혀, 생선)

19 : 30~21 : 00 캠프파이어(국가 부르기, 게임)

21 : 30 취침

  다시 안락했던 잠자리를 뒤로 하고 야생(?)으로 떠나야 하는 날이다. 목적지는 아프리카의 마테호른이라는 별칭을 가진 거대한 바위 산 스피치코프(Spitzkoppe)다. 이곳은 황량한 들판에 거대하고 희안한 모양의 암석이 산처럼 여기저기 둘러서 있는데 그 중 압권은 역시 해발 1,728m 높이의 바위 산이다. 사실 우리가 서 있는 지표에서의 높이는 700여 미터라 하지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이 거대한 바위 산 꼭대기는 까마득해 보인다.

(↑거대한 바위 산 스피치코프)

 

  이곳 캠프는 샤워장이나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불편한 곳이다. 물은 제대로 나오는 곳이 없어 세수조차 힘들고 화장실은 문도 없이 작은 칸막이만 둘러쳐져 있다. 하긴 그 동안 우린 길거리에 차를 세워 놓고 이른바 '부쉬토일렛(bush toilet)'이라 이름 붙인 들판에서 각자 야생 동물들이 영역을 표시하듯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흔적을 남기며 다니지 않았던가?

  캠프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근처 나즈막한 돌산을 오른다. 신기한 모양으로 생긴 거대한 바위를 딛고 올라가 서니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눈에 들어온다. 텐트를 친 캠프에 다시 돌아오니 이번에는 이곳 현지 가이드가 와 우릴 안내한다. 그를 따라 30여 분을 걸어 가니 'Bushman Paradis'라는 작은 입간판이 보인다. 오래 전 우리가 부시맨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다 간 흔적들이 바위에 벽화로 새겨져 있다. 가이드는 이 벽화는 그들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증거이자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고 했다. 더불어 이동하며 살았던 이들의 후손들이 다시 이곳으로 올 때 이곳 주변에 대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는 설명을 한다. 문명 이전 사람들의 삶이 단순하지만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식사)

(↑바위 산 산책하기) 

(↑부시맨 파라다이스)

 

  오늘 저녁 식사 메뉴는 소혀 스테이크란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불을 지펴 무쇠 항아리에 삶았던 것이다. 커다란 소혀를 통째로 양념을 넣어 삶은 후 스테이크처럼 썰어 먹는다. 내 기억으론 우리 중 반 정도는 맛있게 먹었고 나머지 반 정도는 시큰둥했던 것 같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그래서 또 다른 메뉴였던 생선을 더 많이 먹었다. 저녁 식사 후 어김 없이 가이드 투투씨의 내일 일정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고, 이제 조금씩 친해진 우리는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간단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누군가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자고 했고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모였으니 각기 자기 나라의 국가를 부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딱히 준비한 노래가 없었던 우리는 각 나라별로 팀을 이뤄 앞으로 나가 자기 나라의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못해 웃기도 하고 서로 박자를 맞추지 못해 웃기도 했는데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여행 와서 느닷없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 좀 어색하긴 했으나 우리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환호하며 크게 박수를 쳤다. 결국 우리는 앵콜을 받았고 이번엔 동요 '고향의 봄'을 불렀다. 역시 큰 박수를 받았다. 우리는 알지 못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애국가 멜로디가 참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는 아무도 웃거나 떠들지 않고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고 말해 준다. 잠시였지만 괜히 가슴이 뜨거워졌던 순간이다.

(↑스피치코프의 우리 텐트)

(↑잘 삶겨진 소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