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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국내 여행

이주홍 문학관과 요산 문학관

 2012년 11월 9일(토) 오늘 부산 교원연수원의 토요 자율 연수 프로그램으로 부산의 두 문학관을 갔다. 우리나라의 문학관은  전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거나 개인이나 사단법인이 운영하는 것 모두를 합쳐 54개가 있단다. 그 중 부산에는 문학관이 모두 세 개가 있는데 향파 이주홍 선생을 기리는 <이주홍 문학관>, 요산 김정한 선생을 기리는 <요산 문학관>, 마지막으로 추리 소설가 김성종씨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해운대 달맞이 고갯길의 <추리 문학관>이 그것이다. 이 중 앞의 두 개는 작가 사후 그들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고 추리 문학관은 작가 자신이 개인적으로 연 문학관이라 앞의 두 개와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오늘은 그것들 중 앞의 두 문학관을 돌아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먼저 간 곳은 온천동에 있는 이주홍 문학관이다.(홈페이지 http://www.leejuhong.com/) 1920년대 중반에 등단한 이주홍 선생은 아동문학가로서 잘 알려진 작가이다. 아동문학가로 첫 손가락에 꼽는 이가 방정환이라면 그 다음으로 마해송, 이주홍을 꼽는다고 한다. 그는 주로 <신소년>, <별나라> 등의 소년 잡지를 만드는 데 오랫동안 참여했다.

 합천 출생인 이주홍 선생은 일제 시대를 지나 1947년까지 좌파 활동을 주로 하면서 문학, 연극, 만화, 회화 등에도 매우 능했다고 한다. 1947년 이후 수산대(현 부경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주로 부산에서 활동했는데 현재 문학관은 부인이 사는 집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만들었단다. 2층 전시실에는 귀한 자료들이 많으니 꼼꼼히 둘러볼 만하다.

 

<문학관 입구>

 

 

<현관>

<1층 강당>

<1층에 전시된 '신소년' 잡지 표지>

<2층 전시실>

<선생의 흉상>

<담 너머 선생의 부인이 사시는 집이 보인다.>

 

 향파 이주홍 선생이 태어난 합천 해인사 근처에는 <이주홍 아동문학관>이 있고 일해(새천년)공원 내에는 그의 시비와 흉상이 있단다.

 

 다음으로 간 곳은 남산동에 있는 요산 문학관이다.(홈페이지 http://www.yosan.co.kr/) 요산 선생은 이주홍 선생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부산의 작가다. 긴 활동 기간에 비해 그의 작품은 장편 한 편과 41편의 단편만이 발표됐다. 완벽을 추구했던 그의 성품 탓에 미발표 원고가 많았다. 요산 문학관은 복원한 그의 생가 옆에 국비와 시비 보조를 받아 2006년에 완성했으며 '요산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향파 이주홍과 함께 요산 김정한의 문학은 철저한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성격적 차이가 있어 향파는 서정적 리얼리즘, 요산은 비판적 리얼리즘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요산은 89세의 생애 동안 문학과 삶이 하나인 몇 안 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산거족>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하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를 좌우명으로 평생 살았다. 또한 철저한 사실주의 작가로 후배나 제자들이 글에 '이름 모를 꽃'이라거나 '잡초'라는 말을 쓰는 것을 매우 나무랐다고 한다. '패랭이', '제비꽃' 등 구체적, 사실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요산 선생은 89세의 나이에 자서전을 시작했지만 끝내 마무리하지 못하고 1996년 협심증과 폐기종으로 영면했다.

<요산 문학관 입구>

<복원된 요산의 생가>

<1층 카페 입구>

<2층으로 간는 계단>

<2층 전시실 입구>

<2층 전시실>

<요산 선생이 직접 그려 만들었다는 식물 도감이다.>

<요산 선생의 흉상>

<지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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