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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2024년 5월 동남아시아 3개국

말레이시아 페낭(Penang) 1 리틀 인디아, 페라나칸 맨션, 스트리트 아트, 빅토리아 여왕 시계탑, 이스턴 앤 오리엔탈 호텔 뷔페 식당, 페낭 더 탑

  페낭(피낭, Pulau Pinang 또는 Penang)은 말레이 반도 서부와 페낭 섬으로 구성된 말레이시아에서 두번째로 작은 주(州)라고 한다. 보통 페낭이라고 하면 페낭 섬을 떠올리는데, 주도(州都)는 페낭 섬 안에 있는 조지타운(George Town)이다. 주 전체 인구는 약 180만 명 정도로 중국계가 대다수(약 70%)이지만 말레이인이 18%, 인도인이 12%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조지타운(George Town)은 1786년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이곳에 기지를 설치하면서 해협 식민지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 다. 도시 이름도 영국의 조지 3세 국왕에서 유래된 것이다. 2008년에는 믈라카(Melaka, 또는 말라카 Malacca)와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조지타운은 오랜 시간이 묻어나는 나지막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은데,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로 지정되면서 사실상 재개발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로 공항을 오가면서 보니 섬과 육지를 연결한 대교가 눈에 띄었다. 페낭 섬과 말레이 반도를 잇는 피낭대교(Jambatan Pulau Pinang. Penang Bridge)인데, 우리나라  현대건설에서 시공을 맡아 1985년에 완공한 교량이란다. 믈라카 해협을 오가는 선박들의 통행을 고려해 사장교(다리의 하중을 케이블로 지지하는 형식)로 건설된 이 다리는 총 연장이 13.5km로 2009년 완공한 인천대교(총 연장 21.38km, 교량 구간 18.35km)와 비교하면 길지 않지만 건설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 중의 하나였으며 말레이시아의 명소이기도 하다. 이 다리가 완공되기 전에는 육지와 섬 사이를 잇는 페리가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는데, 지금은 교통량이 증가해 제 2 피낭대교 건설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나는 조지타운을 둘러보기 위해 미리 숙소를 이곳에 정했다. 내가 예약한 아르메니안 스트리트 헤리티지 호텔(Armenian Street Heritage Hote)은 1층에 한국 식당(오빠 식당)을 비롯한 몇 개의 상점이 있는 상가로 조성돼 있었다. 건물은 일부 리모델링을 했다지만 이름(Heritage) 그대로 전체적으로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다만 객실은 두 사람이 쓰기에 넉넉할 만큼 널찍했고 청소 상태도 좋았다. 싱가포르에서 묵었던 방은 싱글 침대 두 개가 거의 붙어 있었고, 바닥에 캐리어 두 개를 펼쳐놓을 수도 없을 만큼 좁아서 꽤 불편했기 때문에 낡고 오래되기 했지만 넓은 객실의 이 호텔에 만족했다. 다음 날 아침 7층에 있는 루프탑 바(Rooftop Bar)에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메뉴는 조금 부실(?)했지만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았다.

(↑ 호텔이 있는 아르메니안 거리(Armenian Street, 상좌)와 호텔 옥상에서 본 풍경)

  그런데 나는 이 호텔이 있는 거리 이름이 왜 '아르메니안 스트리트(Armenian Street)'인지가 궁금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원래 이곳은  말레이인 정착지가 존재했기 때문에 '말레이 레인(Malay Lane)'이라고 불렸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다 1808년 이후 아르메니아 상인들이 들어와 이 거리를 중심으로 정착하게 되면서 거리명이 아르메니아 거리로 변경되었단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들은 1937년 그들이 세웠던 교회가 철거될 무렵, 주변의 싱가포르, 홍콩 등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현재는 19세기 중반 이후 이주한 중국인들이 주로 살고 있다고 한다.

  페낭 도착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멀지 않은 리틀 인디아(Little India)부터 가 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나와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천천히 걸었다. 가는 길에 모스크가 눈에 띄었는데 이름이 '카피탄 켈링 모스크(Masjid Kapitan Keling)'라고 한다. 이슬람 역사 중심지에 있는 이 모스크는 19세기 초, 조지타운의 인도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 지어졌단다. 굳이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리틀 인디아는 이름 그대로 조지타운 내의 인도인 거주지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인도 특유의 진한 향신료 냄새가 풍겨 왔고, 인도 식당은 물론 인도 의상과 물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당연히 행인들 중에는 독특한 억양의 인도말 소리와 함께 인도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왔던 방향과 다른 쪽 길로 들어서니 입구를 알리는 우리나라의 홍살문(紅살門, 붉은색은 아니지만) 같은 노란색 문이 서 있다. 세 번이나 여행했던 인도에서의 힘들고도 재미있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곳에는 1883년 지어졌다는 페낭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 사원인 스리 마하마리암만 사원(Sri Mahamariamman Temple)이 있다고 하는데, 날이 더워 지쳐 있는 상태였던 탓에  아마 나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 같다.

(↑ 카피탄 켈링 모스크(Masjid Kapitan Keling, 좌)와 리틀 인디아 입구 문)
(↑ 리틀 인디아(Little India))

  다음로 도착한 곳은 페라나칸 맨션(Pinang Peranakan Mansion)으로 입장료(2인 50 RM(링깃 Ringgit)가 있었다. 1893년에 지어졌다는 이 대저택은 당시 페낭에서 가장 부유했던 중국 상인 '청켕퀴(Chung Keng Kwee)'의 거주지이자 사무실이었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한 부동산 개발 업체가 매입해 복원한 후 현재는 페라나칸 문화를 볼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저택에는 수천 점의 페라나칸 유물, 골동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입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대형 긴 식탁이 있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페라나칸 인테리어 디자인이라고 한다. 건물 내부는 층별로 식당, 침실, 응접실 등으로 공간이 분리돼 있고, 당시 상류층의 생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가구, 도자기, 장신구나 의상 등 화려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페라나칸 문화는 수세기 동안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던 중국인 이민자들의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를 말한다고 한다. 이들은 현지 말레이시아 또는 인도네시아 인들과 결혼하면서 음식, 언어, 예술, 건축, 종교 등 다양한 측면에서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페라나칸 문화는 지금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 페라나칸 맨션(Pinang Peranakan Mansion))

  후텁지근한 날씨에 오래 걷기가 쉽지 않아 카페를 찾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카페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 후 일명 '벽화 거리'로 알려진 페낭 스트리트 아트(Penang Street Art)로 갔다. 이 거리 양쪽에는 크고 작은 기념품점, 카페, 식당 등이 늘어서 있다. 큰길과 작은 골목 벽면 곳곳에는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여러 가지 벽화들이 장식돼 있는데 하나씩 찾아 보는 재미가 있다. 

  이 거리의 벽화 그리기는 2008년에 작가 어니스트 자카레비치(Ernest Zacharevic)가 'Children on a Bicycle'이라는 작품을 처음 그리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다양한 국내외 예술가들이 이곳에 벽화를 그리면서 세계적인 스트리트 아트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벽화는 조지타운 외곽에도 있어서 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삼륜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투어를 하면 조지타운의 다양한 관광 명소와 함께 골목 곳곳에 숨겨진 벽화들을 구석구석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 벽화 거리에서 'Children on a Bicycle' 외에도 같은 작가의 'Little Boy & Pet Dinosaur', 또 다른 작가인 Lisan Koh의 'The Cat Mural',  Azwad Yusoff의 'Trishaw Man' 등은 사람들 사이에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페낭 스트리트 아트(Penang Street Art))
(↑ 어니스트 자카레비치(Ernest Zacharevic)의 'Children on a Bicycle'(좌)과 삼륜자전거)

 

  얍 콩시(Yap Kongsi, 葉公司)공식적으로 '자제궁(濟宮, Choo Chay Keong)'이라고 하는데 그 옆에 나란히 있는 람옝통 얍 콩시(Lam Yeong Tong Yap Kongsi)와 함께 중국 푸젠성(福建省) 출신 '얍씨(葉氏)' 가문의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다. '콩시(Kongsi, 公司)'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 또는 공동체를 의미하는데, 중국 이민자들의 가문 회관이자 사당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타운에는 이런 '콩시'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들이 여럿 있는데 1924년에 지었다는 이 얍 콩시(Yap Kongsi)와 함께 가장 규모가 큰 '쿠 콩시(Khoo Kongsi)'가 대표적이라고 한다. 얍 콩시는 규모로는 그리 크지 않지중국풍이 느껴지는 건물 외부의 디자인이 매우 복잡하고 화려하다. 날이 더웠던 탓에 안에는 굳이 들어가지 않았다.

(↑ 얍 콩시(Yap Kongsi, 葉公司 ))

 

<※ 이하 내용 6월 21일 추가>

  숙소 근처의 역사 지구를 돌아본 후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먼저 간 곳은 빅토리아 여왕 시계탑(Queen Victoria Memorial Clock Tower)이었다. 라이트 스트리트(Light Street)와 비치 스트리트(Beach Street)가 만나는 교차로에 있는 이 탑은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희년(禧年( diamond jubilee), 보통 75년이나 영국에서는 60주년을 의미한다.)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무어(Moor)식 시계탑이다. 그래서 빅토리아 통치 기간을 매년 1피트씩 계산해 시계 중심까지 이르는 탑의 높이를 60피트(약 18m)가 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 빅토리아 여왕 시계탑(Queen Victoria Memorial Clock Tower))

  빅토리아 여왕 시계탑(Queen Victoria Memorial Clock Tower)이 있는 곳에서 비치 스트리트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벽돌로 쌓은 오래된 성벽이 보이는데 콘월리스 요새(Kota Cornwallis)이다. 18세기 후반 영국 동인도 회사가 건설한 요새(Fort)로 당시 인도(벵골) 총독이었던 콘월리스 백작(1738~1805)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요새는 역사상 전투에 쓰여진 적은 없지만 내부에는 배의 돛대 모양을 한 등대와 1603년에 주조된 '세리 람바이(Seri Rambai)'라는 큰 대포가 있다고 한다. 

(↑ 콘월리스 요새(Kota Cornwallis))

  비치 스트리트를 따라 요새의 성벽을 돌아가면 거리 이름 그대로 시원한  바다를 따라 긴 해변 산책로(Padang Kota Lama(Esplanade))가 펼쳐진다. 18세기에 조성되어 처음에는 크리켓 경기장으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낚시를 하는 등 다양한 레저 활동을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길을 걷다보니 바다 한쪽으로 크루즈 항구가 있어서 멀리 정박한 크루즈 선이 보였다. 또  눈앞으로 커다란 미색의 건물이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페낭 시청(Penang City Hall, Majlis Bandaraya Pulau Pinang)이라고 했다. 거리에는 무슨 기념비(?)가 선 작은 공원도 있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고 바다 구경도 했다. 이 길은 정돈되고 잘 닦여 있어서 예쁘기도 하고 산책하기에도 좋았지만 주변에 그늘이 없어서 오래 걸을 수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 

(↑ 해변 산책로(Padang Kota Lama(Esplanade))

  사실 이 날 우리가 숙소에서 꽤 거리가 있는 이곳까지 온 이유는 이스턴 앤 오리엔탈 호텔(Eastern & Oriental Hotel, Penang)  뷔페 식당(Sarkies)에 점심을 예약했기 때문이었다. 더위 속에 먼 길을 걸어 도착한 호텔은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와는 달리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다. 입구에서부터 직원들이 인사를 건네며 친절하게 문을 열어 줘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도 금방 회복되는 듯했다. 편안한 소파가 있는 로비에서 점심 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가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은 로비가 있는 건물과 연결된 다른 쪽 건물 1층에 있었다. 식당 입구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좌석을 안내 받았다. 식당 중앙과 벽쪽으로 음식이 놓여 있고 대부분의 좌석은 예쁜 정원 쪽으로 놓여 있었다. 음식은 샐러드, 해물, 육류, 과일, 디저트, 커피와 차 등으로 여느 뷔페 식당의 차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음식은 재료도 좋은 것 같았고 우리 입맛에도 맞았다. 우리는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호텔 정원에서 보는 바다가 아주 예뻐서 정원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이스턴 앤 오리엔탈 호텔(Eastern & Oriental Hotel, Penang)과  뷔페 식당(Sarkies)
(↑ 이스턴 앤 오리엔탈 호텔 정원 풍경)

  여유 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 근처에 있는 페낭 더 탑(The Top Penang)으로 갔다. 우리 숙소가 있는 역사 지구 내 어디서나 고개를 돌리면 눈에 들어오는 높은 건물이 있는데 바로 249m 높이의 '콤타르(Komtar)' 빌딩이다. 이 건물 상부층에는 전망대, 레인보우 스카이워크, 쥬라기 연구센터, 수족관, 어린이 놀이 기구 등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있는 일종의 테마 파크가 있다. 나는 사전에 클룩에서 전망대를 비롯한 몇 곳을 묶어 둘러볼 수 있는 표를 예약했다. 

  우리는 먼저 65층 실내 전망대를 둘러보고, 68층 야외에 있는 U자 형태의 유리 바닥으로 된 통로가 있는 레인보우 스카이워크에도 가 봤다. 물론 고소공포증이 극심한 나는 발을 들여놓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함께 간 언니만 한 바퀴를 걸었다. 전망대에서 보니 중간중간 높은 빌딩들이 보이고 한쪽으로 키 작은 건물들이 아기자기 모여 있는가 하면 멀리 산과 바다도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전망은 야경도 아름답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야경은 포기해야 했다. 전망대를 내려와 공룡 공원(쥬라기 연구센터), 수족관도 보러 갔다. 전체적으로 내부 시설들이 오래되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재미있게 꾸며져 있었고 규모도 작지 않았다.

(↑ 페낭 더 탑(The Top Pen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