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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2024년 4월 MSC 크루즈

고치(高知, Kochi) 고치성, 히로메 시장

 고치(高知, Kochi)는 일본 고치현(高知県)의 현청 소재지이자 최대 도시이다. 두번째 기항지인 고치에서 우리는 크루즈 항구와 멀지 않은 고치성(高知城)과 성 근처에 있는 히로메 시장(ひろめ市場)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입국 심사를 거치지 않아도 돼 어제 첫 기항지인 가고시마에서와 같은 긴 대기줄은 없었으나 배에서 내려 터미널을 빠져나가기 전 여권을 일일이 대조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우리는 예정대로 고치성에 가기 위해 터미널 주차장에 대기 중인 택시를 잡아 타고 고치성으로 향했다.
  고치성(高知城)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시내 어디에서도 눈에 들어온다. 17세기 초에 처음 지어져 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 성은 현존하는 일본의 100여 개의 성 중 시마네현 마쓰에시에 있는 마쓰에성(松江城)과 함께  전란의 피해가 적어 당시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성이라고 한다. 고치성은 1601~1611년 사이에 건립되었지만, 지금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최초 건립일로부터 약 100년 후에 지어진 것이란다. 
  봄이면 벚꽃이 가득 핀 정원이 아름답다는 고치성은 원래 영주의 거주지로서뿐 아니라 적의 침입을 막는 요새의 역할을 했던 만큼 언덕 위에 있는 성의 본 건물인 천수각(덴슈가쿠, 天守閣) 외에 언덕을 올라가며 높이 쌓은 돌담과 여러 건축물들이 배치돼 있다. 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일종의 중앙 출입문 같은 추수문(오테문, 追手門)이다.(보통 다른 성에서는 '오테몬(大手門)'으로 쓴단다.) 이 문을 지나면 옆으로는 높은 돌담이 둘러쳐 있는 낮은 계단들이 여러 번 나온다. 오를수록 점점 경사가 급해지는 이런 계단참을 댓번쯤 지나니 너른 마당(?)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시작되는 계단은 경사가 가팔라 다리가 아프신 우리 선생님은 더 이상 오를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이 공터 한쪽에 있는 벤치에서 쉬기로 하시고 선생님 친구분과 나만 다시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이 계단이 끝나는 곳에 이르니 성의 본 건물인 천수각에 이르는 누문(樓門)이 있다. '혼마루(本丸, 성의 본 건물)에 이르는 길'이라는 이 문을 지나야 비로소 저 아래에서부터 봤던 천수각이 있는 마당에 들어서게 된다.

(↑ 성의 입구와 정문인 추수문(오테문, 追手門))
(↑ 천수각으로 오르는 길과 누문(樓門))
(↑ 5층의 목조 건물인 천수각(天守閣))

  5층의 목조 건물인 천수각(天守閣)은 기와 지붕 양 끝에 '샤치(또는 샤치호코)'라는 꼬리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모양의 반은 물고기, 반은 용(호랑이?)이라는 일본의 전설 속의 동물 상()을 장식해 놓았다. 이 지붕 장식은 입구의 '추수문'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조형물은 보통 성곽 등의 용마루에 장식해 놓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궁궐이나 불교 사찰 같은 큰 건물의 용마루에 있는 '치미' 같은 것이라 한다. 기본적으로 물고기 모양의 이 샤치(샤치호코) 장식은 건물에 불이 났을 때 물을 뿜어 불은 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목조 건물의 특성상 화재에 취약하다 보니 이를 경계하고 예방하기 위한 상징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티켓(¥450/인)을 사야 하고 신발을 벗어야 한다. 건물 내부는 1층부터 차례로 한바퀴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각 층마다 각각의 용도에 따라 나눠진 크고 작은 방들이 있고, 각 층은 가파른 내부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나는 이 가파른 내부 계단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가신 선생님은 별 두려움도 없이 씩씩하게(?) 잘 오르신다. 이렇게 어렵게 마지막 층까지 오르자 고치 시내 전경이 한눈에 시원하게 펼쳐졌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도 불고 맑은 날이라 정갈하게 잘 정돈된 도시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잠시나마 고소공포증을 이기고 5층 난간을 한 바퀴 돌아봤다. 물론 벽쪽으로 몸을 바짝 붙여서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서!

(↑ 고치성 내부)
(↑ 고치성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

  
  천수각에서 나와 성을 내려올 때는 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들어왔던 마당 입구 맞은편 한쪽에 있는 작은 문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나서니 오솔길 같은 한적한 길이 높은 돌담벽을 따라 나 있었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천수각 건물을 올려다 보니 사람들이 5층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 고치성을 내려오며)

 
  고치성에서 나와 다음으로 간 곳은 걸어서 약 8분 거리에 있는 히로메 시장(ひろめ市場)이다. 일본의 한 여행 사이트에서는 이곳을 '고치 여행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미식의 집결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일반적인 시장과 다른 점은 이곳에 있는 60여 개의 상점 대부분이 음식을 파는 가게(물론 일부 식료품이나 기념품 가게도 있지만)라는 것이다.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다양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그리고 시장 중앙에는 400여 개의 좌석이 있는 식탁이 마련돼 있어서 여러 가게의 음식을 사와 이곳에서 앉아 먹을 수 있다. 간단한 어묵 꼬치를 비롯해 고치의 소울푸드라는 '카츠오노 다타키(가다랑어 짚불구이)', 스테이크 등 이 지방 전통 음식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다양한 음식과 음료, 아이스크림 등의 디저트는 물론 여러 종류의 술을 맛볼 수도 있어서 '고치의 부엌'으로도 불린단다.

(↑ 히로메 시장(ひろめ市場) 정문(좌)과 후문)
(↑ 히로메 시장 내부)

  그런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 즈음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좁은 시장 안은 꽉 들어찬 사람들로 걸음을 옮기기도 쉽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당연히 중앙에 있는 식탁은 모두 만석(滿席)으로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시장을 한 바퀴 다 돈 끝에 우리가 들어온 출입구 근처의 두어 개의 식탁이 딸린 가게에서 기본적인 음식을 시키고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나는 다른 가게에서 어묵탕과 초밥 두 개를 더 사 와 다시 자리에 합류했다. 음식은 대체로 깔끔하고 맛있긴 했는데 조금 비싼 느낌이 들었다. 점심으로 세 사람이 초밥 3개, 튀김 3개, 어묵탕, 아이스크림 3개를 먹었는데 ¥5,050(약 48,000원)을 썼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재미있는 시장 구경을 했다.

(↑ 히로메 시장에서 우리가 먹은 음식)

 
  하도 정신 없이 점심을 먹은 터라 시장에서 나와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바쁘게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마침 시장 근처에 구글 평점이 좋은 카페가 하나 있다. 멀리서도  고풍스럽고 특이한 외관이 눈에 들어오는 이 카페의 이름은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 メフィストフェレス)'이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 등장하여 인간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악마 메피스토(메피스토펠레스를 줄인말)의 이름이다. 또 일본 만화 <청의 엑소시스트>라는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인 퇴마사의 이름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그런지 입구에 있는 장식이 좀 괴기스럽긴 하다. 
  그러나 독특한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30년 전쯤의 세련된 어느 고급 다방(?)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중장년층 이상이 주로 이용할 것 같은 카페 분위기와는 달리 안에는 의외로 20~30대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카페 입구에 차와 커피,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 보이고 그 앞에 계산대와 빵과 디저트가 있는 진열장이 있다. 나무로 된 바닥을 밟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보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잘 가꿔 놓은 작은 정원이 안쪽에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치즈 케이크와 함께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 크루즈가 있는 항구로 돌아오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amp;amp;uarr; 카페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의 외관(위)과 입구)
(&amp;amp;uarr; 정원이 있는 카페 내부)
(&amp;amp;uarr; 카페에서 우리가 먹은 치즈 케이크와 커피, 음료.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시는 두 분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