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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국내 여행

제주도 해안길 걷기3

3/16(수) 맑음

종달초등학교→종달항→종달수국길→지미봉밭길→하도해변→(올레 21길)세화해변→월정리해수욕장(달콤한 아침) (30,134걸음 18km, 4시간 30분)

 

09:30 김해공항 출발

10:30 제주공항 도착

10:50 111번 버스 탑승(→ 고성환승정류장 201번 환승 2,800₩)

12:30 종달초등학교 하차(점심 고등어구이 15,000₩, 커피 2,400₩)

13:50 해맞이해안로올레→ 21코스(하도해수욕장)

16:20 평대리 해수욕장

18:00 숙소 <달콤한 아침> 도착 (1박/₩70,000)

18:30 GS25월정해변점(우유, 죽, 과자, 사과 외₩11,000)

 

미루고 미루다 더는 어쩔 수 없어 떠밀리다시피 제주에 다시 갔다. 헝가리를 떠나오기 전부터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제주도 해안길 걷기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1월 1일 귀국해서 열흘 간 격리를 마치고 퇴직을 마무리하고(귀국 비용 청구, 퇴직금 정산, 건강 검진 등) 실업급여까지 신청했는데, 왠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제자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났지만 몸도 마음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유도 없이 우울하고 의욕도 생기지 않더니 결국 몸이 아팠다. 그렇게 며칠을 앓고 나니 몸을 움직이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다시 며칠을 집에만 갇혀(?) 지내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냈다. 더 미루다 가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2019년 11월 11일 끝낸 두 번째 제주도 해안길 걷기의 마지막 지점인 종달초등학교에서 이번 걷기를 시작했다. 제주 공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종달초등학교 앞까지 오니 이미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해안길로 접어들기 위해 종달항이 있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학교 뒤편으로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니 식당이 보여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밥을 든든히 먹고 배를 채우고 나니 걸음에 조금 힘이 실린 듯했다. 나는 곧 바다가 보이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종달초등학교에서 바닷가 쪽으로 걷는 길)

내가 이정표로 삼았던 종달항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고 종달수국길은 때가 너무 일러 꽃이 필 기미도 없어 모두 그냥 지나쳤다. 나는 곧 하도해변을 지나 올레 21코스 중 하나인 '해맞이 해안로'를 따라 세화해변으로 향했다. 길가에는 여러 아기자기한 구조물도 있고 올레길 스탬프를 찍는 곳도 있어 지나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하도해변을 지나는 길)
(↑세화해변으로 가는 길)

올레 21코스를 벗어나 해안 쪽 길을 계속 가다 보니 절이 하나 보인다. 용문사라는 이 절은 바닷가에 연해 있어서 산속에 있는 일반적인 절보다는 특이하긴 하지만 규모도 작고 오래된 건축물로도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절에는 제주도 유형문화재인 목조석가여래좌상(木造釋迦 如來坐像)이라는 높이 38.5㎝의 작은 불상이 있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언뜻 보아도 온화한 얼굴에 체형에 비해 두상이 상대적으로 커서 귀여운 인상의 부처님이다. 이 불상은 17세기 말~18세기 전반에 살았던 조각승 진열(進悅)이 조성한 것으로 시주자와 조각승, 불상의 존명이 확실하게 밝혀져 있어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고찰하는데 귀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사전에 정보를 얻어 갔더라면 시간을 내서 한번 보고 나올 걸 그랬다.

(↑제주 용문사)
(↑목조석가여래좌상,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는 용문사가 있는 세화해변을 지나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계속 걷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대리 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소박하고 작은 해변에는 멀리 하얀색, 빨간색 등대가 마주 서 있고, 누가 갖다 놓았는지 소꿉놀이에서 봄직한 예쁜 탁자와 의자를 장식해 둔 곳도 보인다. 

계속 해변을 따라가면 예약한 숙소가 있는 월정리 해수욕장까지 너무 많이 둘러가야 해서 해수욕장을 나와 일반도로를 따라 걸었다. 가는 길에는 이제 곧 만개할 목련이 어느 집 낮은 돌담 안에서 꽃봉오리를 가득 달고 있었다.  3월 중순이니 봄이 분명하고 꽃도 계절을 따라 제 소임을 다하는 것이려니 싶다. 다시 더 걷다 보니 여러 대의 풍력 발전기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지나던 곳이 행원리였는데 이곳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선 마을이 있단다. 오래전부터 지형적 영향으로 바람이 유난히 많아 '바람코지('바람받이'의 제주 방언)'였던 이 마을은 바닷가 쪽으로 풍력발전기가 설치되면서 '아름다운 풍차마을'로 탈바꿈했단다. 바다와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풍경을 방파제를 따라 걸으며 볼 수 있단다. 또한 행원리 포구는 조선시대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이 제주로 귀양 올 때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이라고도 한다.(행원리 풍차마을은 뉴제주일보 기사 참조)

(↑대평리 해수욕장)
(↑목련과 풍력발전기)

이제 숙소가 있는 월정리 해수욕장을 향해 조금 더 속도를 내 본다. 몸은 지치고 걸음은 무거웠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몸 상태도 좋지 않고 첫날이라 욕심을 내면 안 되는데 처음 예상보다는 조금 무리한 것 같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은 후 바닷가로 나가 봤다. 해변을 따라 편의점, 식당, 카페, 숙소 등이 늘어선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나는 잠시 저녁 무렵의 바다를 바라보다 편의점에 들러 저녁 식사와 내일 아침을 대신할 만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월정리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월정리 해수욕장과 숙소 '달콤한 아침')

 

3/17(목) 흐림→비, 바람 많음

숙소(달콤한 아침)→제주밭담 테마공원(올레 20길)→김녕해수욕장→김녕금속공예벽화 마을→함덕해수욕장→조천만세동산→숙소 아침해변팬션 도착(30,464걸음 18.3km, 4시간 30분)

09:30 달콤한 아침(월정리해수욕장) 출발

10:20 제주밭담 테마공원(올레 20길 합류)

10:55 김녕해수욕장 야영장

11:35 김녕금속공예벽화 마을

12:40 바당지기 식당(전복)13,000

15:00 함덕해수욕장

15:55 조천만세동산

16:00 GS25 조천상록점(우유, 달걀, 김밥, 치킨, 어묵, 우산 26,000₩)

16:10 숙소 제주아침해변팬션 도착

 

어제 저녁에 편의점에서 사 둔 먹을거리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오전부터 날씨가 많이 흐리다. 아무래도 가는 길에 비를 만날 것 같다. 숙소가 있는 월정리 해수욕장에서 올레 20길을 따라 걸었다.

30~40분쯤 걷다 보니 '제주밭담 테마공원'이라는 입간판이 있는 기와지붕을 한 건물이 보인다. 밭담이란 밭의 가장자리를 돌로 쌓은 둑을 말하는데, 밭의 경계를 표시하기도 하고 바람 많은 제주에서 거센 바람을 걸러 내어 농작물 보호하고 생육을 돕는 기능도 한단다. 이곳 제주밭담 테마공원은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제주밭담을 한 공간에서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테마공원이란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느라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제주밭담 테마공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라는 건물도 보인다. 오는 길에 풍력발전기가 많이 보이더니 이런 기관이 여기에 있구나 싶었다.

(↑월정리 해수욕장을 지나는 길)
(↑제주밭담 테마공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다시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김녕해수욕장을 지난다. 이 해수욕장에서는 캠핑도 가능한지 한쪽에는 간혹 텐트도 눈에 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변 근처에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이 갖춰진 야영장이 따로 있어서 캠핑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물에 발을 담글 일도 없고 캠핑을 하며 쉬어갈 일도 없어 당연히 그냥 지나친다.

(↑김녕해수욕장)

해수욕장을 지나 지도를 보니 김녕 금속공예벽화 마을이라는 표지가 눈에 띄어 마을로 들어섰다. 10명의 예술가들이 버려지는 금속 제품과 현무암을 이용하여 제주 해녀의 일생을 주제로 마을의 각 건물마다 조형물을 설치해 벽화마을이 탄생했다. 마을에는 주민들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가정집 벽에 총 29점의 작품이 설치돼 있어 길을 걸으며 여러 가지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마을을 돌다 보니 육지에서 일반 집의 대문 역할을 하는 제주 전통 가옥에 흔히 쓰이는 '정낭(錠木)'이 설치된 집이 보인다. 현대식으로 지은 집 밖에 있는 정낭을 보니 옛것이 옛것으로만 박제되지 않고 지금의 것과도 잘 조화돼 삶 속의 문화로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집 주인장은 하루 종일 멀리 출타 중인 모양이다.('정낭'에 대해서는 제주상명정낭마을 참고)

(↑김녕 금속공예벽화 마을)
(↑김녕 금속공예벽화 마을을 지나며 본 바다 풍경)

마을을 지나서 점심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이 되자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배낭을 뒤져보니 우산이 없어서 부랴부랴 근처 마트에 가서 우산 하나를 샀다. 그러고 나니 겨우 여유가 생겨 점심 먹을 생각이 든다. 식당에 앉아 식사를 주문하고 지도를 보며 오늘 걸어야 할 거리를 대충 짐작해 보니 빗속을 걷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중간에 걷기를 그만둘 수도 없으니 빗속을 뚫고 다시 걷는 수밖에!

그렇게 비와 함께 걷다 보니 오후 세 시 무렵 함덕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수욕장 근처에 오니 앞에 보이는 길 저 모퉁이에 뭐가 있을 것 같다는 예상은 맞았고, 왠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 수능을 마친 친구 딸과 함께 와서 2박 3일을 묵었던 곳이다. 그때 여행은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장소 이름도 잊고 있었다. 

(↑함덕 해수욕장)

함덕 해수욕장을 지나 걸음을 재촉해 오늘 예약한 숙소 근처 조천만세동산에 도착했다.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이 공원은 제주의 3대 항일운동 중 하나인 조천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으로 애국선열 추모탑, 3.1 독립운동 기념탑, 만세운동 참가자의 묘비, 만세운동 공적비 등의 조형물과 항일 기념관이 있다. 조천 만세운동은 3·1 운동의 하나로 제주시 조천읍에서 1919년 3월 21일부터 3월 24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있었던 독립 만세운동이라고 한다. 이 조천 만세운동 후에 서귀포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체포돼 실형을 살았고 이들 중 일부는 월북자가 되거나 제주 4·3 사건에 휘말려 희생되었다. 조천 지역은 항일 정서가 강했으며 사회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지역이었단다. 또 광복 후에는 제주인민위원회와 남로당제주도당 위원장을 역임한 안세훈도 조천 사람이었다는 이유 등으로 조천 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때 늦은 감은 있지만 후세가 역사를 잊지 않고 바르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리라 생각했다.

오늘은 비가 오기도 했고 몸도 많이 지쳐서 많이 힘든 하루였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 편의점에 들러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먹을 것을 조금 사는 것으로 오늘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조천만세동산)

 

3/18(금) 비→흐림, 바람 많음

숙소(제주아침해변팬션)→조천비석거리→삼양해수욕장→화북포구(올레 16길 합류)→산지등대→제주국제여객터미널→제주국제공항(32,862 걸음 19.7km, 5시간)

09:30 숙소 출발

09:45 조천비석거리

11:10 삼양해수욕장 에오마르 카페(아몬드 크루아상, 카푸치노 13,000₩)

12:35 화북포구(→올레 16길 합류, 산길로 접어듦)

13:30 산지등대(산을 넘는 길이라 약간 무섭기도 하고 힘이 많이 듦)

14:00 제주국제여객터미널

14:30 동문시장

15:05 제주용담2동 우편취급소

15:35 제주국제공항(롯데리아, 감자튀김1,600₩)

16:30 라마다플라자 호텔 도착(공항→호텔 버스 2,800₩, 호텔 115,190₩/1박, 조식 31,150₩))

저녁(일품 순두부, 해물 순두부 9,000₩)

발마사지(황후애, 1시간 40,000₩)

맥주, 캐슈너트(이마트, 8,980₩)

 

3/19(토) 제주 → 부산

호텔→공항, 택시 5,100₩

 

오늘은 제주 해안길 걷기를 완성하는 날이다. 마지막까지 힘을 내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숙소를 나오니 하늘도 흐리고 바람이 무척이나 사납다. 바다 쪽을 보니 파도가 덮칠 듯이 달려와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나는 길을 따라 숙소에서 멀리 않은 조천비석거리로 들어섰다. 제주도에는 역사가 오래된 마을마다 비석거리가 있다는데, 조천에도 비석거리가 있다. 예부터 조천은 교통수단을 바닷길에 의존했고 이 포구를 거쳐 많은 관리들이 오고 갔다. 그래서 제주목사나 판관 등 지방 관리들의 부임 또는 이임 시에 이들의 공적과 석별의 뜻을 기리는 비(碑)를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모두 7기의 ‘불망비’, ‘선정비’라고도 부르는 제주목사와 제주판관을 지낸 이들의 비석이 남아 있는데, 비석 뒷면이 많이 깎여 있어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숙소가 있던 조천항 근처 바다 풍경)
(↑조천 비석거리)

올레 18길을 따라 걷던 나는 조천초등학교 앞을 지나면서 바닷가로 둘러가는 올레길을 버리고 일반 도로인 신북로로 들어섰다. 이 길은 가깝게 보이는 대섬(죽도)으로 이어지는 올레길보다 거리가 조금 단축된다. 그렇게 길을 잡아 도착한 곳은 작고 한적한 어촌 마을 신촌포구이다. 나는 여기서 다시 올레 18코스를 따라 삼양해수욕장까지 걸었다.

삼양해수욕장에 다다르니 베이커리를 겸한 카페가 보인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1층에 진열된 맛있는 빵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빵과 커피로 점심을 대신하기로 했다. 나는 아몬드가 입혀진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를 주문해 2층으로 올라갔다. 이 카페는 총 4층 규모로 바다 바로 앞에 있어서 넓은 창으로 시원한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이 카페에서 약 1 시간 정도 머물면서 쉬었다.

(↑신촌포구)
(↑삼양해수욕장  에오마르  카페)

카페에서 나와 바다를 다시 보니 여전히 파도가 높다. 오늘은 바람 때문인지 파도가 영 잦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올레길을 계속 걷는다. 바다를 따라 걷다 살짝 안쪽으로 비켜 걸으니 때 맞춰 개화한 매화도 보이고 돌담도 지난다. 가끔은 이렇게 예상하지 않은 공사 현장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삼양 해수욕장 근처 바다)

(↑삼양 해수욕장을 지나 화북포구로 가는 길)

화북포구에 다달았을 때 포구에는 밧줄로 묶인 작은 배들이 줄지어 있었다. 바다 가운데는 큰 배들도 정박해 있는 모양인지 여러 대가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아마도 오늘은 세찬 바람과 거친 파도 때문에 다들 출항을 못한 것 같다. 

(↑화북포구)

포구를 지나 지도가 일러주는 대로 계속 걸어갔더니 바다로 이어지는 개울이 나온다. 지도에서는 저 개울을 건너가야 하는 길을 표시하고 있는데 실제는 건널 수가 없다. 카카오맵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 일을 가끔 겪게 된다. 남의 밭을 가로질러 가야 하거나 개울을 건너야 하거나 의도하지 않게 산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개울을 거슬러 오르기로 했다.

길을 걷다 보니 4.3유적지 표지석이 서 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4·3위원회가 확정한 희생자 수는 2020년 현재 14,532명이나 이것은 공식 집계된 희생자 수치이고 진상조사보고서는 4·3 당시 인명 피해를 2만 5,000명에서 3만 명으로 추정한다. 이 숫자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한다.(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참조)

이 시기 이곳 화북동(당시 곤을동)에서도 큰 희생이 있었던 모양이다. 1949년 1월 5일과 6일 양 일간 곤흘동(곤을동) 마을이 불에 태워지고 주민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약 40명의 군인들이 곤흘동을 포위하고 집들을 수색하고 돌아다녔다. 이 군인들은 나이가 젊은 사람들은  데리고 가서 죽이고 67채의 가옥을 모두 불태워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이후 곤흘동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은 주변 마을로 옮겨졌다. 이곳 곤을동(곤흘동)처럼 4·3 당시 전소된 가옥이 3만여 채에 이르는데, 4.3이 종결된 이후에도 복구되지 못한 속칭 ‘잃어버린 마을’만도 100개소에 이른다.(곤흘동 마을터 참조)

내가 지나는 이곳이 지금은 전현 흔적을 찾을 수 없는데 원래는 67 가구가 사는 마을이었다니 참 가슴이 아팠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폐허로 만들고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했어야 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정치적 이념이건 개인적인 주장이건 극단으로 치닫는 이런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다.

(↑화북동 4.3유적지 표지석)

무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해 올레길 18코스를 따라 걷는다. 이제는 해안 쪽 길을 벗어나 산으로 들어선다. 올레길을 따라 오른 길은 약 96m 정도의 '알오름'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내가 많이 지쳐 있던 탓이었는지 꽤 힘들었다. 나는 오름 정상에서 '사라봉'으로 오르는 길을 버리고 '산지등대'가 있는 길로 들어선다. 한적한 산길을 걷자니 조금 무서움도 느껴져서 뒤도 돌아보고 가끔 멀리 마주오는 성인 남성의 모습이 보이면 긴장하기도 한다. 이럴 때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싶다. 

드디어 등대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제주항의 모습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등대를 지나오자 곧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나는 제주항 국제여객 터미널을 향해 간다.

(↑알오름 오르는 길)
(↑산지등대와 제주항)

제주항은 제주도로 출입하는 물동량의 약 70%를 담당한단다. 육지에서 들어오는 각종 식료품, 공산품, 우편물과 택배들은 거의 전부 제주항을 통해 들어온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남해안으로 오가는 여객선들은 물동량이 늘어남에 따라 성업 중이라고 한다.

연안여객터미널에서는 인천, 부산, 경상남도 사천, 전라남도 목포, 여수, 고흥, 완도, 진도, 추자도를 오가는 노선이 운항하고 있고 국제여객터미널은 초기에 중국과 일본행 정기편이 운행되다 이용객 저조로 중단되었다. 이후 크루즈선만 부정기적으로 정박했는데, 2020년 코로나로 인해 크루즈선 운항이 전면 중단된 이후로는 국내를 운항하는 대형 카 페리 선박들이 이곳 국제터미널에서 출도착 여객을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항 국제여객선터미널 내외부)

제주항 여객터미널을 나와 올레길 18코스를 다시 만났다. 이 길은 바다와 이어진 산지천을 따라가는 길인데 주변을 잘 정돈해 예쁘게 꾸며 놓아 걷기에도 즐거웠다. 천변에는 큰 부를 이루고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김만덕을 기리는 '김만덕 기념관', 현대 미술의 걸작 집합소라는 '제주 아라리오 미술관'도 있었는데, 오늘 제주공항까지 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이곳도 모두 그냥 다 지나쳐 왔다.

(↑김만덕 기념관과 아라리오 미술관)
(↑산지천변 풍경)

이제 드디어 이 긴 여정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제주공항으로 간다. 산지천에서 동문시장을 지나 중간 이정표로 정한 용담2동 우편취급국까지 약 30분을 걸었다. 그리고 걷기를 계속 하자 드디어 하늘에 비행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공항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철망이 처진 길을 따라 비행기 계류장인 듯한 곳을 다 지나오니 앞쪽으로 멀리 공항 청사가 눈에 들어온다. 공항청사 안으로 들어서는 것으로 나는 걸어서 제주도 한 바퀴 돌기를 완성했다. 

(↑중간 경유지인 동문시장과 용담2동 우편취급국)
(↑제주공항으로 가는 길)
(↑제주국제공항)

 

나의 '제주도 해안길 걷기' 계획은 총 12박 13일 동안 3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는 2019년 7월 24일부터 7월 27일까지 3박 4일간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한경면사무소까지 걸었다. 2차는 2019년 11월 6일부터 11월 12일까지 6박 7일간 1차 도착지인 한경면사무소에서 종달초등학교까지 구간을 걸었다. 마지막인 이번 3차는 종달초등학교에서 제주공항으로 돌아오는 여정으로 3박 4일간 이루어졌다.

사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각자의 속도대로 걷고 쉬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 한 바퀴 걷기가 이렇게 완성되고 나니 조금 뿌듯하다.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uarr;제주도 해안길 걷기 완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