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이라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에는 노란 은행잎이 수없이 쏟아져 내린다. 마치 봄날의 벚꽃처럼. 떨어지는 것, 사그라드는 건 언제나 그렇듯 쓸쓸하다. 아무리 내년 봄이 오고 다시 꽃이 피고 단풍이 든다 해도 이별을 고하는 지금 이 순간은 차마 환하게 웃음을 보낼 수가 없다.
문득 영락공원에 계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한테 가야겠다. 그리고 아버지도 만나야지. 그렇게 2014년 11월 7일(금) 오전, 집을 나서 영락공원으로 향했다. 지하철 1호선 범어사역 2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를 탄다. 걸어서는 약 15~20분 거리, 줄지어 늘어선 생화와 조화를 파는 가게들을을 지나 작은 경사로를 지나면 길 양쪽으로 수많은 분묘들이 들어선 공원묘지가 보인다. 그야말로 묘지의 숲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이 이렇게 흔하고 일상적인 일임을 실감하게 된다.
(↑범어사 역에서 영락공원으로 가는 마을 버스)
버스는 영락공원 정문 입구에 선다. 버스에서 내리자 나는 차가 지난 반대으로 3~4미터를 거슬러 길게 계단으로 이어진 샛길이 있는 반대 편으로 향한다. 봉안실이 있는 영락원으로 오르는 지름길이다. 계단 끝에 올라서면 주차장, 거기서 다시 S자로 구부러진 경사로를 오르면 1, 2 영락원 건물이 있다. 화장한 분골을 봉안하는 곳이다. 할머니는 1실에, 아버지는 2실에 있다. 두 분을 같은 건물 봉안실로 옮겨 달라는 요청을 했더니 부부 이외에는 안 된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건물에 각각 계시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보이는 정문 입구)
(↑1, 2 영락원으로 가는 길)
봉안실에 있는 할머니, 아버지 유골이 있는 정확한 위치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가신 이의 이름을 치면 건물 입구에 서 있는 기계가 봉안실의 정확한 위치와 번호를 알려준다. 봉안실 안, 나는 할머니 이름이 적힌 위패 앞 바닥에 주저앉는다. 세상의 어떤 죽음도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이 없었겠는가마는 아흔두 살, 남들은 천수를 다 누렸다 하겠으나 가난 속에서 날 키운 노년의 마지막이 내겐 그저 고맙고 미안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늙고 주름진 얼굴이지만 사진 속의 우리 할머닌 참 곱기도 하다. 이젠 10년도 더 지난 세월, 그만 슬픔도 잦아들련만 나는 또 갑자기 울컥한다. 생의 마지막을 편안히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던 할머니에 대한 연민인지, 홀로 남겨진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 나는 아직도 타당하지 않은 서러움에 머리가 또 복잡해진다.
(↑1, 2 영락원 건물)
(↑납골함 번호를 찾아주는 무인 안내기)
(↑봉안실 내부)
제1 영락원에 아버지가 계신다. 살아 생전 미워하고 원망했던 분이지만 그에게도 크고 작은 고민과 좌절감이 있었을 것임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도 같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버지란 이름으로 살아야 했지만 그에게도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이 있었음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인정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는 끝내 화해하지 못한 숙제가 남겨져 있다. 그에게도 내게도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지금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라면 그런 용기를 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 그래서 더 안타까운 이름이다.
(↑제1 영락원에는 살아 남은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받을 수 없는 편지를 보내는 우체통도 있다.)
영락원의 수많은 봉안함과 마을버스 창밖에 늘어선 무덤들이 평소 굳이 외면하거나 잊으려던 내 삶의 다른 이름은 아닐지 다시 생각해 본다. 내 삶의 목표가 죽음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언제나 후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다. 죽음이 결코 두렵거나 그래서 회피해야 할 것만은 아니다. 늘 내 주변에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이 살아야 하지 않를까?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함께 먹어야겠다.
(↑수없이 늘어선 공원묘지의 분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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