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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2021년 12월 그리스

그리스 아테네 7일 국립 정원, 신타그마 광장, 멜리나 메르쿠리 기념관, 아테네→부다페스트

12월 26일(금) 아테네(Athens) 7일 국립 정원, 멜리나 메르쿠리 기념관, 신타그마 광장, 아테네→ 부다페스트 (15,000보 / 9km)

 

  • 숙소 → 신타그마 광장 근처 호스텔 → 국립 정원(National Garden) → 멜리나 메르쿠리 기념관(Melina Mercouri Foundation Exhibition Area) → 무명용사 기념비 → 호스텔 → 공항

 

드디어 그리스에서의 긴 여정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 스케줄이 밤 11시라서 우리는 사전에 그 동안 묵었던 숙소에 오늘 날짜로 숙박 연장을 요청했으나 마침 예약이 있어서 연장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신타그마 광장 근처에 있는 호스텔에 하루를 예약하고 밤 늦은 시간까지 잠시 쉬다 가기로 했다. 아침에 지하철 메탁슈리기오(Μεταξουργείο, Metaxourgeio)역 근처에 있던 숙소를 나와 신타그마 광장 근처의 호스텔로 짐을 옮겼다.

 

우리는 여유롭게 산책을 하기 위해 신타크마 광장과 인접해 있는 국립 정원(Εθνικός Κήπος, Natinal Garden)으로 갔다. 원래는 그리스 왕국의 초대 왕의 왕비인 아말리아(Amalia)에 의해 독일의 농학자 프리드리히 슈미트(Frederick Schmidt)의 설계로 1840년 왕궁의 정원으로 처음 조성되었다. 1927년에 규모를 키워 새롭게 단장하고 일출부터 일몰까지 일반인에게 개방하면서 국립 정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국립 정원의 주 출입구는 이 공원을 처음 조성한 왕비의 이름을 딴 거리 레오포로스 아말리아스(Leoforos Amalias) 대로에 있으며, 정원 안에는 연못, 식물 박물관, 카페, 어린이 도서관, 놀이터 등이 있다.

(↑국립 정원)

 

보통 신타그마 광장의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매시 정각에 근위병 교대식이 거행된다. 이와는 별도로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는 군악대가 참가하는 공식 근위병 교대식이 크게 열린다. 정확히는 국회의사당 무명의 용사 기념비(Μνημεῖον τοῦ Ἀγνώστου Στρατιώτη) 앞서 진행되는 이 화려한 퍼레이드를 보려고 우리는 약간의 시간 여유를 두고 광장 앞으로 갔다. 교대식이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이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관람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무명의 용사 기념비를 지키는 그리스 병사들을 '에브조네스(Evzones)'라고 하는데, 1868년 왕실 근위대로 출발해서 2차 대전 이후 의장대로 재편되었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처음 등장한 에브조네스는 ‘훌륭한 벨트를 한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이들의 독특한 군복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브조네스의 병사 선발 기준은 매우 까다로워 키 186㎝ 이상, 준수한 외모에 건강한 신체, 그리고 무엇보다 인내력이 뛰어난 병사들이 선발된단다. 이 근위병들은 한 시간에 한 번씩 교대식을 할 때를 제외하고 절대 움직일 수 없다. 실제 2001년 시위가 있었을 때, 2010년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이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야 했다고 한다.

(↑근위병 교대식)

('신타크마 광장'은 그리스 아테네 2일(2) 내용 참조) https://audience65.tistory.com/258

 

그리스 아테네 2일(2)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신타그마 광장

우리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나와 매표소 근처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갔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Μουσείο Ακρόπολης, Acropolis Museum)은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크로

audience65.tistory.com

 

그리스 여행 내내 나는 그들의 많은 문화재가 그리스 내에 있지 않고 대영 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거나, 튀르키예(터키), 이탈리아 등지에 있다는 것에 많이 불편했다. 물론 원래 소유 국가의 동의 하에 정당하게 반출됐거나 임대된 상태라면 모르겠으나, 문화재 반환 운동을 하면서 공식적인 반환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들어 반환을 거부한다고 하니 불편함을 넘어 화가 나기도 했다. 아마 일제 시대 무단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생각하면서 감정이 이입됐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먼 나라 사람인 나조차 이렇게 안타까운데 당사자인 그리스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해외로 무단 반출된 자국 문화재에 대한 이런 그리스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실제 문화재 반환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대표적인 인물이 멜리나 메르쿠리(Μελίνα Μερκούρη, Melina Mercouri, 1920년 10월 31일 ~ 1994년 3월 6일)이다. 멜리나 메르쿠리 그리스의 대표적인 배우이며 문화부 장관을 두 번이나 지낸 행정가이자 정치인,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리스에서 정치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1945년 그리스 국립극장에 입단하면서 연극 배우로 데뷔한다. 그러다 1955년에 영화 데뷔작인 스텔라》에 출연한 이후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페드라》 등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1960년에는 미국 출신 감독 줄스 다신(Julius Dassin)이 연출한 일요일은 참으세요》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이후 줄스 다신과 멜리나 메르쿠리는 각자의 배우자랑 이혼한 뒤 재혼한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1967년 그리스에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그리스 시민권이 박탈되고 미국으로 추방되어 1974년 그리스가 민주화될 때까지 망명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그녀는 망명 생활 중에도 그리스의 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스의 군사 정권이 무너진 후 고국으로 돌아온 멜리나 메르쿠리는 그리스의 진보주의 정당인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에 가입했고, 1977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81년~1989년에는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다시 두번째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중 1994년 미국 뉴욕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사망했다.(멜리나 메르쿠리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경향 신문의 멜리나 메르쿠리 편 참조) 문화부 장관 시절 그녀는 영국이 약탈한 '엘긴 마블(Elgin Marbles)'을 찾아오기 위한 문화재 반환 운동을 주도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엘긴 마블은 없다. 파르테논 마블이 있다.'는 말로 엘긴이 무단 반출해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것은 그리스의 문화재임을 강조했다.

우리는 그리스를 떠나기 전에 멜리나 메르쿠리 기념관(Ίδρυμα Μελίνα Μερκούρη Εκθεσιακός Χώρος, Melina Mercouri Foundation Exhibition Area)에 가 보기로 했다. 인생의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녀의 삶을 살펴 보면서 우리의 그리스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우리가 기념관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휴업'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닫힌 문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려 아쉽게 돌아와야 했다.

(↑멜리나 메르쿠리  기념관 입구)

 

보름간의 그리스 여행 시작 전부터 많은 걱정을 했는데 큰 탈 없이 무사히 마무리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이 여행은 처음부터 다소 무리가 있는 계획이었다. 우선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유럽 각국이 조금씩 규제를 완화하고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겨울철 유행으로 확진자수가 늘어날 때라 실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이민국을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또 세종학당 2학기 수업을 마치고 성적 처리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12월 31일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짜에 맞춰 약 3일 정도의 여유만을 남겨두고 일정을 짠 것이어서 혹시 그리스에서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날짜에 변동이 있었다면 난감한 상황이 됐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되도록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숙소는 모두 에어비엔비를 이용하고 점심 한 끼 정도만 외식을 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부다페스트에 돌아와 PCR 검사에서 이상이 생기면 한국으로의 귀국에 큰 차질이 생길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내 걱정과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고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그리스, 헝가리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나는 그간 주로 혼자 다닐 때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중 무엇보다 차를 빌려 도시간 이동을 할 수 있어서 시간도 절약하고 좀 더 편안하게 다닐 수 있었다. 보통 혼자 하는 배낭 여행이라면 숙소에서 짐을 싸서 예약한 차량의 출발 시간에 맞춰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으로 이동하고 거기서 내가 원하는 도시로 간 다음 다시 숙소까지 또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 옮겨 다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데살로니키에서 아테네까지 우리가 원하는 시간 언제든지 출발하고 가는 길 중간 어디서나 쉬면서 여러 도시를 다닐 수 있었다. 특히 메테오라 수도원을 돌아볼 때 차가 없었다면 우리는 비싼 요금을 내고 택시를 대절하거나, 우리가 차를 타고 지나며 보았던 다른 여행자들처럼 걸어서 한두 군데 수도원 정도만 겨우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사전에 미리 계획한 덕분에 수니온곶을 먼저 들러 아테네에 들어간 것도 시간과 비용을 모두 줄일 수 있어서 효율적이었다. 거기에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보았던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풍경은 선물처럼 주어졌다. 

보통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꼭 먹어 보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여러 개를 시키기가 부담스럽지만 둘 이상이 모이면 몇 가지 음식을 종류별로 시키고 서로 나눠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현지 음식을 한두 번 주문해 보긴 했으나 우리는 대체로 맛을 예상할 수 있는 몇 가지 음식을 주로 먹었다. 숙소도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주로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를 이용했겠으나, 우리는 방 2~3개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집을 빌릴 수 있어서 여행 내내 모든 숙박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물론 함께 하는 여행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여행 성향이 다르고 거의 매일 24시간 함께 다닐 때가 많았으므로 처음 며칠간은 불편한 점도 있었고, 서로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이나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심지어 나는 하루 정도 여행을 이대로 계속해야 할까 하는 의문을 품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동행이 있든 없든 언제 어디를 가든 내게 있어 여행은 그것 자체로 늘 낯설고 불편한 것이다. 그것이 내 여행을 크게 방해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내가 조금씩 적응하고 욕심을 놓으면 점차 편안해진다. 

이번 여행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세 사람이 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서로에게 맞춰 주기도 하면서 적응했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어쨌든 큰 탈 없이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도와준 명숙, 명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 일일 경비: €36.8 + 3,000HUF (≒₩60,900)

신타그마 광장 근처 카페 카푸치노 €2

올리브유 500ml 2캔 €15.9

아테네 공항 버스 €5.5

호스텔 40€/3인

부다페스트 공항 → 집 택시 9,000HUF/3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