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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2021년 12월 그리스

그리스 아테네 4일 전쟁 박물관, 리케이온, 파나티나이코 경기장,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고대 아고라, 마누카 식당

12월 23일(목) 아테네(Athens) 4일 (19,400보 / 11.6km)

 

테네 숙소 → 전쟁 박물관(War Museum Athens) → 리케이온(Lykeion) → 파나티나이코 경기장(Panathenaic Stadium) → 하드리아누스 개선문(Arch of Hadrian) → 고대 아고라(Agora) → 아티카 몰(Attica Mall) → 마누카 식당(Manouka Athens) → 숙소

 

오늘부터 우리는 함께 이동해야 할 몇 곳을 제외하고 각자 자신들의 속도에 맞춰 아테네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오늘 아침 숙소를 나서서 나는 아테네 전쟁 박물관(Πολεμικό Μουσείο Αθήνας, War Museum Athens)으로 향했다. 평소 전쟁이나 무기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내가 굳이 이 박물관을 들른 이유는 그리스가 한국전쟁 참전 국가이기도 하고, 최근에 박물관 내에 그리스군 한국전 참전 기념 조형물이 설치됐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1975년에 설립된 아테네 전쟁 박물관은 고대부터 헬레니즘 시대, 비잔틴 시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의 전쟁에 관한 자료와 무기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 군대의 소장품인 약 2만5천 개 이상 되는 전시 유물뿐 아니라 영상 자료, 사진 아카이브와 도서관도 있다. 또한 이 박물관은 아테네 외에 크레타, 데살로니키 등 다른 도시에도 분관을 설립했다. 

박물관의 유물 전시실은 2 층에 있고 1층은 매표소, 도서관, 사무 공간, 중앙 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중앙 홀에는 전날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봤던 '아르테미시온의 제우스(포세이돈)'의 모조품이 서 있었다.

(↑아테네 전쟁 박물관 외관과 아르테미시온의 제우스(포세이돈)가 있는 중앙 홀)
(↑시대별로 구분된 2층 전시실)

아르테미시온의 제우스(포세이돈)는 국립고고학박물관 편 참고 https://audience65.tistory.com/259

 

그리스 아테네 3일(1) 국립 고고학 박물관

12월 22일(수) 아테네(Athens) 3일 (11,500보 / 6.9km) 아테네 숙소 →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National Archeology Museum Athens) → O Thanasis(케밥 전문 식당) → Le Greche(젤라또 가게) → 하드리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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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참전국은 총 16개국이었는데 그리스는 영국, 벨기에, 프랑스, 룩셈베르그, 네덜란드, 터키 등 유럽 7개국 중 하나였다. 1950년 6월 당시 우리나라와는 국교 관계도 없었던 그리스는 한국전에 파병을 결정했고 1개 대대와 1개 공군 수송 편대로 구성된 '그리스 한국 원정군(Greek Expeditionary Force in Korea)'이 유엔군사령부 소속으로 참전했다. 그리스 한국 원정군은 연인원 10,581명의 병력이 파병됐는데 이는 유엔군 16개국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수의 군 병력을 파견한 국가라고 한다. 그리스군은 전쟁 기간 중 이천 381고지 전투, 연천 313고지 전투, 북정령 전투 등에 참전했고, 이로 인해 전사자 186명, 부상자 543명, 전쟁 포로 3명이 발생했다. 또한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1958년까지 주둔하며 전쟁 고아를 돌보거나 빈민구제 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전후 한국 사회의 복구 노력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리스 한국 원정군 복장과 무명용사비에 새겨진 'KOREA'. 사진출처: 위키백과)

그리스군 한국전 참전 기념 조형물의 제막식은 2021년 6월 25일 아테네 전쟁 박물관에서 있었다. 그러니 나는 마침 이 조형물이 설치되고 정확히 6개월 후에 이 박물관에 간 것이다. 1층에 설치된 한반도 모양의 이 조형물은 우리나라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리스 차눌리노스(Praxitelis Tzanoulinos)가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조형물 옆에는 한국전에서 그리스군이 활약한 격전지 현장을 재현한 실물 전시장도 나란히 마련돼 있다.

(↑그리스군 한국전 참전 기념 조형물과 그리스군이 활약한 격전지 현장을 재현한 실물 전시장)

한국전 참전 조형물 제막식이 있던 날 2층 전시실에는 한국전 참전 전시 코너도 개관했다. 이곳에는 그리스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활약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으며, 한국전 관련 사진 및 문서 등 여러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벽안(碧眼)의 청춘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머나먼 동쪽 끝 남의 땅에 와서 포탄이 날아다니고 총성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었을까를 생각해 봤다. 각자의 이유와 목적이 어디에 있었든 혹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손길 때문이었든 오늘 내가 여기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저들의 희생과 용기가 우리의 역사 속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내 인생에 직접 관여된 일이 아니라도 전후 한반도라는 작은 땅에 태어나 가난을 극복하고 여러 현대사의 시련을 딛고 반 세기 이상을 살아낸 나는 이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하지 않을까? 한 국가의 역사든 개인사든 수많은 과거 시간들의 적층(積層)이라면 70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어 저 낯선 젊은이들의 시간도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내 안에 담겨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그곳에 서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잠겨 한동안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2층 한국전 참전 전시 코너)

 

전쟁 박물관에서 나와 내가 간 곳은 리케이온(Λύκειον, Lykeion)이다. 원래 리케이온은 고대 그리스의 체육 시설인 김나시온(Gymnasion) 옆에 있었던 아폴론 리케이오스(Ἀπόλλων Λύκειος, Apollon Lykeios)에게 바친 성스런 숲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유명 철학자들이 이러한 김나시온을 중심으로 학교를 세웠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곳에 BC 355년에 학교(학원)을 세웠다. 이처럼 김나시온 중심에 세운 학교로는 리케이온 외에 플라톤(Πλάτων, Plato)의 아카데미아(Ἀκαδημ(ε)ια, Akademia)가 있었고, 키노사르게스(Cynosarges)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가 세운 학교가 있었다.

(↑라파엘로(Raffaello Sanzio)의 아테네 학당. 계단 위 정중앙 서 있는 두 사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 중 하늘색 겉옷을 입고 왼손에 책을 든 이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위 그림 '아테네 학당'은 <로마 5일(2) 바티칸 박물관, 산탄젤로 성> 참조 https://audience65.tistory.com/244

 

로마 5일(2) 바티칸 박물관, 산탄젤로 성

이제 성당을 나와 바티칸 박물관으로 간다. 박물관에 도착해서야 아침에 들렀던 사무실에 다시 가 예매표를 제대로 출력해 바꿔야 했기 때문에 어렵게 박물관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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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케이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학교를 세우기 오래 전부터 소크라테스, 플라톤, 이소크라테스(Isokrates) 등의 철학자들이 토론을 벌이기도 했고, 수많은 음유시인들이 시를 낭송했으며, 민회가 열리기도 했던 곳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곳에 학교를 세울 당시 지붕이 있는 두 개의 회랑(페리파토스 Peripatos)이 있었는데 그는 아침에 제자들을 가르칠 때 주로 이 회랑 사이를 걸으면서 강의를 했다. 그런 까닭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랐던 제자들을 총칭해 '페리파토스 학파(소요(逍遙)학파, Peripatetic school)'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곳에서 12년간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리케이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떠난 후에도 강의와 연구가 계속돼 오다가 529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폐쇄되었다.

내가 본 리케이온은 폐허처럼 남겨져 그 옛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던 흔적은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는 듯한 곳에 세워진 안내판이 그 옛날 이곳이 학교였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거의 폐허로 남은 리케이온)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제 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파나티나이코(파나테나익) 경기장(Παναθηναϊκό Στάδιο, Panathenaic Stadium)이다.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지어진'이란 뜻의 칼리마르마로(Καλλιμάρμαρο, Kallimarmaro)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이름 그대로 대리석으로 지어진 세계 유일의 경기장이자 고대 아테네의 가장 큰 축제인 판아테나이아 제전(Παναθηναϊκό Φεστιβάλ, Panathenaic Festival)의 주경기장이었다. 이 경기장은 원래 나무로 만들어졌었는데  BC 329년에 대리석으로 새로 지어졌다. 그러다 140년에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가 관중석을 5만 개로 늘려 경기장을 증축하였다.

(↑경기장 전체 모습, 메달리스트들이 올라서는 시상대가 보인다.)
(↑운동의 중요성을 의미한다는 청년과 노인의 얼굴이 새겨진 동상과 등받이가 있는 귀족들의 좌석)

393년 이후 명맥이 끊겼던 올림픽을 다시 열기 위해 1895년 이 경기장은 또 한번 대대적인 보수와 증축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최대 관중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첫 근대 올림픽인 1896년 하계 올림픽이 이곳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에서 4월 6일부터 4월 15일까지 열리게 된다.

올림픽 이후 이 경기장은 그리스 선수들이 각종 국제 경기에서 이기고 돌아와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고, 대규모 음악 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그리스에서 다시 열린 2004년 하계 올림픽 때는 양궁 경기장, 마라톤 결승 지점으로 다시 사용되었다.

한편 이 경기장은 올림픽 성화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대 올림픽 개최지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는 아테네로 옮겨져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에서 이전 올림픽 도시에서 당해 개최 도시로 이전하는 의식을 진행한다. 

경기장 한쪽에는 동굴처럼 내부를 파낸 통로가 있는데 이곳은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입장하던 곳이다. 이 통로를 지나면 역대 올림픽 포스터들을 전시한 작은 전시실이 있다. 많은 포스터들 중에서 역시 눈에 띄는 건 1988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포스터였다. 

(↑경기장과 연결된 통로와 역대 올림픽 포스터 전시장)
(↑역대 올림픽 포스터와 1988년 서울 올림픽 포스터)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을 나와 나는 하드리아누스 개선문(Πύλη του Αδριανού, Arch of Hadrian)으로 걸어갔다. 이 개선문의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131년 또는 132년으로 추정한다. 이 개선문 옆에 있는 제우스 신전이 완성되었을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아테네를 방문했고 이를 기념하여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제우스 신전은 BC 515년에 처음 건축이 시작되었으나 중단되었고, 이후 BC 3세기에 다시 한번 건축이 시도되었지만 역시 완공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이 미완의 제우스 신전이 완공되었다. 이 개선문은 600여 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신전 건설이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이루진 것과 황제의 아테네 방문을 기념하여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도로 양편에서 본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하드리아누스 개선문은 약 18km 떨어진 펜텔리콘(Pentelikon) 산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이 산에서 나는 대리석은 아름답고 품질이 뛰어나서 파르테논 신전, 제우스 신전 건축에도 쓰였다. 이층 구조의 이 개선문은 아래층에 6.5m 폭의 아치형 문이 있고, 이층은 세 부분으로 나뉜 공간에 코린트식 기둥과 기둥 위에 페디먼트가 올려져 있다. 전체 크기는 높이 18m, 너비 13.5m, 깊이 2.3m이고 전면과 후면, 양 측면이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하드리아누스 개선문의 하단과 상단)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앞에서 다리 쉼을 하면서 잠시 머물렀다가 바로 옆에는 제우스 신전으로 향해 갔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서 명숙과 명지 자매를 만났다. 아침에 얼굴을 보고 나왔는데 이렇게 각자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그들은 제우스 신전을 둘러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잠시 동안의 반가운 만남을 뒤로 하고 매표소가 있는 제우스 신전 입구로 갔더니 입장 마지막 시간이 거의 임박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아쉽지만 다른 날 다시 오기로 하고 고대 아고라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밖에서 본 제우스 신전)

 

고대 아고라(Αρχαία Αγορά της Αθήνας, Ancient Agora)는 '모이다', ‘시장에 나오다’, ‘물건을 사다’라는 뜻의 '아고라조(Agorazo)’에서 유래했는데 BC 6세기경 상업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 시작되었다. 아고라는 상거래를 위해 사람들이 만나고 정치적인 의견을 나누고 재판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에 따라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아테네 시민들의 삶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테네의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했던 민회가 BC 6세기말 프닉스 언덕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이곳 아고라에서 열렸다. 또한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이 모여 철학을 논하던 학문적 토론을 벌이기도 했고, 30세 이상 아테네 시민들이 추첨에 의해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시민 법정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신들의 공간인 바위 언덕 위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와는 달리 시끌벅쩍 번화한 아고라는 온전히 인간들의 공간이었다. 

(↑아고라가 있는 유적지 옆으로 지하철이 지난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 아래에 자리한 아고라를 전체적으로 보면 서쪽에 헤파이스토스 신전, 동쪽에 아탈로스의 주랑(스토아)가 있다. 이 가운데에 아그리파 음악당을 비롯해 아레스 신전, 제우스 제단, 12신 제단이 있었다. 남쪽으로는 시민 법정, 아포스틀레스 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가면 왼쪽으로 깨끗하게 복원되어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아탈로스의 주랑(스토아)(Στοά του Αττάλου,  Stoa of Attalos) 눈길을 끈다. '스토아(Stoa)'는 '기둥이 늘어서 있는 복도'라는 뜻으로 이름에 걸맞게 이 건물에 들어서면 길게 늘어선 기둥들이 인상적이다. 현재 아테네 전체의 고대 유적 중에서 유일하게 복원이 끝난 건물이라고 한다. 아탈로스의 주랑(스토아)의 바깥 열은 45개의 도리아식, 안쪽 열은 22개의 이오니아식 기둥이 늘어서 있고 회랑 전체 길이는 115.5m, 폭은 7.1m에 이른다. 

(&uarr;위에서 본 아탈로스의 주랑)
(↑아탈로스의 주랑의 기둥들)
(↑아탈로스의 주랑 내부 박물관)

아포스틀레스 교회(성 사도 교회, Εκκλησία των Αγίων Αποστόλων, Church of the Holy Apostles)는 비잔틴 시대인 10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잔틴 시대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는 이 건물은 아고라에 있는 건축물 중 헤파이스토스 신전과 함께 오랜 세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보존이 가장 잘 돼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내부는 중앙에 돔이 있는 사각형 공간을 중심으로 십자로 교차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는 벽화도 남아 있는데 이 벽화는 17세기의 것으로 짐작한단다.

(↑아포스틀레스 교회)

고대 아고라의 중심에는 길이 147m의 미들 스토아(중앙 주랑, Middle Stoa)라는 커다란 건물이 있었는데, 시장의 기능을 담당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큰 여러 개의 주춧돌만이 남아 있어 당시 규모를 짐작해 볼 뿐이다.

(&uarr;주춧돌만 남은 미들 스토아. 뒤로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아그리파 음악당(Ωδείο Του Αγρίππα, Odeon of Agrippa)은 아고라의 중심부에 있었던 공연장이다. BC 15년경에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마르쿠스 비파니우스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선물로 지어준 건물이었다고 한다. 아그리파는 로마의 정치가, 장군일 뿐 아니라 건축가로 판테온 등 주목할 만한 여러 개의 건축물에도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로마 '판테온'은 https://audience65.tistory.com/242 참조)

건축 당시에는 약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대표적인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그리파 음악당은 화재로 붕괴되었다가 2세기 중반에 재건축되었으나 현재는 음악당 입구의 벽면 일부와 반인반어(半人半魚)의 해신 트리톤(Triton), 하반신이 뱀 모양인 두 개의 거인 기간테스상 등 모두 세 개(원래는 6 개의 조각상이 있었다고 한다.)의 조각상만이 남아 있다.

헤파이스토스 신전(Ναός Ηφαίστου, Temple of Hephaestus)은 아고라의 다른 건물들이 지금은 거의 파괴되고 그 흔적만 남은 데 비해 고대 그리스의 신전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신전은 7세기부터 1834년까지 성 요르요스 아카타마스에 봉헌된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쓰였기 때문에 큰 피해를 면했다고 한다. 이 신전은 BC 432년 완공된 파르테논 신전보다 앞선 시기인 BC 450~440년 사이에 기술자, 대장장이, 공예가, 불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위해 지어졌다. 그런 까닭에 이 주변에는 많은 도공들의 작업실과 상점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신전에는 아테네의 맹주이자 영웅인 테세우스(Θησέας, Theseus)의 부조가 많이 있어서 초기에는 테세우스 신전으로 불렸으나, 발굴 조사 결과 대장장이와 관련된 물품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헤파이스토스를 모신 신전임이 알려지게 됐다. 헤파이스토스 신전은 아고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고라의 북서쪽 나즈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uarr;위에서 본 헤파이스토스 신전)
(↑헤파이스토스 신전)
(↑헤파이스토스 신전 앞에서 바라본 고대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 아고라에서 본 헤파이스토스 신전)

그리스 신화 속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첫째 아들인데 절름발이에 추남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손재주 때문에 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Ἀφροδίτη, Aphrodite)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는데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여자 제우스'라 할 만큼 수많은 남신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헤파이스토스의 동생인 아레스(Άρης, Ares), 헤르메스(Ερμής, Hermes) 등이 있는데 이중 아레스와의 사이에서는 사랑의 신 에로스(Ἔρως, Eros)가 태어났다.

그런가 하면 헤파이스토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사용할 무기를 의뢰하기 위해 자신의 대장간을 찾아온 아테나에게 반해 강간하려고 했다. 아테나는 헤파이스토스를 뿌리치고 허벅지에 뭍은 정액을 올리브 잎으로 닦아 땅에 버렸다. 그런데 이로 인해 대지의 여신 가이아(Γαῖα, Gaia)가 임신을 하고 에리크토니오스(Εριχθόνιος)가 현재 아크로폴리스가 세워진 땅에서 태어난다. 아기로 인한 가이아의 성화에 아테나는 아기인 에리크토니오스를 맡아 아들로 삼아 기른다. 이후 성장한 에리크토니오스느 암픽티온이라는 부정한 왕을 몰아내고 아테네의 왕이 된다. 아테네 시민들을 위해 선정을 베푼 왕으로 알려진 그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발명하고, 어머니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판아테나이아 제전(Panathenaic Festival)을 처음 열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테네인들의 실질적인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헤파이스토스 신전 측면)
(↑헤파이스토스 신전 세부 모습)

 

우리가 아테네에 도착한 때가 12월 말 즈음이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꽤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짧지 않은 여행 기간 동안 큰 탈 없이 잘 지내온 것을 자축하는 의미로 저녁에는 좋은 식당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저녁 시간에 맞춰 우리가 사전에 예약한 마누카 식당(Manouka Athens)으로 갔다. 명숙과 명지 자매는 이미 식당에 도착해 있었는데 나는 근처에서 식당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 잠시 헤매다가 겨우 식당으로 올라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거리 풍경)

예약한 좌석은 아크로폴리스의 야경이 가깝게 보이는 창가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는 연신 창밖 풍경을 찍어댔고 주문한 메뉴가 상에 차려진 후에 사진 찍기를 그만두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 메뉴로 송아지고기 스테이크, 문어 다리, 돼지고기 수프, 와인을 시켰다. 세 사람이라 늘 몇 가지 음식을 시켜 서로 나눠 먹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음식은 평이했으나 대체로 만족스러웠고 직원도 친절해서 식당 안에서도 유리 문 밖에서도 사진을 찍어 줬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2021년이 다 지나가는 것을, 아테네의 밤이 저무는 것을 아쉬워하며 그날 시내를 한참이나 걸으며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을 즐겼다.

(↑아크로폴리스의 야경과 저녁 식사)
(↑아크로폴리스의 야경)

 

 

◈ 일일 경비: €106.25/3 + 159.55(≒₩261,800)

입장료(전쟁 박물관6, 파나테나익 경기장5) €11

아침 빵, 커피 €6.25

스타벅스 점심(레몬에이드, 치킨랩) 5.45€

Manouka Athens 저녁(송아지고기 스테이크, 문어 다리, 돼지고기 수프, 와인) €100

쇼핑(매스틱 90캡슐 2병 €52.3, Korres 바디워시, 핸드크림 등 €90.8)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