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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2021년 8월 이탈리아

로마 5일(2) 바티칸 박물관, 산탄젤로 성

이제 성당을 나와 바티칸 박물관으로 간다. 박물관에 도착해서야 아침에 들렀던 사무실에 다시 가 예매표를 제대로 출력해 바꿔야 했기 때문에 어렵게 박물관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나마 코로나로 평소보다 여행객이 많지 않았던 까닭에 오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입장은 쉽게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평소라면 매표소 입구에서 건물 담벼락을 따라 베드로 성당 쪽으로 긴 줄을 서서 뙤약볕 아래에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겠지만 다행히 그런 수고는 덜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한적했던 박물관 입구)

평소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박물관을 혼자 돌아보는 건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입구에서 오디오 가이드(7유로)를 빌리거나 영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사전에 오디오 mp3 파일을 다운 받아 간 덕에 아주 요긴하게 잘 활용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오디오 파일 다운 받는 곳 투어야 5대 박물관 mp3)

나는 오디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피나코텍(바티칸 미술관) → 솔방울 정원 → 벨베데레 정원 → 뮤즈의 방 → 태피스트리 갤러리, 지도의 방 → 라파엘로의 방 → 시스틴 예배당(성당) 순으로 돌아봤다.

박물관에는 성베드로 성당에 있던 피에타의 모조품도 볼 수 있다. 나는 먼저 피나코텍(피나코테카, Pinacoteca)으로 갔다.  이곳은 바티칸이 소장한 회화를 모아놓은 곳으로 한때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가져갔으나 이후 돌려받은 것들이라고 한다. 

(↑왼쪽: 피에타 모조품, 오른쪽: 피나코테카(또는 피나코텍) 회화방)

처음 본 작품은 지오토(Giotto)의 '스테파네스키 제단화(The Stefaneschi Triptych)'다. 이 작품은 원래 성배드로 성당의 제단화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린 것이라 한다. 중앙은 '왕좌의 그리스도'로 가운데 그리스도를 그리고 그 오른쪽 발치에서 제작을 의뢰했던 스테파니스키 추기경이 제단을 받치고 있다. 왼쪽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 오른쪽은 바울의 순교를 묘사했다.

'음악천사(Angelo che Suona)'는 원래 1480년 멜로초 다 포를리(Melozzo da Forli)가 퀴리날레 교회 벽에 그린 프레스코화다. 1711년 교회를 철거하면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각각의 악기를 든 천사가 음악을 연주하는 그림이다. 

(↑왼쪽: 스테파네스키 제단화, 오른쪽: 음악천사)

'그리스도의 변용(The Transfiguration)'은 라파엘로(Raphael Altarpiece)의 마지막 작품으로 1520년 서른일곱 살에 요절하면서 끝내 완성을 보지 못했던 그림이다. 그의 사후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가 그림의 하단 부분을 그려 현재 모습으로 완성했다. 라파엘로가 그린 상단은 예수가 양 옆에 모세와 엘리야를 대동하고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제자가 주로 그린 하단은 아픈 아이를 데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특히 이 작품은 앞서 둘러본 성베드로 대성당 내 그리스도의 변용 제대에 1774년 스테파노 포찌(Stefano Pozzi)에 의해 만들어진 섬세한 모자이이크화로도 남아 있다.

(↑라파엘로의 유작 '그리스도의 변용')

https://blog.daum.net/audience65/243(스테파노 포찌의 '그리스도의 변용' 모자이크화)

 

로마 5일(1) 성 베드로 대성당

2021년 8월 18일(수) 성 베드로 성당, 바티칸 박물관, 산탄젤로 성(약 2만보, 12km) 성 베드로 성당 > 바티칸 박물관 > 산탄젤로 성 드디어 오늘은 성베드로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을 둘러보는 날이다.

blog.daum.net

 

이 미술관의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벽화 '최후의 만찬'을 그대로 모사해 금실, 은실 등 비단으로 짠 태피스트리(Tapestry: 실내 벽면에 장식용으로 거는 직물로 짠 그림)이다. 1517~1519년 사이 플랑드르 지역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18개월의 복원 작업을 거쳐 다빈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공개된 작품이라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성 제롬(성 히에로니무스)'은 로마에 있는 유일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회화 로 나무판에 단색으로 그린 미완성 작품이다. 신부였던 제롬은 홀로 사막에 들어가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했는데 그때의 고난을 그린 것이라 한다. 어느 날 그는 절룩이며 다가온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뽑아 준 일이 있었는데 그 후 사자가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고 한다. 그 전설 속의 사자가 화면 오른쪽 하단에 있다.

(↑왼쪽: 태피스트리 '최후으니 만찬', 오른쪽: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 제롬(성 히에로니무스))

카라바조(Caravaggio)의 그림 그리스도의 매장은 1602년에 완성한 그림으로 로마의 대표적 성당이었던 발리첼라의 산타 마리아 성당(Santa Maria in Vallicella)에 걸린 제단화였다. 이 그림은 당시 로마의 성직자들로부터 카라바조의 작품 중 최고 걸작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카라바조는 인물을 제외한 배경을 대부분 검게 칠해 빛과 어둠의 강한 대조를 만들고 인물들의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그린 사실주의 화가였다. 그러나 그는 미소년을 사랑한 동성애자였으며 평소 난폭하고 배짱도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주 싸움과 결투에 휘말렸고 살인까지 저질렀으며 끝내 쫓기며 여기저기를 떠돌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매장'은 그가 살인을 저지른 후 감옥에 있을 때 그린 그림이라고 전해진다.

오스트리아의 동물 화가로 유명한 ​벤젤 피터​(Wenzel Peter)의 작품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Adam and Eve in the Garden of Eden)는 교황청 대회의실을 장식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한다. 약 200여 종의 동물들을 화면 곳곳에 그렸는데 주로 사람에게 사육되는 동물들은 아담과 이브 근처에 배치하고 야생 동물들은 사람에게서 멀리 그렸다. 특이한 것은 이 그림의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로 인해 미술 치료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왼쪽: 카라바조 '그리스도의 매장', 오른쪽: 벤젤 피터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

 

피나코텍을 나와 이제 솔방울 정원(또는 피냐 정원(cortile della Pigna))으로 이동한다. 이 정원에 있는 높이 약 4m에 달하는 거대한 솔방울과 양 옆의 공작새 두 마리 조각은 고대 로마의 분수 장식이었다고 하는데 오늘 날에는 교황청의 상징이 되었다. 이 솔방울 조각은 중세 때는 성베드로 대성당 앞에 있다가 160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뒤에 배경으로 보이는 것은 브라초 누오보 궁전이다.

정원 중앙의 지구본은 유일한 현대 조형물로서 이탈리아의 건축가 아르날도 포모도로(Arnaldo Pomodoro)의 천체 안의 천체(Sfera con Sfera)로 황폐화되어 가는 지구의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 '천체 안의 천체'는 미국, 영국, 이스라엘, 이란 등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정원의 상징인 솔방울과 공작새 조각)
(↑정원 중앙에 있는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천체 안의 천체')

 

솔방울 정원을 나와 이동한 곳은 벨베데레 정원(Cortile del Belvedere)이다. 팔각형 형태를 이루고 있어 '팔각형의 안뜰'이라고도 하는데 이 정원의 이름 벨베데렐은 '아름다운 풍경'이란 뜻이란다. 이곳의 대부분의 전시물은 거의 작자 미상인데 고대 그리스의 조각품을 고대 로마인들이 모방해 만든 모사품들이다. 각 조각상에서 보이는 섬세한 육체 표현은 해부학에 기초한 것으로 그리스 헬레니즘의 사실주의 전통을 잇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의 작품들 중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이 '아폴로'와 '라오콘 군상'일 것이다. 먼저 아폴로(Apollo del Belvedere)는 약 B.C. 340년 경 그리스 조각가가 만든 청동 작품이 원작인데 대리석으로 모방한 것이다. 아폴로가 활을 쏜 직후 명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막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형식과 기교면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받는다. 사람들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와 함께 '벨베데레의 아폴로'는 황금분할의 8등신으로 완벽한 커플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그러나 작품이 수리 중인지 대여 중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아쉽게도 이 완벽한 '아폴로상'을 볼 수 없었다. 언젠가 로마를 다시 찾아야 할 핑곗거리를 만든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페르세우스의 메두사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가 한 손에 죽은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조각상이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소녀였는데 여신 아테네의 저주로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한 괴물이 되었다. 메두사가 죽은 후 머리는 아테나 여신의 갑옷 장식으로 붙여졌고 현재는 명품 베르사체의 로고가 되었다.

라오콘 군상(Laokoon gruppe)은 트로이 사제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바다뱀으로부터 공격 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이다. 인물들의 크기는 실제 인간과 비슷하며 전체 높이 약 2미터에 이르는 이 작품은 1506년 로마 에스퀴리노 언덕의 티투스 왕궁터에서 발굴된 대리석상이다. 발굴 당시에는 팔다리가 모두 없었는데 이후에 조각상의 손실된 일부분이 카라칼라 목욕장에서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군이 남기고 간 목마의 진실을 예견했던 라오콘은 이를 알리다 살해당한다. 이후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인 트로이는 그 안에 숨어 있다가 나온 그리스 정예병들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신화에서는 트로이 몰락의 원인이 되었던 목마에 대한 그리스의 계략을 알린 라오콘에 분노한 해신 포세이돈에 의해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바다뱀에 몸이 감겨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라오콘 군상'은 바로 이 장면을 대리석으로 섬세하고도 정교하게 묘사했다. 

(↑벨베데레 정원과 섬세한 부조)
(↑왼쪽: 사진으로만 본 '아폴로', 오른쪽: 페르세우스의 메두사)
(↑라오콘 군상)

라오콘 군상을 지나 뮤즈의 방(Sala delle Muse)으로 이동한다. 음악, 무용, 시, 학문 등을 관장했던 그리스 신화의 여신들의 조각상이 주로 전시되어 뮤즈의 방이라 한단다. 바닥의 화려한 모자이크화는 채색하지 않은 유색 천연 대리석으로 제작한 것이라 하는데 대리석의 색깔이 이렇게 다양하게 있다는 것도 새롭고 그림의 섬세함도 아주 놀랍다. 

방 중앙에 있는 '토르소'는 특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원래 잔 가지가 없는 통나무라는 뜻의 '토르소(Torso)'는 미술 용어로는 팔, 다리, 머리가 없는 몸통으로 된 조각을 일컫는다.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15 세기경 로마 황제들의 목욕장터에서 발견되었는데 의자에서 막 일어서려는 남성을 묘사한 것으로 건장하고 강렬한 남성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을 발견할 당시 미켈란젤로에게 몸통의 몸통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는데 이 작품을 좋아했던 그는 '있는 그대로 완벽한 인체의 표현'이라 극찬하며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에 와서 토르소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조각가 로댕에게 영감을 주어 그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뮤즈의 방을 지나 연결된 방은 '원형의 방(또는 로톤다의 방(Sala Rotonda))'이다. 돔 형식의 천장 때문에 로톤다(Rotonda, '둥글다'는 뜻)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이 방 중앙에는 네 발이 달린 거대하고 둥근 그릇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네로 욕장(욕조)이다. 전체 둘레 13m, 지름 5m의 이 적색 대리석 욕조는 실제 네로 황제가 사용하던 것이라 한다.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는 목욕을 욕조 노예의 등을 밟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욕조 아래 바닥의 모자이크 장식 역시 천연 대리석인데 오트리콜리(Otricoli) 욕장 바닥을 통째로 옮겨온 것이란다. 벽면에 둘러서 있는 제우스의 두상과 안티누스의 흉상, 아드리아누스 황제의 두상 등의 모사품들도 또한 오트리콜리에서 출토된 것이다.

(↑뮤즈의 방 바닥 모자이크화)
(↑왼쪽: 토르소, 오른쪽: 네로욕장. 욕조 뒤편 중앙에 보이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청동상이다.)

걸음을 옮겨 2층으로 올라가 '촛대의 방'으로 들어섰다. 이 방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아르테미스 여신상이다. 여신의 가슴에 여러 개의 황소 생식기가 달려 있는데 이는 생식기 내의 수많은 정자가 여신을 임신시켰다고 해서 다산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가슴 아래 부분에는 오래 사는 여러 영장류들을 가득 조각해 넣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상)

다시 이어진 길을 따라 간 곳은 긴 직사각형 양쪽 벽면을 거대한 태피스트리화(Tapestry)가 가득 덮고 있는 태피스트리의 방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이 지나쳤다면 그냥 그림으로 착각할 정도로 아주 정교하게 제작된 대형 태피스트리가 가득했다. 태피스트리는 공이 많이 들고 제작이 힘들어서 혼자는 할 수 없고 공방에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당시 유명 화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태피스르리로 남기고 싶어 했는데 라파엘로도 그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예수님의 탄생은 동방박사들이 마굿간에서 태어나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장명이고 어린이의 죽음은 예수의 탄생 소문을 들은 헤롯왕이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죽이라하자 병사들이 이를 실행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지 삼 일만에 무덤에서 걸어나오는 예수님을 묘사한 작품이다. 예수님이 들어올린 오른손의 손가락 세 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왼쪽: 예수님의 탄생, 오른쪽: 어린이의 죽음)
(↑예수님의 부활)

이어지는 지도의 방에는 이탈리아 반도와 각 지역별 지도가 전시돼 있다. 우리나라의 대동여지도보다 약 100여 년 앞서 제작된 이 지도들은 정확한 이탈리아 지형을 알기 위함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 있는 대성당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모두 마흔 개의 지도가 방 입구부터 남쪽 나폴리, 왼쪽은 서쪽 지방, 오른쪽은 동쪽 지방 지도들이 차례로 전시돼 있다. 또한 방 끝에서 정면 왼쪽은 제노바, 오른쪽은 베네치아 지도가 있다. 언뜻 보아 조각 같아 보이는 화려하고 정교한 천장화는 각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이나 그곳의 성인들을 그린 것이라 한다. 

(↑지도의 방)

 

라파엘로의 방은 콘스탄티누스의 방, 엘리오두루스의 방, 세냐투라의 방(서명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당시 그의 작업장이었던 곳이자 벽화 작품이 있는 방이다. 콘스탄티누스의 방은 리셉션이나 공식 행사를 위한 방이다. 이 방의 벽화는 라파엘로의 제자들의 작품으로 기독교를 정식으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네 가지 에피소드를 그린 것이라 한다. 이 중 밀리오 다리 전투는 제자 줄리오 로마나가 그렸으나 전체 구도는 라파엘로가 잡았다고 한다. 

보르고 화재(Incendio di Borgo) 847년 성 베드로 대성당과 테레베 강변의 산탄첼로 성(Castle Sant'Angelo) 사이에 있었던 보르고 마을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일화에 의하면 화재 당시 교황 레오 4세가 커다랗게 성호를 긋자 신의 도움으로 불이 진화되었다 한다. 무솔리니 시절 교황청과 라테란 협정을 맺으면서 이 마을을 헐어버린 까닭에 현재 이 그림은 당시 마을과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로 남아 있게 되었다.

(↑왼쪽: 밀리오 전투, 오른쪽: 보르고 화재)

 

세냐투라의 방(서명의 방)에는 라파엘로(Raffaello Sanzio)가 그린 철학, 신학, 법학, 시학을 주제로 한 네 개의 벽화가 있는데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테네 학당이다. 이 작품을 남길 당시 라파엘로의 나이가 스물 다섯이었다고 하니 그의 천재성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을 주제로 한 아테네 학당의 화면 안에는 시대를 초월하여 그리스의 위대한 학자와 철학자들 54명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는데 이들은 사색에 잠겨 있거나 서로 토론하는 모습이다.  배경이 되는 화면 중앙의 여러 개의 아치 양쪽으로는 예술과 지혜를 상징하는 아폴론과 아테나의 조각상이 보인다. 이 조각상 아래로 여러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이 중 가운데 있는 두 사람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책을 들고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는 이상주의자로 그려진 노인 플라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모델로 삼았다 한다. 그의 왼쪽 옆에서 책을 든 젊은이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플라톤의 오른쪽으로 대머리를 하고 이마가 튀어나온 짱구 머리에 손을 모아 세 개의 손가락을 펼친이가 소크라테스인데 제자인 플라톤과 달리 현실주의자로 그려졌다. 계단 가운데 비스듬히 기대 앉은 이는 철학자 디오게네스이다. 또한 화면 왼쪽 하단 대머리를 하고 책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인물이 피타고라스, 그 맞은 편 오른쪽 하단에는 컴퍼스를 들고 허리를 굽힌 인물이 유클리드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그림 속에 라파엘로 자신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유클리드 뒤에 노란 망토(?)를 입은 사람(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우스)과 얼굴을 마주하고 검은 모자를 쓴 젊은이가 바로 라파엘로 자신이다. 그림 속의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그는 화면 밖을 응시하는 듯 보인다.(더 자세한  인물들의 위치는 위키백과 '아테네 학당' 참조)

(↑아테네 학당)

 

이제 드디어 화려하고 장엄한 천장화와 벽화로 가득한 시스티나 경당(Cappella Sixtina)으로 간다. 이곳은 교황의 관저인인 사도궁(Palazzo Apostolico, 대성당 오른쪽 건물들로 교황이 거주, 집무하는 곳) 안에 있는 경당이다.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을 선출하는 종교적 의식인 콘클라베(Conclave)를 여는 장소로서도 의미 있는 곳인데, 건축가 조반니 데 도르티의 설계로 1481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내부에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예술가들인 미켈란젤로, 페루지노(라파엘로의 스승),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이 그린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곳이다. 그 중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그의 최대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서쪽 벽(출입문 쪽)의 최후의 심판, 천장화 천지창조를 비롯하여 약 12,000여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 요청으로 로마에 왔는데 처음에는 묘지 건축을 하다가 나중에 시스틴 경당의 천장화를 요청받게 되었다. 조각을 주로 하던 그는 어느 날 장엄한 일출을 보며 영감을 얻어 천지창조를 그리기로 했다고 한다.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가 20여 미터 높이의 작업대에서 약 800 제곱미터 넓이의 천장에 프레스코 벽화를 채워 넣기 위해 1508년부터 1512년까지 4년에 걸쳐 혼신을 다해 완성한 대작이다. 그림의 내용은 구약 성경의 창세기, 출애굽기의 내용을 담았는데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달의 창조', '물과 흙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유혹받은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노아의 번제', '대홍수', '술에 취한 노아' 등 아홉의 주제로 나뉘어 있으며 총 343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날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아담의 창조' 한 부분만이 천지창조의 전부인 줄 알았다. 새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편협하고 작은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천장화 천지창조)
(↑천지창조, 왼쪽: 아담의 탄생, 오른쪽: 이브의 탄생)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완성한 후 피렌체로 돌아갔으나 20년 후 시스티나 경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을 다시 의뢰 받는다.  미켈란젤로는 전체 그림을 450개로 작게 나누어 하루에 한 부분씩 그렸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천상계화 지옥계의 두 부분을 상하로 나누어 위쪽에는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 제자들을 그리고 아래 왼쪽에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들, 오른쪽에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그렸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391명이나 된다.

작품이 약 3/4 이상 진행됐을 때 처음 교황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에게 공개됐는데, 교황청의 추기경을 비롯한 사람들은 대중 목욕탕이나 술집에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혹평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나체로 그려졌고 이단적 요소가 많다고 하여 그림을 수정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며 종교 재판에 부쳐질 뻔했다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끝까지 그림의 수정을 거부했다. 그러다 교황이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볼테라에게 노출이 심한 인물에 옷을 덧입히라고 명한다. 그러나 볼테라는 스승의 원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성기가 노출된 부위만 가리는 작업을 했는데 그 후 볼테라는 사람들로부터 기저귀를 그린 화가라고 조롱당했다고 한다.

(↑서쪽 벽화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경당을 마지막으로 바티칸 박물관 관람은 끝이 났다. 그러나 나가는 곳에 또 한번 눈길을 잡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나선형 계단이다. 1932년 주세페 모모가 설계해 완성한 이 계단은 이중 나선 구조로 돼 있있는데 난간 벽면에는 섬세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나선형 계단. 왼쪽: 위에서 본 모습, 오른쪽: 아래에서 본 모습)

 

긴 여정의 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간 곳은 바티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탄젤로성(Castel Sant'Angelo, 천사의 성)이다. 원통형의 건물인 이곳은 원래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만든 무덤이었기 때문에 하드리아누스의 영묘라고도 한다. 하드리아누스가 짓기 시작한 이 건물은 그가 죽고 난 1년 후인 138년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에 의해 완공되었다. 실제 이곳에는 하드리아누스를 비롯한 여러 황제들이 묻혔고 한동안 묘지로 사용되었다. 로마 제국 멸망 이후 군사 요새로 사용되면서 내부의 여러 조각품과 장식이 파괴되거나 유실되었다 한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590년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당시 대유행했던 흑사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참회의 기도를 올리다 미카엘 천사가 이 성 상공에서 칼을 든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교황은 흑사병이 끝날 것임을 선언했는데, 실제 더 이상 흑사병이 번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이곳은 산탄젤로 '성천사(聖天使)'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건물 위에는 이를 기념하여 한 손에 칼을 든 청동 미카엘 천사상이 세워져 있다. 처음에는 나무, 이후에는 대리석 천사상이 있었으나 다 없어지고 현재의 천사상은 18세기 페터 안톤 폰 베르샤펠트가 청동으로 제작한 것이다. 

(↑산탄젤로 성 외부와 입구)
(↑산탄젤로 성 내부)

산탄젤로 다리는 테레베 강을 가로질러 성과 도심을 잇는 다리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영묘를 지을 당시 강을 건너는 다리를 함께 계획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리 난간에는 베르니니가 남긴 열 개의 천사상이 있다. 이들은 각각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당시 사용된 십자가, 가시 면류관, 못, 창 등 수난과 관련된 도구들을 손에 들고 있다.  

(↑성 위에서 바라본 산탄젤로 다리와 테레베 강)
(↑산탄젤로 다리와 천사상)

 

<1일 지출 내역> 75.5€(103,600원)

-교통: 옴니아카드(로마 패스)

-입장료: 옴니아카드(로마, 바티칸 패스), 6€(산탄젤로 성 50% 할인)

-쇼핑: 프란체스코 교황 기념 주화 58€

-식비: 11.5€ 피자.콜라 7(바타칸 박물관 내), 펜네 파스타, 라임 맥주4.5(Co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