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2021년 8월 이탈리아

로마 5일(1) 성 베드로 대성당

2021년 8월 18일(수) 성 베드로 성당, 바티칸 박물관, 산탄젤로 성(약 2만보, 12km)

  • 성 베드로 성당 > 바티칸 박물관 > 산탄젤로 성 

 

드디어 오늘은 성베드로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을 둘러보는 날이다. 로마의 어느 유적지나 박물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은 다 그렇지만 특히 이 두 곳은 평소 두 시간 이상 뙤약볕 아래 줄을 서야 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미 사전 예약을 했고 코로나 시국으로 훨씬 줄어든 관광객 숫자를 감안한다면 그래도 긴 줄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며칠 전 옴니아 카드 수령 시 박물관 입장 티켓과 바꿀 수 있는 확인증을 이메일로 받을 수 없어서 베드로 광장 앞에 있는 ORP(Opera Romana Pellegrinaggi) 사무실에 가서 문제가 생겼다. 확인증을 인쇄해야 하는데 그곳에 계신 신부님이 이미 예약이 돼 있으니 괜찮다고 해 박물관까지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와 확인증을 인쇄한 후 다시 가서 티켓으로 바꾸고 입장할 수 있었다. 32도의 한여름 더위 속에서 두 곳을 오가느라 땀도 흘리고 왕복 30분 가량을 허비해야 했다.

 

오전에 베드로 광장에 도착한 나는 ORP 사무실에 먼저 갔다가 바로 성베드로 대성전(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 또는 바티칸 대성전 Basilica Vaticana)으로 갔다. 성당 입구의 줄은 벌써 40~50미터 이상 형성돼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입구가 여러 곳이라 내 앞의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성베드로 대성전에 대한 내 지식은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계시는 곳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자료를 검색하고 로마 시내의 여러 성당들을 다녀보면서 베드로 대성당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앞의 거대한 성 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을 지나야 한다. 이 광장은 최대 30만 명을 모을 수 있는 규모로 베르니니가 1656년부터 설계하고 1667년에 완공한 작품이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 돔을 사람의 머리로 보고 반원형 회랑 두 개를 두 팔을 벌려 세상을 품는 형태로 표현했다. 여기에 대성당 바로 앞의 사다리꼴 광장과 이 열주랑의 타원형 광장이 합쳐지면서 열쇠 구멍 모양을 이루었는데 이는 베드로의 지물인 천국의 열쇠를 상징한다고 한다. 광장에서 한눈에 보이는 둥근 회랑은 16m 높이의 토스카나식(도리아식을 변형한 고대 로마의 건축 양식으로 기둥에 줄무늬 홈을 파지 않고 기둥 밑에 돌 같은 받침을 댄 것이 특징이다.) 대리석 기둥 284개와 벽에서 돌출되어 4열을 이룬 기둥 88개가 줄지어 서 있다. 열주랑 위에는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만든 역대 교황 성인들의 조각상 140개가 장식돼 있다. 

또한 광장 중앙에는 거대한 오벨리스크(기단부까지 합친 전체 높이 41m, 무게 320t)가 세워져 있다. 이것은 베드로가 처형됐다고 알려진 근처 네로 경기장(Circus of Nero)에 있던 것이었는데 '베드로의 순교를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의 자격으로 성 베드로 광장 한가운데로 옮겨진 것이라 한다. 한편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광장 양쪽에 있는 두 개의 분수는 각각 다른 시기, 다른 작가(오른쪽은 마데르노, 왼쪽은 폰타나가 설계했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두 분수는 성전에 들어가기 전 몸을 정화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 입구에서 본 성 베드로 광장)
(↑성 베드로 광장의 열주랑, 오벨리스크와 분수)

 

베드로는 서기 67년에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본명이 '시몬(Simon)'이었으나 예수님이 '반석'이라는 뜻의 아람어 '게파(כיפא, kepa, Cepha)'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것이 그리스어 '페트로스(Πέτρος 라틴어: Petrus 페트루스, 이탈리아어: Pietro 피에트로)'가 되었다고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 사후에 교회 지도자로서 초대 가톨릭 교황이 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것으로 실제 건물 내부 제대 아래 그의 시신이 보존돼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사실 로마 성당 가운데 가장 우위에 있는 성당은 아니다. 가톨릭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첫번째 지위를 가진 성당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인데 이 성당은 로마 교구의 주임 성당이면서 교황이 처음으로 취임 미사를 드리는 곳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거처인 사도궁전과 인접해 있고 교황이 집전하는 대부분 의식이 열리는 장소로서 역사적, 예술적 가치, 규모 등에서 보면 가톨릭 제일의 성당은 역시 성 베드로 대성당이라 할 것이다. 교황 율리오 2세 때 설계 공모를 했는데 최종적으로 브라만테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1506년에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비실리카식 성당 자리에 공사를 시작했고 1626년에 끝마쳤다. 전체적으로 십자가 형태의 설계안으로 중앙 돔은 판테온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공사가 진행되는 약 120년 동안 브라만테의 설계안은 여러 차례 수정, 보완되었고 이후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규모는 약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에 500개의 기둥이 있고 내부 돔이 10개나 된다고 한다. 또한 피에타를 비롯한 400개 이상의 조각상, 1,300여 개의 모자이크 그림들로 장식돼 있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에 더해 내가 맞닥뜨린 이 성당의 첫인상은 큰 위엄과 함께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건물의 거대한 크기나 장식의 화려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누구라도 다 품어주는 인자함과 무한의 포용 같은 것이었다. 실제 하루 몇 만명의 관람객들이 전 세계에서 오지만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끊임 없이 성당 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성당 입구의 스위스 근위병과 거룩한 문The Holy Door)
(↑중앙 제대가 보이는 대성당 내부)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오른쪽 경당으로 가야 한다. 바로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의 '피에타(Pietà)'를 보기 위해서이다. '비탄(悲歎)'으로 번역되는 이 조각상은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상인 '다비드상(1504)', '모세상(1515)'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원래는 프랑스의 장 드 빌레르 추기경의 요청에 의해 그의 장례 미사 기념비로 제작되었으나 18세기에 성 베드로 대성당 안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그런데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의 얼굴이 비탄에 잠겨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평화로워 보이는 이 어머니는 20대의 젊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니 각자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뜻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만든 여러 피에타 중 첫 작품이자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 받는다. 성모 마리아의 왼쪽 어깨에서 사선으로 내려오는 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는데, 처음 작품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오인되자 피렌체의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서명을 남겼다고 한다.

(↑피에타Pieta, 1499년 스물네 살의 미켈란젤로가 만든 조각상)

https://blog.daum.net/audience65/240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은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Vasilica di San Pietro in Vincoli)에 있다.)

 

로마 1일, 2일 로마 시내 도보 여행

↑2021년 8월 14일(토) 부다페스트 > 로마, 항공 이동 부다페스트 > 로마 참피노(Ciampino) 공항 예정보다 20분 일찍(7시 50분) 도착 Buz Shuttle 9시 출발(버스표는 공항 내 부스에서 사도 되고 버스 안에서

blog.daum.net

 

미켈란젤로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 돔 설계에도 참여했는데 그는 판테온의 돔을 본뜬 브라만테의 설계안, 여기에 피렌체 대성당을 참고한 상갈로의 설계안 등 이전에 계획되었던 여러 가지 설계안들을 모두 참고하여 돔을 재설계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돔 아래의 원통형 부분만을 완성한 채로 1564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1585년 교황 식스토 5세가 자코모 델라 포르타를 공사 책임자로 임명하여 1590년에 가서야 대성당의 중앙 돔이 완성되었다. 

이 돔 아래 전체 높이 29m, 무게 37,000kg에 달하는 거대한 베르니니의 발다키노(Baldacchino)가 있다. 발다키노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중앙 제대 위를 덮는 닫집 모양의 천개(天蓋)다. 제대 밑에는 베드로를 포함한 역대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지하 묘지가 있다고 한다.

(↑화려한 천장화로 장식된 중앙 돔)
(↑발다키노Baldacchino와 베드로의 무덤)

발다키노와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주변 사방의 네 개의 기둥에는 4대 성인이 각 성인들을 상징하는 물건과 함께 조각돼 있다. 예수님의 검시관이었던 성 롱기누스는 예수님을 찔렀던 창, 성녀 베로니카는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수건, 성 안드레아는 그가 순교한 X자형 십자가, 성녀 헬레나는 예수님이 지고 갔던 십자가와 못을 각각 갖고 있다. 현재 십자가와 창, 수건은 성당 내부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피에타'가 있는 성당 입구 근처에 유독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성 베드로의 청동상(La Statua Bronzea di San Pietro)'이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의 작품으로 베드로가 왼손에 그의 지물인 천국의 열쇠를 쥐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 특이하게 이 청동상은 직접 만질 수도 있는데, 발에 손을 대거나 입을 맞추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 많은 사람들은 동상의 발을 만지면서 기도한다. 그래서 청동상은 앞으로 나와 있는 베드로의 오른쪽 발의 발가락이 거의 없어지고 끝이 뭉툭하게 돼 있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성 베드로의 청동상')

 

대성당 안에는 1,300여 개의 회화 작품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모두가 모자이크화라는 것이다. 언뜻 보아서는 모자이크인지 알 수 없을 만큼의 작은 조각들을 붙여 그림을 만들었다니 하나하나 모든 작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스테파노 포찌(Stefano Pozzi)의 '그리스도의 변용(變容, Transfiguration of Christ)'은 1774년에 제작됐는데 라파엘로의 유작이 된 '그리스도의 변용'이 원작이라 특히 관심을 끈다. 예수님이 부활해 승천하는 장면을 그린 라파엘로의 원작은 바티칸 박물관 라파엘로의 방에 있다.

(↑스테파노 포찌의 모자이크화 '변용'(왼쪽)과 라파엘로의 원본 '변용'(오른쪽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