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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국내 여행

부산 초량 산복도로 투어 1

  오늘(2013.06.15) 오후 2시 30분 부산역 맞은편에서 오늘 투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최근 부산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추진으로 그 동안 저지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경이 낙후된 산복도로 지역이 각각 특색 있는 볼거리와 새로운 문화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거주민들의 긍정적 호응 뿐 아니라 외지인들을 불러 모으는 효과를 얻고 있다. 오늘은 부산 곳곳의 산복도로를 일일이 탐사해서 투어 루트를 만들고 있는 주영진 선생의 안내로 초량에서 중앙동까지 산복도로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부산역

↑<초량 이바구길> 안내판

 

  본격적인 산복도로를 둘러보기 전에 먼저 근처 <초량 이바구길> 입구에 있는 근대 건물을 찾았다. 2012년 부산의 근대건조물 4호로 지정된 구 <백제병원>은 1922년 최용해라는 분이 지은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란다. 지금 보이는 허름한 외관만으로는 당시의 위용을 짐작하기 어려우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지하 1층 지상 5층의 이 건물은 세련되고 당당하였을 것은 분명하다. 건물 외부는 석조와 적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목조로 지어진 이 건물은 1972년 화재로 인해 일부가 소실되고 현재는 4층만 남았다. 처음 병원이었던 이 건물의 용도도 일본군 장교 숙소, 중화민국 임시 대사관 등 우리의 굴곡진 근대 역사와 더불어 변해 현재는 일반 상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오른쪽 빨간 벽돌 건물이 구 <백제병원>

↑건물 입구(오늘 길잡이를 해 줄 주영진 선생)

↑건물 내부(낡은 목조 계단이 그대로 있다.)

 

  백제병원 뒤쪽으로 오래된 건물의 흔적이 또 한 곳 있다.  1900년 지어져 창고로 쓰였던 근대의 대표적인 이 건축물은 100년을 이어오다 2009년 철거되어 현재는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만이 당시 건물의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 역사 깊은 건물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으로 부산의 소설가 조갑상은 이곳을 배경으로 소설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를 썼다고 한다.

↑입구의 표지판

↑주차장 안쪽에 있는 담장(나무 기둥 사이에 붉은 벽돌을 쌓은 형태가 특이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산복도로를 걷기 위해 버스를 탄다. 초량 이바구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도 되나 더운 날씨에 체력 안배를 위해 일단 43번 버스를 타고 민주공원 한 정거장 전에 내린다. <역사의 디오라마>, 부산의 바다를 한눈에 조망하며 쉴 수도 있는 공간이 조성돼 있다. 전망대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들고 구름에 가린 영도를 멀리 바라본다.

↑버스정류장

↑제1전망대 카페 옥상

↑카페에서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다시 공원으로 올라간다. 오랜만에 먼 곳에서도 머리만 들면 잘 보이는 충혼탑으로 가 보기로 한다. 늘 근처를 지나며 바라보기만 했지 실제 올라가 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조성된 초기에 가 봤던 기억을 더듬어 보니 크게 달라진 건 없으나 주변의 나무가 많이 울창해진 것과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경사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 정도가 달라진 듯하다.

↑충혼탑 입구

↑충혼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장애인과 노약자를 배려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가 함께 설치돼 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좌우가 평행이 되도록 위족을 아래보다 넓게 설계한 것이 특이히다.)

↑경사로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충혼탑의 위용이 당당하다.

 

  충혼탑에 올라보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시원하다. 충혼탑 맞은편에는 민주공원이 보이고 영도도 전경이 보인다. 영도 옆으로 놓이는 다리는 감만동과 연결되는 북항대교다. 6월 24일쯤 상판 연견이 완료된다는데 이 다리가 최종 완공되면 광안대교에서 가덕대교까지 부산의 바다 위를 지나는 총 길이 52km의 7개 다리가 모두 연결된다고 한다.

↑충혼탑에서 바라본 풍경(민주공원, 건물 위의 불꽃 상징물이 희미하게 보인다.)

↑충혼탑에서 본 풍경(영도)

↑충혼탑에서 본 풍경(북항대교)

 

  충혼탑 맞은편은 민주공원이다. 충혼탑과 민주공원이 있는 이곳 일대를 이르는 명칭이 민주공원, 중앙공원, 대청공원 등 다양한 것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낳은 갈등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대청공원은 일제의 잔제라 중앙공원으로 개칭되었고 공식적으로는 중앙공원 안에 미주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원 가운데 양 끝에 자리잡은 두 개의 커다란 표지석을 보니 씁쓸한 기분이 든다. 공원 휴식 공간을 가로질러 민주공원 쪽으로 가는 길에 작은 조각 공원도 조성돼 있다.

 

 ↑공원 입구 양 끝에 세워진 두 개의 표지석

  ↑공원 휴식 공간

 

↑조각 공원 내 작품들

 

  민주공원 쪽으로 가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본다. 민주 공원은 4·19, 부마민주항쟁, 6월 항쟁의 민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시비와 국비를 들여 1999년 10월 개관했다.(http://www.demopark.or.kr/main/main.asp 참조) 중앙 건물 머리에 있는 횃불 조형물은 '민주의 횃불'로 이름 붙여진 것으로 밤에는 붉을 밝힌다고 한다. 입구 왼편으로 위령탑이 있는 4·19 광장이 보인다. 

 ↑횃불 조형물이 보이는 민주공원 입구

↑4·19 광장과 위령탑 

↑산책로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