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수) 데살로니키 → 칼람바카(메테오라) 1일 (4,200보 / 2.5km (차량 이동 3시간 40분 / 275km))
- 테살로니키 → 칼람바카(이동 약 3 시간) → 메테오라 성 트리니티 수도원(Monastery of the Holy Trinity at Meteora) → 숙소(Analipsi)
우리는 미리 예약한 렌터카를 찾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숙소를 정리하고 나왔다. 손에 든 짐이 많고 숙소에서 렌터카 사무실(Buget rent car)까지는 약 4.4km 거리라 택시를 타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서 비교적 손쉽게(?)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엉뚱하게도 디미트리오스 성당 근처 어디쯤이었다.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어 기사가 길 이름을 오해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짐을 다시 내려 다른 택시를 타고 Georgiou Papandreou 길에 있는 렌터카 사무실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중 유일한 운전 면허증 소유자인 명숙이 렌터카를 받기 위한 절차를 밟는 동안 나와 동생 명지는 사무실 한쪽에 앉아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지 걱정하며 기다렸다. 명숙이 여러 가지 서류에 서명을 하고 사고 처리, 반납 조건 등의 주의 사항을 다 듣고 난 후에야(직원은 명숙에게 몇 번이나 확실히 이해했는지를 확인했다.) 우리가 선택한 작고 귀여운 빨간색 렌터카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차는 뒤쪽에 짐칸이 없어서 짐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는 조금 곤란할 듯했지만 우리는 일부 짐을 뒷좌석 하나에 넣을 수 있어서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짐을 다 싣고 시동을 겨우 걸고 이제 막 출발하려는데 뭐가 문제가 있는지 차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이것저것 다 손을 대 보다가 해결이 안 돼서 다시 사무실에 가 직원을 불렀다. 직원은 핸드 브레이커를 풀어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해 줬다. 우리는 모두 직원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차안에서 한동안 서로를 보며 웃었다.
운전도 시작하기 전부터 불안한 우리의 5박 6일 간의 그리스 종단 여행은 무사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되는 가운데 차는 점차 테살로니키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운전을 할 수 없는 나는 조수석에 앉아 '인간 네비게이션'이 되기로 했다. 운전자가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구글 지도를 보고 앞으로 나오게 될 도로의 이정표나 차선 변경, 교차로에서의 회전 등을 미리 말로 안내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가는 동안 심심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구글 지도에만 의존해 그렇게 한번도 와 보지 않은 낯선 길을 점심도 거의 거른 채 장장 세 시간 여 차를 달려 드디어 칼람바카에 도착했다.
누가 특별히 알려 주지 않아도 도로 끝에서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한 깎아지른 바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풍경이 메테오라임을 알아차리게 했다. 아득했던 풍경이 점점 가까워지자 내 눈앞 펼쳐진 이 바위산들이 그리고 그 꼭대기의 수도원들이 신비롭고 황홀했다. 동시에 나는 머릿속에서 '왜?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신(神)은 왜 이 평원에 느닷없이 저토록 깎아지른 바위들을 흩어놓았나? 수도사들은 왜 이 험난한 곳까지 찾아와 그것도 목숨을 걸고 올라야 하는 바위 꼭대기에 집을 지어야 했나? 이 풍경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자연 현상으로 이루어졌건 저 수도원들이 신을 향한 간절하고 고귀한 수도사들의 수행이었건 또는 인간이 가진 불굴의 의지의 결과물이었건 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대신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메테오라 수도원이 있는 도시는 칼람바카(Kalambaka)이다. 테살로니키에서 칼람바카까지 가는 방법은 혼자 하는 배낭여행자라면 테살로니키에서 기차(오전 8시 18분에 출발)를 이용하거나 일일 투어를 신청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차로 이동하면 테살로니키에서 편도 약 3시간, 아테네에서 약 5시간이 걸린다. 명숙은 해가 지면 운전하기를 어려워했기 때문에 우리는 일찍 도착해서 6개의 수도원 중 하나를 먼저 보고 숙소에 가기로 했다.
참고로 메테오라의 수도원은 일반에 개방하는 날짜와 시간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꼭 가 보고 싶은 수도원이 있다면 사전에 반드시 개방 일자와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 바위 봉우리 위에 있는 각 수도원들은 높을 뿐 아니라 수도원 간 거리도 멀어 걸어서 이동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을 렌트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현지 투어를 이용하거나 칼람바카 기차역 근처에서 하루 투어를 할 수 있는 택시를 물색하는 것이 좋다. (메테오라 공식 홈페이지https://visitmeteora.travel/ 참조)
메테오라(Μετέωρα, Meteora)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 '하늘의 기둥'이라는 뜻인데, 작은 도시 칼람바카 내의 지역명이다. 사람이 근접하기 어려운 사암 봉우리(가장 높은 곳은 600m에 이르고 평균 높이도 300m나 된다.) 위에 11세기부터 수도사들이 수행, 명상, 기도를 위해 바위 기둥에 생긴 자연 굴에서 정착해 살기 시작했고, 14세기부터는 수도원을 지었다고 한다. 수도사들은 비잔틴 제국의 쇠퇴와 몰락으로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게 되자 이슬람 세력의 공격과 박해를 피해 메테오라로 숨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공중 수도원은 15세기 말에는 24개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일반인들의 방문이 허용되는 수도원은 모두 여섯 개이다. 이들 수도원은 모두 수도원 건축 양식의 뛰어난 예로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가 가 볼 수 있는 수도원 여섯 개는 대 메테오라(Holy Monastery of Great Meteoron, Μονή Μεγάλου Μετεώρου), 발람(Holy Monastery of Varlaam, Μονή Βαρλαάμ), 성 트리니티(Monastery of the Holy Trinity, Μονή Αγία Τριάδα), 성 루사누(Holy Monastery of Rousanou, Ιερά Μονή Ρουσάνου-Αγίας), 성 니콜라스 아나파우사스(Holy Monastery of St. Nicholas Anapausas, Μονή Άγιος Νικόλαος Αναπαυσάς), 성 스테파노스(Holy Monastery of St. Stephen, Μονή Άγιος Στέφανος) 수도원이다. 이들 중 네 개의 수도원은 지금도 수도자들이 생활하고 있고 초기 기독교의 은둔자(수행자) 생활과 수도원 공동체의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먼저 하나의 수도원을 보고 내일 발람 수도원과 한두 개 수도원을 본 후 마지막 날 떠나면서 한 개 정도를 더 들러 보고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된 첫번째 수도원은 성 트리니티 수도원(Monastery of the Holy Trinity, Μονή Αγία Τριάδα)이다. 우리말로 '성 삼위일체 수도원'이라고도 하는데, 꽤 오래 전(1981년) 영화지만 007 시리즈 중 하나인 'For your eyes only'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트리니티 수도원은 1475~76년에 건축되었는데 메테오라 수도원들 중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 차에서 내려 계곡 저편에 있는 성 트리니티 수도원에 가려면 계곡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내려가 300미터 높이의 바위를 깎아 만든 140개의 단이 있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건축 초기에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밧줄 사다리와 그물을 이용해야 오갈 수 있었다고 하니 잘 닦인 길과 튼튼한 계단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힘겹게 140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수도원의 입구에 다다른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옷차림 점검(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긴 스카프로 가려야 한다. 수도원에 따라서는 입구에서 스카프를 팔기도 한다.)을 받은 후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권을 샀던 곳은 물건을 실어나르는 도르래가 있었고 수도원 내부는 소박하지만 정갈했다. 작은 기도실, 예배당이 있고 오래된 물품이나 성화 등을 전시한 공간도 있었다.
우리는 수도원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입구 반대편 마당이 있는 쪽으로 나왔다. 마당에 세워진 십자가 뒤로 탁 트인 전망이 한눈에 펼쳐졌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빗살처럼 비치고 근엄하게 자리잡은 높은 산을 배경으로 다소곳이 앉은 마을이 신비롭다. 이곳에 정말 신은 계신 걸까? 그 옛날 이곳에 홀로 발을 들였을 첫 수행자도 어쩌면 저 풍경 속에서 그의 하느님을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예약한 숙소로 돌아가야 했는데, 아뿔사 내가 사전에 예약한 곳은 메테오라에서 차로 약 40분(약 35km), 그것도 산길을 돌아가야 하는 Analipsi라는 곳에 있었다. 나는 이 숙소를 집 베란다에서 보는 풍경이 좋은 곳이라 고른 것이었는데, 지도상으로 메테오라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곳이라는 건 짐작했지만 정확한 지리 상황을 알 수 없어서 일어난 실수(?)였다. 지도가 가리키는 곳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서서히 해가 저물고 있었고 길은 점차 높진 않았지만 산길로 접어들었다. 우리의 유일한 운전자인 명숙은 해질녘에 이런 길을 이틀이나 오갈 수 없다며 내일은 무조건 숙소를 옮기자고 했다. 나는 그녀의 심기를 더 이상 불편하게 할 수 없어 내 실수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옆 자리에서 명숙의 표정을 살폈고 커브가 있는 길을 돌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춰야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지도에 표시해 둔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행히 집은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었으며 거실에는 작은 크리스마스 장식도 놓여 있었다. 집 주인 아저씨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스마트폰의 번역기를 통해 집안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오늘 하루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우리는 주인 아저씨가 소개한 길 건너편 작은 식당에서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설렘과 긴장 속에서 정신 없이 보낸 하루가 저물었다.
◈ 일일 경비: €71.4/3(≒₩32,000)
택시(숙소 → Buget rent car) 2번 €18.5
도로비(1.2€+2.1€ +3.1€+2.5€) €8.9
메테오라 트리니티 수도원 입장료 €9
Restaurant Taverna Analipsi 저녁 식사(무사카, 스페셜오믈렛, 그릭샐러드, 파스타)29.5€ (달걀 3+팁2.5)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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