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온라인 학점은행제로 한국어 교원 학위 과정을 마치고 11월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이래 지금까지 약 50여 군데 각종 한국어 교육 기관에 지원서를 제출했으나 대부분은 면접을 볼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고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온갖 증명서를 수없이 떼면서 그간 내가 무엇을 했으며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요즘 워낙 취업 문이 좁은 데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 많으니 처음부터 쉽게 강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 25년 간의 중등학교 국어 교사로서의 경력이 있으니 비록 새로운 분야라고는 하나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른 초임 선생님들보다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으나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일이 반복되자 자신감도 점점 약해지고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희망의 빛도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명예퇴직 이후 약 10여 년 간은 뭔가 새로운 일을 하 것이라는 내 계획도 이로써 접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교육청 한국어학급 강사 인력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보통 한국어 교원을 선발하는 곳에서는 이력이 포함된 지원서, 자기소개서 외에 그 기관에서 특별한 형식의 서류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교육청에서는 '한국어 학급 운영 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지만 교재를 참고해 대략적인 계획안을 써서 제출했다. 그렇게 서류 제출 후 면접을 알리는 반가운 문자를 받았고 면접도 무사히(?) 통과해 주 10시간의 강의를 맡을 수 있었다. 이렇게 겨우 한국어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비록 얼마 되지는 않지만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지원한 대부분의 기관에서 서류 전형을 넘어설 수 없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초임임에도 나이가 많은 이유였다. 50대 중반인 내가 30~40대 경력자 선배 선생님들과 쉽게 조화되지 못할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 하나는 대부분의 한국어 교육 기관에서는 한국어 교육 경력자를 선호한다. 이왕이면 선발된 교원이 바로 교육 현장에 투입돼 시행착오 없이 한국어 강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 교육청의 한국어 교원은 한국어 교육 자격이나 경력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교육 경력을 모두 인정해 준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강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 교육청의 한국어 강사는 학기 단위로 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방학 기간에는 수업이 없다. 거기다 2학기 모집 공고가 나면 다시 서류, 면접 전형 과정을 통과해야 강의를 배정받을 수 있다. 그렇게 2학기 수업을 하고 있던 9월 중순 무렵 지인의 권유로 1년 기간의 코이카 프로젝트 봉사단에 지원하게 됐다. 오랫동안 코이카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일주일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복잡한 서류를 어렵게 작성해 제출하고 서울로 가 면접도 보고 KMI(한국의학연구소)에서 신체검사도 받았다. 그런데 신체 검사에서 재진 통보가 왔고 두 군데 초음파 검사와 CT 촬영을 위해 30만원이 넘는 검사료도 지불해야 했다. 주로 의료 시설이 열악한 저개발 국가로 파견되는 만큼 단원들의 신체검사를 엄격하게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몸에서 발견된 양성 종양의 크기가 기준에 비해 다소 크다는 이유로 나는 최종 선발에서 탈락했다. 코이카에 이의를 제기하는 장문의 글을 올려 보기도 했지만 현재 규정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재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이 되돌아왔다. 나는 그 동안 11월에 4주 간 예정돼 있던 국내 교육 일정을 맞추기 위해 10월 말로 교육청에 강사 사직서를 제출해야 했다. 잘 하고 있던 한국어 강의 자리도 잃고 코이카도 나갈 수 없게 되어 난감한 상태가 됐다.
그 즈음 세종학당의 해외 파견 한국어 교원 모집 공고가 났다. 머리 속이 혼란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라 선뜻 지원해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집 기간이 여유가 있어 우선 일주일 간 제주도로 가 해안을 따라 걷고 돌아와 생각해 보기로 했다. 딱히 달라진 것도 없고 머리 속이 맑아지지도 않았지만 놀면 뭐 하나 싶은 생각으로 지원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출 서류 중 '파견 활동 계획서'를 또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했다. 인터넷도 뒤지고 이런 저런 고민을 거듭했지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부임 후 초기에 어떻게 현지 적응을 할 것이며 어떤 한국어 교사가 될 것인지를 솔직하게 썼다. 원래 내 계획대로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나는 세종학당 해외 파견 한국어 교원에 선발됐고 국내 교육도 마친 상태다.
결론적으로 보면 경력이 없는 사람이 한국어 교육 분야에 처음 뛰어들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어 관련 박사학위를 갖고 있거나 완벽한 이중언를 구사할 수 있어 이를 증명할 수 있다면 모를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처음 이 분야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비록 공식적인 경력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여러 봉사 기관에서 한국어 교육 경력을 조금이라도 쌓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해외에서의 한국어 교육 분야에 진입하기는 국내보다는 다소 쉬운 편이다. 기관에 따라서는 경력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지원이 가능하고 실제 채용되기도 한다. 세종학당의 해외 파견 한국어 교원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국내 연수 기간 중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20대에서 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으며, 3급이나 2급 자격증만 취득하고 교육 경력이 전무한 분들부터 10년 이상의 경력자들도 있었다.
해외 파견 교원의 경우 단신 부임이 원칙이기 때문에 가족을 동반할 때는 가족의 비자, 보험, 안전 문제 등은 모두 교원 개인의 부담이 된다. 또한 단신 부임이라고 해도 언어도 풍습도 생경한 곳으로 생활의 근거지를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러므로 해외 생활에 대한 환상만으로 쉽게 결정할 일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국내에서는 진입 장벽이 워낙 높고, 해외 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라 한국어 교원으로 첫발을 내딛기는 이래저래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가 있다면 한번쯤은 해외 파견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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