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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2013. 12~ 2014.01 볼리비아, 페루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체 게바라의 길(Ruta del Che))

2013년 12월 19일(목) 맑음, 파라과이 시우다드델에스데->볼리비아 산타크루즈(Santa Cruz)
06:30 기상
07:30 Hummingbird Hostel->시우다드델에스데 Guarani 공항 택시 22$
08:25 체크인
09:50 탑승
10:05 이륙
10:50 아순시온(Asuncion)에서 산타크루즈 행 비행기 탑승
11:10 이륙
12:50 산타크루즈 착륙
—--------–—----------------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파라과이보다 1시간 늦음
12:55 입국 완료, 비자 52$
13:05 공항 환전 (40$*6.8=272B)
13:15 공항->Jodanga Hostel 택시 60B
13:45 Jodanga Hostel 1박 숙박료 90B(6인 혼성 도미)
15:55 호당가->시내 버스 1B
16:20 24 de septiemsre 거리에서 환전(150$*6.91=1,036.5B)
17:30 한국 식품점 유리(쌀, 모기스프레이, 컵라면, 커피믹스 낱개2) 68.5B, 아씨네(햇반 2개) 32B
18:30 유리->한국 식당 'Corea' 택시 10B
19:15 Corea 순두부 60B
20:20 Corea->Jodanga hostel 택시 17B
23:30 취침

 

  미리 예약해 둔 택시는 약속 시각에 맞춰 도착했다. 저녁 한 끼 먹고 하룻밤 잠만 자고 떠나게 된 도시 시우다드델에스데! 이과수 폭포를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들른 곳이지만 브라질에서 국경을 지나 상인과 관광객들로 정신 없이 붐비던 시장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숙소 근처 예쁜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떠나게 되니 아쉽고 서운하기도 하다.

  시우에서 파라과이 수도인 아순시온까지 40여분 비행 후 공항에 내리자 항공사 직원들이 서서 볼리비아 산타크루즈로 가는 승객들을 안내해 준다. 아순시온에서 내려 산타크루즈 행 비행기로 연결되는 시간이 짧아 바로 연결 편으로 안내하는 모양이다. 아순시온에서 산타크루즈까지의 비행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볼리비아로 입국하는 여행객 중 상당 수는 주로 페루 쿠스코에서 머물다 푸노를 거쳐 볼리비아 코파카바나 쪽이나 수도 라파즈로 이동한다. 이때 대부분 페루 쿠스코에서 볼리비아 비자를 미리 받고 황열병 주사를 맞지 않은 경우 쿠스코나 리마에서 황열병 예방 접종 확인서를 받아오게 된다. 그런데 나는 이미 지난 여름 아프리카를 가기 위해 황열병 접종 확인서를 받았고, 항공편으로 입국시 볼리비아 비자를 공항에서 받을 수 있어 비자 수수료 52$(페루 등에서 사전에 비자를 받을 경우 이보다는 싸다.)를 내고 비자를 받고 입국 심사를 마쳤다.

  산타크루즈 공항에 내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해 둔 호당가 호스텔(Jodanga Hostel)까지 택시를 탔다. 주택가에 있어 택시 기사가 잠시 헤매긴 했지만 호스텔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예약한 방을 안내 받았는데 2층 침대 3개가 있는 6인 혼성 도미토리다. 내 옆 베드에는 미국인 할아버지(?)가 계셨다.

  짐을 던져놓고 일단 프론트에서 시내로 가는 길을 물어 큰 길가로 나와 버스를 탔다. 큰 성당이 있는 시내 중심가에서 환전을 하고 한국 식품점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온 주소를 보여 주며 길을 물었는데 대답하는 사람들마다 가리키는 곳이 달랐다. 결국 1시간여를 헤맨 끝에 겨우 한국 식품점을 찾았다. 반가운 마음에 즉석밥과 컵라면 등 몇 가지를 샀다. 그리고 한국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몇 개의 명함을 준다. 나는 그 중 'Corea'라는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조금 이른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은 한가했다. 순두부를 시켜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 부부가 혼자 여행 왔느냐고 묻는다. 두 사람은 나를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말을 한다. 요즘 이곳 경기가 좋지 않아 좀도둑이나 소매치기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러니 항상 주변을 살피고 가방도 주의하고 택시를 타더라도 꼭 뒷좌석에 앉으라고 당부한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주인 아저씨는 본인의 명함을 주며 혹시라도 급하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꼭 연락하란다. 지구 반대편 이 먼 타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걱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니 고맙고도 가슴 뭉클하다. 나는 아저씨의 명함을 받아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선다.

  내가 이곳 산타크루즈에 온 것은 오직 체 게바라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직원에게 체의 주검을 전시하고 묻었던 곳 바예그란데(Vallegrande)로 가는 길을 물었다. 바예그란데에서는 체가 게릴라 활동을 하다 마지막으로 체포된 장소와 그를 데려가 한동안 가두었던 작은 마을 라이구에라(La Higuera)까지 다시 차로 3시간쯤 가야 한다. 그래서 혹시 바예그란데까지 가서 라이구에라를 투어로 갈 수 있는지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직원은 바예그란데 가기 전 사마이파타(Samaipata)로 가 그곳 투어 회사에서 바예그란데, 라이구에라까지 투어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한다. 그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 그에게 사마이파타에 있다는 투어 회사 명함을 받아 내일 일단 사마이파타로 가기로 한다.

  이렇게 되면 볼리비아에서 'Ruta del Che'의 여정은 산타크루즈 1박, 사마이파타 1박, 2박은 바예그란데와 라이구에라 투어, 다시 산타크루즈로 돌아와 1박을 하게 된다. 그러면 23일 산타크루즈로 돌아와 원래 계획했던 대로 24일 아마조나스 항공으로 산타크루즈에서 라파즈를 거쳐 우유니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직원에게 내일 아침 사마이파타로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갈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고 23일 숙박도 예약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23일부터 26일까지는 휴무여서 호스텔 문을 닫는단다. 난감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 일단 내일 아침 짐만 맡기고 숙소는 돌아와서 다시 알아보기로 한다.

 

2013년 12월 20일(금) 맑음 산타크루즈->사마이파타(Samaipata)
06:50 기상
08:00 아침 달걀프라이, 토스트, 과일, 커피(미국인 Bob 아저씨와 함께)
08:30 Jodanga hostel(호당가) 청소 아줌마 집에 짐 맡김
09:30 호스텔->Samaipata(사마이파타) 택시 타는 곳 택시비 10B
09:55 택시 출발 6명
13:00 사마이파타 투어회사 앞 도착 택시비 40B(30+10)
13:40 공원(Plaza) 입구 호스텔 숙박비 50B
14:10 시장 안 가게 물 4B
15:00 Cafe 1900에서 커피(8), 푸딩(5) 13B
19:30 Cafe 1900 스파게티 39B
21:10 숙소 인터넷 사용(1시간 10분) 8B, 아마조나스항공 라파스, 우유니 왕복 1998B(삼성카드)

 

  어제 한국 식당 주인 부부의 얘기를 듣고 약간 겁을 먹은지라 사실 오늘 혼자 사마이파타를 가는 것도 다소 걱정스런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래도 어쨌든 떠나기로 했고 여기까지 온 목적이 체의 흔적을 찾아가 보는 것이니 용기를 내야 한다. 룸메이트인 미국인 밥 아저씨와 아침을 먹는데 여전히 즐겁게 떠드신다. 사실 그가 하는 말은 반 정도밖에 못 알아들었지만 연신 맞장구를 쳐 드렸다. 마침 친구 미경에게서 메시지가 왔길래 시끄러운 밥 아저씨와 밥을 먹는 중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밥 아저씨는 이과수 폭포는 못 갔다며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 달란다. 나는 그러마고 하고 일단 그의 메일 주소를 받아놓았다. 약간 수다스럽긴 해도 유쾌한 분인 것 같다.

(↑Jodanga Hostel의 아침 식사와 재미있는 미국인 밥 아저씨)


  프론트로 갔더니 어제 직원의 말과는 달리 문을 닫는 26일까지는 짐을 맡아줄 수 없단다. 내가 한숨을 쉬며 크게 낙담한 모습을 보였더니 청소하는 아줌마를 불러 뭐라고 묻는다. 이름이 마리나라는 이 젊은 아줌마네 집이 바로 맞은 편인데 짐을 맡아 줄 수 있는지 물어봤단다. 잠시 후 마리나가 그러마고 해 나는 그녀의 집으로 짐을 가져갔다. 생각과는 달리 그녀의 집은 마당이 넓은 꽤 괜찮아 보이는 곳이다. 남편인 듯한 젊은 남자와 눈인사를 하고 문 입구 거실에 짐을 놓아 두었다. 짐 때문에 잠시나마 무척 당황스러웠는데 깔끔하게 일이 해결된 셈이다. 그나저나 이놈의 호스텔은 크리스마스 연휴라 그런가 내일부터 26일까지는 아예 문을 닫고 휴점한다니, 여행자들에게는 참 난감한 일이겠다 싶다.
  9시 30분쯤 택시가 도착했다. 밥 아저씨와도 인사를 하고 사마이파타로 가는 차를 탈 수 있는 곳까지 갔다. 택시에서 내리자 몇 사람이 사마이파타라고 쓰여진 사무실 앞 계단에 앉아 있다 내가 자신들과 동행임을 금방 알아보는 눈치였다. 키가 작고 마른 체구의 인상 좋은 아저씨가 기사인데 사마이파타냐고 묻길래 그렇다니까 계단에 앉아 기다리란다. 차는 모두 7명의 승객이 탈 수 있는데 사람이 다 차면 출발한단다. 차에는 몇 가지 물건도 싣는데 가는 도중 미리 예약된 곳에 물건을 배달해 주기도 한다. 기사 아저씨는 10시가 가까워지자 6명만 태우고 출발한다. 차는 중간에 주유를 위해 한번 서고 서서히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지나며 보이는 풍경은 그저 첩첩산중이다.

(↑산타크루즈에서 사마이파타 가는 정류소)

 

  드디어 사마이파타라는 글자가 보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린다. 나는 승객 중 마지막으로 호당가에서 추천해 준 여행사 앞에서 내렸다. 차비는 30B였는데 내가 20짜리 지폐 2장을 내밀며 거스름돈을 마다하는 시늉을 했더니 기사는 환하게 웃으시며 고맙다고 한다. 투어 사무실에 들어가 1박2일 투어가 있느냐고 물으니 내일은 2박3일 투어만 있는데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수크레까지 간단다. 나는 다시 난감해졌다. 결국 몇 군데 다른 여행사에 알아보기로 하고 그곳을 나왔다. 택시에서 내리기 전 마을 중간에 공원이 있고 그 둘레에 여행사, 식당, 호스텔들이 있었다. 공원으로 돌아나오면서 여행사 한 곳을 더 들렀는데 내일 투어가 있느냐, 가격은 얼마냐고 물었다. 여기도 내일은 1박2일 투어는 없단다. 그런데 투어 가격이 상상 초월이다. 2,000~3,000 사이로 달러로 환산하면 290~430$ 정도 된다. 순간 나는 내일 아침 버스로 바야그란데를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공원 입구에 있는 호스텔에 가 50B에 방을 쓰기로 하고 짐을 푼다. 주인에게 내일 바야그란데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느냐니까 종이에 시간을 적어 주는데 오전 11시 30분, 오후 2시 30분에 있단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는 바로 가는 차가 없고 조금 큰 도시로 일단 택시로 나가 거기서 타야 한단다. 스페인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아저씨의 설명은 대충 그랬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해서 좀더 상세히 알아봐야겠다. 
  카메라를 들고 나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산중 시골인데도 여행자가 많이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공원 주변 한두 블럭 안에는 식당, 카페, 여행사, 숙소, 심지어 ATM도 있다. 중심지를 조금 벗어나 나갔더니 뙤약볕 아래 두 농부가 옥수수 밭에서 일을 한다.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사진을 찍어도 되냐니까 흔쾌히 승낙한다. 밭으로 들어가 내 카메라에 일단 두 사람의 사진을 찍고 즉석사진기로 찍으려고 가까이 들이댔더니 아저씨는 땀 범벅이 된 옷을 매만지며 단추까지 채운다. 사진을 각각 한 장씩 드렸더니 서로의 사진을 바꿔 보며 역시 좋아하신다. 참 소박한 분들이다.

  나는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이곳에 한국인 노부부가 살고 계신다는 글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길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들 노부부를 만날 우연이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공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을 둘러보았다. 산골 마을 시장 치고는 꽤 규모가 크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이 낯선 동양 여자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시장 안에서 물을 하나 사고 돌아나오는데 여자 아이 하나가 말을 걸어 온다. 알 수 없는 내용이지만 볼리비아를 여행 중이냐? 어디를 거쳐 왔느냐? 뭐 이런 걸 묻는 듯했다. 그래서 브라질을 거쳐 볼리비아에 왔고 페루로 갈 거라고 했다. 이 여자 아이에게도 기념으로 즉석 사진을 한 장 찍어줬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맛있는 케익 냄새가 나는 'Cafe 1900'에 들렀다. 주로 서양인으로 보이는 여행자들이 몇몇 있는데 장식도 분위기도 약간 고급스러운 걸로 봐서 꽤 괜찮은 카페인 듯했다. 향기 좋은 커피와 적당히 달고 우유 맛이 풍부한 푸딩이 13B, 우리 돈 약 2,000원 정도였다. 식사도 된다길래 저녁도 여기서 먹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 오늘 분 여행기를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나니 7시 반이 다 되었다. 가방만 챙겨 다시 'Cafe 1900'에 갔다. 치즈를 얹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그런데 나온 걸 보니 웬만한 사발 크기의 깊은 접시에 국수가 한가득이다. 여자 둘은 충분히 먹을 양이다. 맛은 괜찮았는데 국수양에 비해 소스가 너무 적었다. 그릇 아래에는 아예 소스가 보이지도 않는다. 다소 아쉬운 저녁이었다. 

(↑아름다운 작은 마을 사마이파타)

 

(↑Cafe 1900의 맛있는 푸딩과 커피, 내부 전경)


  숙소로 다시 돌아와 인터넷으로 라파스↔우유니 간 왕복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내가 미리 조사할 때보다는 값이 다소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인이 컴퓨터 사용을 9시까만 할 수 있다고 해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겨우 라파스↔우유니 왕복편만 예약하고 산타크루즈→라파스 구간은 시간이 다 돼 예약할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 문을 여는 대로 다시 시도해야겠다.

 

2013년 12월 21일(토) 비->차차 갬, 사마이파타->바예그란데(Vallegrande)
06:30 기상
09:50 Paola Hostel 체크아웃
10:00 Cafe 1900 아침(커피, 토스트, 잼, 버터, 달걀 프라이) 21B
11:00 인터넷 검색 1시간 10분 8B, 산타크루즈->라파즈 항공 예약 856B(삼성카드)
12:15 사마이파타->Mairano(마이라노) 택시 50B
12:40 마이라노->바예그란데 택시 정류소 도착
14:45 화장실 사용료 1B, 멜론 반 개 3B
15:15 마이라노 택시 출발
17:05 바예그란데 센트로 플라자 앞 도착 택시비 30B
17:30 체 박물관 옆 여행사 Ruta del Che 예약(350B)
18:30 Senor de Malta(체의 시체를 처음 전시했던 병원)
19:00 FOSA DE CHE GUEVARA(체와 함께 총살 당한 6명의 무덤이 있었던 곳) 입장료 30B(25+5)
20:00 숙소 체크인 2박 160B(개인 화장실, 아침 포함), 사다꼬와 작별
20:20 저녁(컵라면)
11:00 취침

 

  새벽 4시 빗소리에 잠이 깼다. 이를 어쩌나, 길이 진흙탕일 텐데 그러면 길이 끊길 수도 있다는데... 아침이 되면 비가 잦아들겠지. 다시 잠을 청한다. 6시 반, 내용을 알 수 없는 꿈을 꾸다,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기로 한다. 잠시 후 7시 알람이 울리고 8시가 넘어가는데도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어제 우유니행 비행기표는 예약을 했고(24일 전후로는 자리가 없다), 따라서 어떻게든 23일 오후에는 산타크루즈에 도착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여기서 오늘 발이 묶이면 내일 아침 일찍 택시를 대절해 바예그란데로 가 도착하는 대로 체게바라 투어를 하고 다음 날 오전 산타크루즈 행 버스를 타면 된다. 여러 생각 끝에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걱정이 조금 덜어진 느낌이다. 그나저나 이 비가 오전에는 그쳐야 할 텐데...
  9시가 조금 넘으니 빗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다. 나는 얼른 세수를 하고 짐을 챙겨 나와 체크아웃을 한다. Cafe 1900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인터넷을 통해 어제 하지 못했던 산타크루즈에서 라파즈까지의 비행편을 확보한다. 그러면 일단 우유니 이동은 해결된 셈인데 오늘 일정이 걱정이다. 인터넷 검색을 마치고 나와 차량을 수배하기로 한다. 어제 숙소 주인이 적어준 대로 여기서 택시로 버스정류장이 있는 시내로 나가 시간 맞춰 버스를 탈 것인가, 아니면 아예 택시를 대절해 바로 바야그란데까지 갈 것인가를 고민하다 택시 기사를 붙들고 가격을 협상한다. 나는 일단 택시 대절 가격을 물었는데 모두 300B란다. 200 정도면 시도할 작정인데 아무래도 버스를 타야 할까 보다.   

  그러다 한 기사와 협상 끝에 280까지는 얘기가 됐는데 내가 계속 망설이니까 그럼 50B에 마이라노(Mairano)라는 작은 도시에 가서 사람이 차면 출발하는 택시를 타란다. 가격은 1인당 30B이라며 친절히 안내해 준다. 좋은 선택인 것 같아 그의 택시를 탔다. 25분쯤 산을 돌아가니 도시라기엔 조금 작은 마을이 나온다. 택시 기사는 Mairano→Vallegrande라는 팻말을 걸어 놓은 작은 사무실 앞에 차를 세운다. 기사가 사무실에서 나온 직원에게 바예그란데 가는 택시 타는 곳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듯하다. 여직원이 맞다는 대답을 하자 나를 내려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첫 손님이란 것이다. 나머지 세사람이 언제 올지는 모를 일이다. 지루하게 앉아 거의 두어 시간을 기다리다 길 건너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할머니가 파는 과일 노점에서 맛있는 멜론을 사 점심 대신 먹기로 했다. 내가 맛을 보고 난 후 맛뵈기로 잘라놓은 반 개짜리 멜론을 달라고 하자 할머니는 자꾸 새 것을 담으려고 한다. 결국 씨를 빼고 먹기 좋게 자른 후 멜론 반 개를 샀다. 맛도 달고 부드러운 멜론 반 개로 그렇게 점심을 대신한다.
  두 시간을 기다리자 배달해 줄 물건들도 오고, 승객들도 모인다. 약 2시간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차는 드디어 출발한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한 것에 대한 배려인지 운전석 옆 자리를 내 주어 나는 편안했는데, 뒤를 보니 어른 셋이 각각 아이를 하나씩을 안고 탔다. 내가 중간에 자리를 바꿔 준다고 해도 마다해 약 두 시간 20분 정도를 달리는 동안 뒷자석의 젊은 엄마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바예그란데 센트로 플라자 앞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근처를 죽 둘러보니 Hostel 간판들이 몇몇 눈에 들어온다. 나는 먼저 숙소를 정할까 하다가 체 박물관부터 보고 내일 투어 예약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런데 눈앞에 있던 박물관을 다른 곳을 돌며 찾다가 결국 문이 닫힌 것을 확인했다. 옆에 있는 여행사에 내일 투어에 대해 물었는데 왕복 6시간 차를 타고 가 3시간 트랙킹을 하는 코스 가격이 350B이란다.

  너무 비싼 것 같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일본 여자가  다소 미숙한 영어지만 나더러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유창한 스페인어로 여행사 직원과 꽤 오래 가격 협상도 해 주고(결국 한푼도 깎지는 못했지만), 함께 데려온 아들 녀석을 집에 데려다 주고 자신의 차로 체의 시체가 처음 전시됐던 병원이랑 무덤을 함께 가 주겠다고 한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내일 투어 예약 후 먼저 간 곳은 총살한 체의 시체를 처음 전시했던 병원 건물이다. 두 군데가 있는데 내부는 그저 시체를 올려 두었던 단 하나가 고작이고 사람들의 기념 낙서와 그림 외에는 아무 장식도 없는 작고 초라한 곳이다. 체 게바라가 30여 년 간이나 비밀리에 묻혀 있던 그의 무덤은 입장료 25B을 내야 하고 가이드가 있어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함께 온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볼리비아 정부가 체의 무덤이 있는 이곳을 비밀에 부쳤다가 30여 년 뒤 위치를 공개했고 그 후 체 게바라는 큰 딸이 살고 있는 쿠바로, 그외 그와 현장에서 함께 잡혀 죽은 6명의 게릴라 동지들은 각각 그들의 가족이 있는 나라로 옮겨졌단다. 현재는 2006년 쿠바 정부가 체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박물관으로 건물을 지었고 내부는 체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까지 그의 일생이 담긴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다. 그 중에는 쿠바 혁명 후 대통령이 된 피델 카스트로와 현재 형의 뒤를 이어 대통령을 지내는 라울 카스트로와 함께 있는 사진도 있다. 부당안 세상을 바꾸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한 시대의 영웅의 흔적이라기엔 다소 초라했다.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가는 일본인 여자는 이름이 사다꼬라는데 자이카로 일하면서 현지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정착한 지 10년째란다. 마지막에 숙소까지 추천해 데려다 주고는 자기 집을 아니까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고 하며 떠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고개 숙여 고맙다는 인사만을 여러 번 했을 뿐이다. 오늘 새벽에 억수같이 비가 퍼부을 때를 생각해 보면 우여곡절 끝에 여기 바예그란데에 와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 감사하다.

 (↑체의 시체가 처음 전시되었던 곳(지금 본 입구의 본 건물은 병원으로 쓰이고 있다.))

(↑체의 시체가 30년간 묻혔던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단장했다.) 

(↑나를 도와준 일본인 사다코씨와 함께)

 

2013년 12월 22일(일) 맑음, 소나기 바야그란데<->라이구에라(La Higuera)
05:50 기상
06:30 아침(빵, 잼, 버터, 홍차)
07:00 Flaza Pueblo Hotel 택시 도착, 투어비 350B
07:05 물 2(8), 사탕(3) 11B
09:30 택시 기사 아저씨 집 도착, 트래킹 시작
10:15 'Quebrada del Churo'(체가 체포된 숲)
11:30 기사 아저씨네 집 귀환, 어머니가 체와 관련된 사진 보여줌
12:00 집 출발, 12:20 라이구에라 마을 도착, 박물관 입장료 10B
12:55 마을 출발 15:30 호텔 도착
16:20 바예그란데 시내 돌아보기
17:00 환전(100$*6.85=6,850B)
17:10 과자 세트 30B
18:20 시장 안 간식 겸 저녁(옥수수,닭튀김2, 큰 튀김만두4, 푸딩크림1, 바나나1) 8B
18:40 호텔 귀환
11:20 취침

 

  방을 나서니 아침 공기가 선선하다. 바람막이 점퍼를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사다꼬씨가 말해 둔 덕분에 6시 반 아침이 준비돼 있었다. 각각 다른 종류 빵 3개와 홍차였는데 하나는 먹고 나머지 두 개는 점심으로 먹을 요량으로 냅킨에 싸 가방에 넣었다. 차는 7시에 호텔 앞에 도착했고 어제의 그 여행사 직원 아저씨가 함께 와 예약금 100을 제외하고 250을 계산했다. 그리고 기사에게 내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듯한 말을 한다. 그리고 트래킹 가이드도 이 기사 아저씨가 할 거라고 한다. 기사 아저씨네 집이 바로 그 동네란다.  떠나기 전 동네에서 물 2병을 사고 바로 출발하려는데 라이게라로 가는 손님 하나가 함께 갈 수 있냐고 한다. 기사 팁 대신 그를 태우는 걸로 마음 먹고 승낙했다.
  차는 이내 출발해 비포장 산길을 달린다. 대충 편도 3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기사는 2시간 30분만에 자기 집이라며 차를 세운다. 이 마을 사람이라 트래킹 안내도 한다고는 들었는데 자기 집 마당에 차를 세우다니, 이건 또 뭔 일인가? 잠시 후 기사 아저씨는 트래킹이라며 자기집 뒷 마당으로 나가 산길을 따라 내려간다. 그 좁고 가파른 산길을 끝도 없이 내려간다. 이 기사 겸 가이드 아저씨는 능숙하고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가는데 나는 그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그는 중간 중간 내 발소리를 듣고 잠시 기다렸다가 내가 보이면 다시 앞서가기를 반복했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집이라기엔 허름한 초막이 있다. 아저씨는 자기가 어릴 때 여기서 놀았으며 체도 게릴라전 당시 사용했다는 말을 한다. 스페인어를 모르니 대충 그렇게 알아들었다. 그렇게 약 40여 분을 알 수 없는 산길을 따라 내려가니 느닷없이 체가 마지막 생포되었던 장소의 표지가 나타난다. 바닥 가운데 상징인 별표를 만들어 놓고 그 주변을 둥그렇게 만들어 여기저기 글을 써 놓았다. 처음 그의 평전을 읽고 상상만 했던 곳, TV 여행 프로그램에서만 봤던 바로 그곳이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나무가 아직도 그를 기억하며 거기 서 있다. 내게는 여행지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혁명가로서 마지막 운명을 결정지은 장소다. 물을 마시고 가쁜 숨을 돌리며 주변을 돌아보고 사진을 찍었다. 둘러보니 할아버지 한분이 나귀에 풀을 뜯기고 계셨다. 아까부터 나를 보며 고생스럽게 이 산골까지는 왜 왔는지 딱하게 보는 눈치였다. 사실 이곳 볼리비아 사람들은 대부분은 체 게바라를 그저 테러리스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할아버지는 그런 눈치였다. 나는 다가가 사진기를 들이대며 찍어도 좋겠냐는 시늉을 한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셔서 할아버지 사진 한 장을 담았다. 그리고 들고 오면서 뭔 쓸모가 있을까 하며 후회했던 즉석 카메라로 할아버지 사진도 한장 찍어 드렸다. 사진 앞뒤를 살펴보시며 좋아하신다.

(↑기사 아저씨 집 입구에 있던 푯말) 

(↑내려가는 길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체가 게릴라전을 하다 최후로 다리에 총상을 입고 잡힌 곳)


  이제 다시 내려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가야 한다. 길이 가파르기도 하지만 약간 고도가 있어 그런지 나의 저질 체력 탓인지 숨이 가쁘고 다리가 풀릴 정도다. 그럼에도 기사 아저씨는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너무 힘들어 중간에 두어 번 쉬고 땀 범벅이 된 채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아직 쿠스코 마추픽추가 남았는데 체력이 정말 걱정스럽다. 3시간 걸린다는 이 트래킹도 아저씨 덕분(?)에 2시간 반만에 해결했다. 마당에서 쉬는 동안 그의 어머니가 오래된 체의 흑백 사진을 보여주며 뭐라고 설명을 해 주신다. 정확히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마 체가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인 것 같다. 이 할머니에게도 사진을 한 장 찍어드렸다. 
  한숨을 돌리고 다시 차를 타고 간 곳은 체 게바라가 생포된 후 갇혀 있었다는 마을, 라 이게라. 마을이라기에도 초라한 몇 가구 살지도 않는 이 곳에 그가 갇혀 있었다. 명색이 이름은 박물관이라 관리인에게 말해 들어가려면 열쇠를 따고 입장료 10B도 내야 한다. 예상했던 대로 내부는 초라했다. 낡은 군복이 걸려 있는데 체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고 벽면에는 몇몇 사진과 추모 글들이 붙어 있다. 관리인 아줌마는 낡고 작은 의자를 가리키며 그가 묶여 있던 것이라는 시늉을 했다.
  박물관을 나와 보니 마을은 온통 모든 집들의 벽면이 체의 그림으로 덮여 있다. 마을 가운데 작은 공원 입구에 그의 동상이 있고 공원 한편으로는 커다란 체의 흉상이 있다. 나는 기사 아저씨, 관리인 아줌마랑 돌아가며 그의 흉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즉석 사진을 기념으로 주었다.

  이름이 산토스라는 이 기사 아저씨와 이제 다시 바예그란데로 돌아갈 시간이다. 점심도 못 먹은 어중간한 시간이라 차 안에서 아침에 호텔에서 싸 갔던 빵을 반씩 나눠 먹었다. 돌아가는 내내 나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좌석을 뒤로 젖혀 아예 누워 잤다. 이 산길에 능숙한 산토스씨 덕분에 내가 묵는 바예그란데 Plasa Pueblo Hotel에는 예정 시간보다 30분 빠른 오후 3시 30분에 도착했다. 

(↑초라한 박물관 내부)

(↑박물관 관리인)

(↑작은 마을 라이게라의 체 게바라)

(↑사마이파타에 있던 Ruta Del Che 지도)

 

  호텔 방에 돌아와 다시 1시간쯤 쉬다가 어제 제대로 보지 못한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내가 묵은 호텔에서 두 블럭만 내려가면 재래 시장이 있고 여기서 왼쪽으로 두세 블럭만 가면 큰 시계탑이 있는 교회가 보이는 중앙 광장이다. 어제 그 여행사에 가니 그 직원이 역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내일 아침 여기서 택시를 타고 산타크루즈로 가는 버스터미널로 갈 수 있느냐니까 자기가 알려 주겠단다. 그리고 환전을 하고 싶다니까 말이 안 통하는 나를 데리고 몇 군데 가게를 가더니 환전을 도와준다. 100불을 환전했는데 환율은 역시 산타크루즈보다 좋지 않다. 1$ 당 6.8B를 쳐 준다. 여행사 직원과 헤어져 어제 그 일본인 아줌마네로 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기에 가게에서 작은 과자 선물셋트를 하나 샀다. 그런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골목을 찾았으나 어느 집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20여 분을 주변 골목을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사람들이 많이 사먹는 가게에서 요기가 될 만한 간식 두어 가지를 사 먹었다. 그 중 하나는 내 주먹만한 크기의 일종의 튀김만두였는데 두어 개쯤 먹으면 한끼 요기는 될 만했다. 부족하나마 배를 채우고 내일 차에서 먹을 작은 바나나 2개를 사 호텔로 돌아왔다.
  결국 내 오랜 꿈 중의 하나를 오늘 이루었다. 20여 년 전, 처음 체 게바라의 평전을 읽은 후 그는 내게 오래 전부터 알았던 사람 같았다. 변치 않는 순수한 열정 하나로 평생을 살다 간 그와 나는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건지... 몇 년 전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언젠가 남미로 가야겠다는 여행 계획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올 초 그에 관한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체게바라 : 뉴맨'은 올해 안에 내가 남미를, 그것도 체의 흔적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굳히게 했다. 그 오랜 여정은 드디어 실행되었고 어제,오늘 나는 그와 만났다.
  사실 이 쉽지 않은 여정을 계획하면서 나는 그의 길을 따라가며 무엇을 찾고 싶은지,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 수없이 자문해 봤다. 오늘 'Ruta del Che'의 일부를 내 발로 밟고 난 후 그의 위대한 정신에 비해 초라하고 허망한 마지막의 흔적들은 내게 '나는 외롭지 않아요. 당신들이 나를 기억하며 이렇게 먼 길을 떠나와 여기까지 와 줘서.'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모든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나 보다. 체가 아무리 위대한 혁명가였으나 죽음이라는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었고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마지막 표정이 담긴 사진 앞에서 내 초라하고 부질없는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13년 12월 23일(월) 소나기->갬, 바예그란데->산타크루즈
06:30 기상
08:20 아침(빵, 커피, 과일, 잼, 버터)
08:50 Plasa앞 투어회사
09:10 체 게바라 박물관 10B
09:30 투어회사 직원 Gonzalo(곤잘로) 택시로 버스 터미널 도착, 택시비 10B, 산타행 버스비 60B, 터미널 이용료 2B
10:00 봉고차 출발
12:05 사마이파타 휴게소 겸 식당 물 5B
12:35 휴게소 출발
14:55 산타크루즈 정류소 도착
15:20 정류소->호당가 G.H 앞 마리나 집 택시 15B
16:30 Corea 식당 뒤 Elisa Hotel 140B
19:00 Corea 식당 된장찌개 60, 물7 (67B)
20:20 약국 고산병 약 5알 20B
20:30~21:50 wifi 검색, 카톡
23:20 취침

  오늘 하루도 참 운이 좋았다. 아침에 소나기가 내려 다소 걱정스러웠으나 점차 잦아들어 8시쯤 짐을 챙겨 나왔다. 열쇠를 반납하고 식당에 앉았더니 주인 딸인 듯한 아가씨가 과일을 먹겠냐고 묻는 듯했다. 그러마고 했더니 몇 가지 과일을 썰어 접시에 내 왔다. 오늘도 빵 하나를 커피와 함께 먹고 나머지 두 개는 냅킨에 싸 가방에 담았다. 어제 산 바나나와 함께 오늘 점심이 될 것이다.
  어제 부탁한 대로 광장 앞 여행사 앞으로 갔다. 9시가 조금 못 되어 아직 문이 잠겨 있다. 잠시 후 9시를 알리는 교회 시계탑 종소리가 울렸는데 직원이 출근을 않는다. 10분쯤 되자 체 박물관 직원이 도착해 어제까지 잠겼던 문을 연다. 입장료 10B를 내고 들어가니 1층에는 이 지역 고대 유물들이 전시돼 있고 2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체와 관련된 사진과 유물(진짜인지는 모름)인 군복이 전시돼 있다. 세탁소였다는 이곳이 박물관이 된 이유는 그의 시신을 씼겼다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개수대가 그대로 방 한 가운데 있다. 돌아나오면서 방명록에 '그의 순수한 영혼이 내 삶에도 울림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글 한 줄을 남겼다.
  박물관을 나오자 여행사 직원이 출근을 했다. 며칠째 보고도 그의 이름도 모른다. 이름을 물으니 곤잘로(Gonzalo)라며 명함을 준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줬더니 사진 속 옷매무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꾸 자기 옷을 가리키며 뭐라고 하면서도 고마워한다. 산타크루즈행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택시를 잡아 달라니까 자기 택시로 가잔다. 도착한 터미널이라야 그냥 공터에 허름한 건물을 지어 놓고 작은 창구 몇 군데에서 행선지별로 표를 팔고 있다. 오늘은 길이 좋지 않아 큰 버스는 안 가고 봉고형이나 사륜구동차만 간단다. 산타행 차표는 60B. 곤잘로는 내가 차를 타야 하는 곳까지 안내해 주고 돌아갔다. 키가 작고 마른 체구의 그는 3일을 보는 동안 표정이나 말투에 변함이 없고 친절했다.
  차는 출발 10여 분 전부터 짐을 싣더니 정확히 10시에 출발했다. 좌석이 2개가 비었었는데 가는 길에 어떤 여자를 태워 중간에 내려주고 다시 남자 두 사람을 태웠다. 세 사람이 타는 뒷좌석에 뚱뚱한 남자가 가운데 타게됐는데 시종일관 다리를 벌려 나는 계속 옴짝달싹 못하고 한쪽 구석으로 몰리는 형국이었다. 12시 경 사마이파타 어느 식당에서 30분 정도 점심 식사 겸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한다. 총 6시간이 걸린다던 차는 점심 식사 시간을 포함하고도 약 5시간만에 산타크루즈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잠시 서성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호당가G.H 앞 마리나 집에 도착했다. 어제 사다꼬씨네 집에 가져가려 샀던 과자 세트를 선물로 내밀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니 하루만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남편과 다른 여자랑 상의해 보더니 결론은 안 된다고 한다. 호당가에서 추천해 준 게스트하우스로 전화를 부탁했더니 가격이 140B이란다. 너무 비싸 일단 Corea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고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마리나 남편이 큰길까지 따라와 택시를 잡아줘 식당 앞으로 갔다. 그런데 이런... 문이 잠겼다. 여기는 점심과 저녁 사이에 휴식 시간이 있는데 저녁은 6시 반부터 시작한단다. 기사에게 식당 사장님 전화번호를 주고 전화를 부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어중간한 시간이지만 사장님 부부가 도착했다. 일단 밥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식당 뒷길에 있는 깔끔한 호텔을 소개해 주신다. 가격은 140B. 호당가에서 추천받은 곳보다 나은 것 같다. 욕실 딸린 싱글룸에 에어컨, 한국 TV도 나온다.
  호텔에 들어가자 더운 물에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했다. 7시쯤 식당에 가 된장찌개를 시켜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마주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신다. 처음 볼리비아에 들어와 사업을 하다 다 망하고 지금은 주로 한국 방송팀의 다큐 제작 현지 코디 일을 맡아 하신단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함께 약국에 들러 고산병 예방약을 사고, 호텔까지 오셔서 내일 새벽 5시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까지 해 주신다. 나는 어쨌든 운이 좋은 건지 매번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 행운이 따른다.
  호텔 로비에서 오랜만에 뉴스 검색도 하고 카톡도 한다. 그런데 호스텔 월드에 검색해 보니 우유니에 내일 방이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가? 내일 도착해서 방도 구하고 투어도 예약하려면 또 조금 고생하게 생겼다.

 

<산타크루즈 추천 한식당 'Corea'>

 

 

 

 

<산타크루즈(체 게바라의 길) 경비 : ₩765,930>

달러 : $74(≒₩79,920)

볼리비아 볼리비아노 : B4,397.5(≒₩686,010, 산타→라파즈(133,536), 라파즈↔우유니(311,688)(아마조나스 항공권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