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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2021년 12월 그리스

그리스 아테네 3일(1) 국립 고고학 박물관

12월 22일(수) 아테네(Athens) 3일 (11,500보 / 6.9km)

  • 아테네 숙소 →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National Archeology Museum Athens) → O Thanasis(케밥 전문 식당) → Le Greche(젤라또 가게) → 하드리아누스 도서관(Hadrian's Library) → 로만 아고라(로마 포룸, Roman Agora) → 중앙 시장(Central Municipal Athens Market) → 숙소

 

아테네에서의 삼일째 되는 날 아침, 우리는 마치 밀린 숙제를 먼저 해치우려는 학생처럼 또 다른 박물관인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Εθνικό Αρχαιολογικό Μουσείο, National Archeology Museum Athens)으로 갔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오모니아 역(Omonia)에서 내려 10분쯤(약 800m) 걸어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 박물관은 1829년에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1866년 그리스 정부 및 유럽의 여러 부호들의 후원으로 현재 건물을 착공했고 1889년에 완공하여 고고학 유물들을 상설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박물관의 외관은 고대 그리스의 공공 건물 건축 양식을 따라 만들어졌으며 전체 구조는 2층으로 되어 있고 총 56개의 전시실이 있다. 48개의 전시실이 있는 1층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유물과 그리스에서 발굴된 이집트 유물이 전시돼 있다. 2층은 8개 전시실에 주로 토기와 도자기가 전시돼 있다.

이곳의 유물은 단순히 그리스의 역사를 전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양 문화의 뿌리를 찾아보는 것이고 특히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조각품들을 통해 서양 미술의 근원을 짐작해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러니 이 박물관의 전시물이 특히 귀중하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정면)

우리는 먼저 1층 4번 미케네 전시실로 갔다. 이곳에는 BC1600년 ~ BC1100년 사이에 융성했던 미케네 문명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대 트로이와 미케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Ίλιάς, 또는 일리아드(Iliad)' 속 트로이 전쟁이 역사적 사실임을 굳게 믿었던 독일의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에 의해 그 실체가 처음 밝혀진다. 그는 1870~1873년 지금의 터키에서 고대 트로이 유적을 발굴함으로써 트로이 전쟁이 역사 속에 사건이었음을 증명했다. 그후 1876년에는 그리스 아르고스만 지역에 있는 미케네 고분을 처음 발굴했다. 이곳 미케네 전시실의 유물들은 바로 슐리만이 처음 발견한 미케네 고고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 전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Προσωπείο του Αγαμέμνονα, Mask of Agamemnon)일 것이다. 이 황금 가면은 BC1580 ~ BC1550에 만들어졌는데 하인리히 슐리만은 미케네 유적지 왕궁터에서 이 가면을 발견하고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아가멤논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 가면은 아가멤논 시절보다 앞선 왕족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가면을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이라고 불렀다. 이 가면은 매우 유명할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높은 귀한 유물이기 때문에 해외 전시를 위한 모조품이 따로 제작돼 있을 정도라고 한다.

호메로스가 황금이 넘쳐나는 도시라 할 만큼 미케네는 부유하고 정말 금이 많았던 모양이다. 미케네 유적에서는 특히 금세공품이 많이 발굴되었다.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
(↑미케네 전시실의 금 공예품)

트로이 전쟁과 아가멤논의 이야기는 미케네 편 참조 https://blog.daum.net/audience65/255

 

그리스 미케네 고고 유적, 나플리오 팔라미디 요새

12월 19일(일) 나플리오(Nafplio) ↔ 미케네(Mykene) (7,900보 / 4.8km (1시간 / 53km)) 나플리오(Nafplio) 숙소 → 미케네(Mykene) → 팔라미디 요새(Fortress of Palamidi) → 숙소 나플리오에 도착한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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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 14번 방은 아르카익(Archaic) 시대 전시실이다. 아르카익 시대는 대체로 BC600년 ~ BC480년 사이 그리스 초기 미술을 일컫는다. 아르카익은 ‘고식의’, '시원(始源)의’, ‘태초(太初)의’라는 뜻을 가진 ‘아르카이오스(archaios)’에서 유래된 말로 미술 발전의 초기 단계인 단순하고 미숙한 표현 양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시대 미술은 건축이나 회화보다는 남자 조각상인 쿠로스(Kouros)와  여자 조각상인 코레(Kore)에 그 특징이 잘 표현돼 있으며 특히 유명하다. 쿠로스와 코레는 인체와 같은 크기인 등신대(等身大)로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율동성이 없는 경직된 정면 입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쿠로스는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주먹을 쥐고 있는 나체로 조각되어 있고, 코레는 여러 형태의 옷을 입고 있는데 제작 당시에는 이 옷이 화려한 색으로 채색되었다고 한다. 쿠로스와 코레는 주로 신에게 봉헌하거나 개인이나 가문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환조(丸彫, 대상을 모든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표현한 입체 조각) 조각상으로도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이들 남녀 조각상의 입술 양끝이 살짝 올라가 있어 미소를 띄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를 '아르카익 미소(Archaic smile)'라고 한다.

7번 전시실에 있는 니칸드레 코레(Nikandre Kore)는 다른 코레 작품들보다 앞선 시기인 BC65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현존하는 코레 조각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코레 조각상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다. 델로스(Delos) 섬의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근처에서 발굴되었는데 신전에 바쳐진 봉헌물이었다. 이 코레 조각상의 치마 앞 부분에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낙소스(Naxos) 섬에 살던 귀족 여인인 니칸드레가 이 코레 조각상을 신전에 바쳤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 코레상은 낙소스 섬에서 제작되어 델로스 섬으로 옮겨져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코레가 제작되던 시기는 주로 석회암을 많이 사용했으나, 낙소스 섬에는 대규모의 대리석 채석장이 있었을 만큼 대리석이 풍부한 곳이어서 니칸드레 코레는 최초로 대리석을 조각의 재료로 사용한 작품이라고 한다.

8번 전시실의 남성 조각상인 수니온 쿠로스(Sounion Kouros)는 BC580년경 제작된 것이다. 크기가 3m로 현존하는 쿠로스 상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로스 조각상은 인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균형미를 잘 나타내고 있어서 당시 아주 유행했기 때문에 약 2만여 개 정도가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수니온 쿠로스는 반도 끝인 수니온 곶 언덕에 세워진 포세이돈 신전에서 발굴된 것이다.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지 않고 바다에서의 안위를 기원하며 신전에는 많은 봉헌물이 바쳐졌는데 전리품이나 귀금속, 조각상 등도 있었다. 이 쿠로스 역시 포세이돈 신전에 바쳐진 봉헌물 중 하나였다. 수니온 쿠로스는 초기의 쿠로스 상으로 크기가 크고 다소 경직된 듯한 자세에 무게 중심이 잘 잡히지 않은 모습이다. 쿠로스 상이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것은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죽은 사람을 나타낸다고 한다.(산 사람은 반대로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각상의 크기가 작아져 실제 사람 크기가 되고 표현도 자연스럽게 된다.

(↑니칸드레 코레와 수니온 쿠로스)

수니온 곶 포세이돈 신전 참조 https://blog.daum.net/audience65/256

 

그리스 나플리오 → 코린토스 운하 → 수니온 곶(포세이돈 신전) → 아테네 1일

12월 20일(일) 나플리오 → 코린토스 운하 → 수니온곶 → 아테네(Athens) 1일(4,600보 / 2.8km (4시간 14분 / 273km)) 나플리오(Nafplio) 숙소 → 아크로나플리아 성(Akronafplia's Castle) → 코린토스 운하(C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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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 전시실의 스핑크스(Σφίγξ, Sphinx)는 BC570년~BC550경년에 제작된 것으로 그리스 아티카(Αττική, Attica)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 스핑크스의 특징은 그리스 여신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원통형의 머리 장식인 폴로스(Polos)가 조각돼 있는 것이다. 또한 두 개의 기둥 위에 있는 또 다른 스핑크스는 죽은 사람의 묘비 위에 장식된 것이다.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먼저 생긴 조각 형태이지만 피라미드 앞을 지키고 있는 스핑크스는 남성의 얼굴에 날개가 없는 사자의 몸통인 것과는 달리 이 스핑크스는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과 가슴, 날개 달린 사자의 몸통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죽은 파라오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 반면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Oedipus) 신화에서와 같이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괴물로 나타난다. 

(↑스핑크스)

15번 전시실의 중앙에는 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로 BC460경 제작된 청동 작품인 아르테미시온(Ἀρτεμίσιον, Artemisium)의 제우스(또는 포세이돈)가 서 있다. 에우보이아(Euboea) 북부 아르테미시온 해저의 난파선에서 1926년 청동상의 팔 하나를 발견했고 이후 1928년 나머지 몸통 전체를 발견했다. 이 남성 청동상은 높이 2.09m의 크기로 팔을 뻗어 무엇인가를 던지려고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남성 인체의 완벽한 균형미와 조화로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신화 속에서 제우스는 번개,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사용하는데 이 청동상이 들고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 발견되지 않아 이름이 둘이 되었다. 청동 조각상은 속을 비울 수 있어서 무게가 가벼웠기 때문에 대리석 조각상에 비해 인체의 움직임을 조금 더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고 한다. 

(↑아르테미시온의 제우스(또는  포세이돈))

같은 전시실의 부조는 엘레우시스(Ἐλευσίνια, Eleusís)에서 발견된 데메테르 부조(Demeter Relief)로 곡물과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Δημήτηρ, Demeter)를 섬기던 엘레우시스 사람들이 신에게 바친 봉헌물이다. 이 부조는 BC440~430경 작품으로 높이 2.2m, 너비 1.5m의 크기로 제작되었다. 

농경을 주관한 데메테르 여신에게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름다운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가 있었다. 어느 날 죽음과 지하의 신인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밤낮 없이 딸을 찾아 헤매던 데메테르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로부터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잡혀간 사실을 전해 듣고 낙담한 나머지 자신의 거처에만 있으면서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극심한 가뭄으로 곡식이 자라지 않게 되어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이에 제우스는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데메테르에게 돌려줄 것을 명한다. 그러나 하데스의 저승에서는 어떤 음식이든 먹게 되면 이승으로 돌아올 수 없는 규칙이 있었는데, 하데스는 제우스의 전령이 오기 전에 페르세포네에게 석류씨 네 알을 먹게 한다. 이 사실을 안 제우스는 페르세포네가 삼킨 석류씨 네개를 각각 한 달로 계산해 페르세포네가 4개월은 저승에서 8개월은 이승에서 살도록 했다. 그래서 페르세포네가 돌아와 어머니 데메테르와 함께 있는 시기인 10월부터 8개월간은 곡물 농사가 잘 되어 풍요로웠으나 나머지 시기는 건조하고 너무 더워 농사가 어려웠다. 이러한 농경의 순환은 그리스의 연중 기후, 농경 주기와 일치한다고 한다. 

한편 데메테르가 딸을 찾기 위해 그리스의 여러 곳을 돌아다닐 때 들른 곳 중 한 하나가 엘레우시스였다. 이곳에서 왕의 딸들에게 후한 대접을 받은 데메테르는 그 보답으로 왕자인 트리프톨레모스(Τριπτόλεμος, Triptolemos)에게 곡물 제배의 기술을 가르쳐 준다. 이 일은 곧 인류가 최초로 농경 기술을 얻게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데메테르 부조에는 신화의 이런 이야기와 관련하여 세 인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왼쪽부터 차례로 데메테르, 트리프톨레모스, 페르세포네가 서 있다. 데메테르는 가운데 있는 소년 모습의 트리프톨레모스에게 곡식(밀) 다발을 주고, 오른쪽 페르세포네는 트리프톨레모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고 있다.  

(↑데메테르 부조)

1층 북쪽 여러 전시실에는 다양한 묘비 부조들을 볼 수 있다. 이 부조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관련이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Πελοποννησιακός Πόλεμος)은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아테네를 견제하기 위해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결성되어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과  부딪치면서 BC 431년~BC404년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30년 넘게 지속된 긴 전쟁은 최후에 아테네의 패배로 끝이 난다. 전쟁의 결과 그리스의 국제 관계는 변화를 겪게 되고 전쟁에서 승리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밀어내고 그리스의 주도국이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되었던 전쟁의 영향으로 종교적, 문화적 훼손과 함께 농촌과 도시가 파괴되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페르시아 전쟁 승리로 그리스가 누리고 있던 번영과 영광을 종식시킨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이 시기 긴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이로 인해 무덤도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박물관 1층의 묘지 부조들은 대부분 아테네의 공동 묘지였던 케라메이코스(케라미코스)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곳 케라메이코스(Κεραμεικός, Kerameikos)는 BC1200년~BC300년 사이 동안 공동 묘지이자 도자기를 굽던 장소였다. 이곳의 부조에는 묘지의 주인이 살아 있던 당시의 모습, 그가 늘 지니고 있던 물건, 가족이나 지인들이 함께 조각돼 있다. 또한 묘지에는 사각판에 새기 부조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장식용 조각들도 많았다. 

(↑여러 묘비 부조들)
(↑묘지를 장식했던 여러 조각들)

여러 묘비 부조들이 있는 방을 지나 20번 전시실에 이르면 2세기경에 제작된 바르바케이온 아테나(Varvakeion Athena) 여신상을 볼 수 있다. 이 조각상은 1880년 아테네 바르바케이온 학교 근처에서 발굴되었는데, 1.05m의 비교적 작은 크기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조각가 피디아스(Phidias)가 BC438에 금과 상아로 제작한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안에 있었던 아테나 여신상인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가 사라진 후 많은 모사품이 생겼는데 이 바르바케이온 아테나는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복제품이라고 한다.

아테나 여신은 페플로스 의상을 입고 있고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있는데 투구 위에는 날개 달린 세 마리의 말이 올려져 있다. 창 위에 얹은 오른손은 손바닥에 항상 아테나를 수행하는 니케 여신이 올려져 있고, 왼손에는 뱀 형상의 괴물인 고르곤이 새겨진 아이기스라는 방패를 들고 있다. 

(↑바르바케이온 아테나)

21번 전시실에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Ἀφροδίτη, Aphrodite) 조각상이 있다. 이것은 BC 4세기에 만들어진 원본을 2세기에 복제한 것으로 '정숙한 아프로디테'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사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는 '정숙함'과는 거리가 멀고 제우스만큼이나 바람기가 많아 수많은 염문을 뿌린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음란한 아프로디테'라는 뜻의 아프로디테 포르네(Aphrodite Porne)라는 공인 별명도 있었다.

아프로디테(Aphrodite)는 로마 신화에서는 비너스로 알려져 있는데 그리스어로 ‘거품’을 뜻하는 ‘아프로스(aphros)’가 어원으로 ‘거품에서 태어난 여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우라노스에 반기를 들고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랐다. 그 생식기가 바다에 떨어져 거품이 만들어졌고, 그 거품이 바다를 떠돌다 사이프러스 섬(Cyprus)에 도착했을 때 그 속에서 아프로디테가 탄생한다. 널리 알려진 그림인 보티첼리의 ‘베누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은 바로 이러한 신화 속 아프로디테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도 사이프러스 섬 남서부의 파포스(Paphos) 지역에는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는 바위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단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아프로디테는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게 신들 중에서 추남으로 알려진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Ἥφαιστος, Hephaistos)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한다. 이로 인해 원만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했고, 아프로디테는 남편 외에 수많은 다른 남성과 은밀한 사랑을 나눈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 제우스와 헤라의 둘째 아들이자 헤파이스토스와 형제지간인 전쟁의 신 아레스(Άρης, Ares)였다. 아레스는 잘생긴 외모를 지녔으나 성질이 난폭해 대부분의 신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아프로디테는 그를 사랑했다. 어느 날 이 두 신의 밀회 장면을 목격한 아폴론은 이 사실을 헤파이스토스에게 알렸고, 헤파이스토스는 그들의 부적절한 만남을 포착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청동 그물을 만들어 놓고 때를 기다렸다. 그물이 쳐진 줄 모르고 밀회를 즐기던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그물에 갇혀 헤파이스토스에게 발각되고 두 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는 모든 신들에게 알려진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 둘은 계속 만남을 이어갔고 에로스(Ἔρως, Eros)를 비롯해 포보스, 데이모스, 하르모니아 등 여러 자식들도 낳는다. 

(↑아프로디테 조각상)

나는 이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보면서 지난 여름(8월)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봤던 카피톨리노의 비너스(Capitoline Venus)를 떠올렸다. 로마에서 본 비너스(아프로디테)는 얼굴이 상하로 좀 길어서인지 남성다운 느낌을 받았는데 이곳의 아프로디테는 평소 내가 보아 왔던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었다. 로마의 비너스상은 그리스의 청동 비너스상을 원본으로 복제된 것이지만 이것과 같이 '푸디카 베누스(정숙한 비너스)'라는 별칭이 있다. 

로마 캄피톨리노 박물관 참조 https://blog.daum.net/audience65/242

 

로마 4일 판테온, 콜로세움, 캄피톨리오 박물관

2021년 8월 17일(화) 콜로세움, 캄피톨리오 박물관(약 1만5천보, 8km) 판테온 내부 관람 >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 대전차 경기장 > 팔라티노 언덕 > 포로 로마노 오늘은 콜로세움을 예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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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디테 여신상 옆에는 (남성 관계에서는) 그녀와는 대조적인 아르테미스(Ἄρτεμις, Artemis) 여신상이 있다. 신화에서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으로 제우스와 티탄족인 레토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델포이 신전의 주인이자 신탁을 내리는 태양의 신 아폴론(Ἀπόλλων, Apollon)과 쌍둥이로 남매지간이다. 한편 아르테미스 여신은 순결의 여신, 수렵과 궁술의 여신이기도 하다. 아르테미스는 남자를 멀리하고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상징 동물인 사슴, 사냥개와 함께 숲속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얼굴 부분이 훼손된 상태이긴 하지만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다른 여신상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우선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긴 드레스 형태의 의복 대신 남녀공용 일상복인 히마티온(himation)이라는 활동성이 좋은 짧은 옷을 입고 있으며 무릎 가까이 올라오는 사냥용 부츠 착용하고 있다. 또한 현재는 떨어져 나가 볼 수 없지만 훼손되기 전에는 팔을 뻗어 사슴의 뿔을 쥐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르테미스 여신상)

21번 전시실에서 본 또 하나의 작품은 앞에서 본 아르테미시온의 제우스(포세이돈)와 같이 청동으로 만든 작품인 말 타는 소년 청동상(또는 아르테미시온의 기수(Artemision Jockey))이다. 이 청동상은 그리스 고전기가 아닌 헬레니즘 시대의 것으로 에우보이아(Euboea) 북부 아르테미시온 해저에서 아르테미시온의 제우스와 함께 발견되었다. 이 청동상은 큰 규모로도 압도하지만 말과 기수인 소년의 율동감 넘치는 모습이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질주하는 모습을 마치 한 순간 정지시켜 놓은 것 같아서 멈춰진 시간이 풀리면 순식간에 앞으로 뛰어나갈 것 같다. 거기에 소년이 경주에 집중하고 있는 얼굴 모습을 통해 소년의 열정적인 표정까지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원래는 아마도 어린 기수의 왼손에는 말의 고삐가, 오른손에는 채찍이 쥐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말 타는 소년 청동상)

23번 전시실에는 여성의 얼굴과 새의 몸체를 가진 신화 속 인물인 세이렌(Σειρήνες, The Sirens) 조각상이 있다. 그리스 고전기 후기인 BC330년경에 제작되었는데 케라메이코스(케라미코스)에서 발견된 것으로 묘지를 장식했던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세이렌은 절벽과 바위로 둘러싸인 섬에 살면서 근처에 배가 다가오면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선원들을 죽게 만들고 배를 난파시키는 님프들로 묘사돼 있다. 그런데 이런 강력한 세이렌의 유혹을 물리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오디세우스(Ὀδυσσεύς, Odysseus)였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10년간 겪은 모험담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Οδύσσεια)'에 잘 나타나 있는데 세이렌의 유혹을 이긴 일화도 있다. 한편 세이렌은 '여성의 유혹' 또는 '속임수'를 상징하는데 현대에 와서는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인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로고 속 인물로도 등장한다.

(↑세이렌 조각상)

28번 전시실로 이동하면 청동 청년상이 보이는데 이 작품은 그리스 고전기의 후기인 BC350년경 제작된 안티키테라(Antikythera)의 청동상(또는 안티키테라의 청년(Bronze statue of a Youth))이다. 높이 1.94m의 이 청년 청동상은 해저에서 여러 개의 조각을 발굴한 후 이 조각들을 다시 조립하여 완성한 것이다. 1900년에 그리스 남부의 안티키테라 섬 근해에서 한 잠수부에 의해 바다 밑 난파선에서 발견되었다. 그리스 정부는 이 청동상이 나온 해저 지역에서 고고학 조사를 시작했는데, BC80년~BC65년 사이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난파선에서 약 300톤의 고대 유물을 발굴해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신화 속 인물일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나 구체적으로 누구냐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아 논쟁 중에 있다. 이 논쟁에는 두 인물이 거론되는데 하나는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라는 주장과 트로이 전쟁을 발발하게 했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Πάρις, Paris)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페르세우스라면 그의 오른손은 메두사의 머리를 왼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파리스라면 불화의 여신 에리스(Ἒρις, Eris)가 올림푸스 산에서 열린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앙심을 품고 던졌다는 황금 사과가 오른손에 들려 있었을 것이다.(에리스의 황금 사과와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 관련한 신화는 위키백과 참조)

근육질의 탄탄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닌 이 청년이 누구이든 벌거벗은 남성의 인체가 전혀 외설적이지 않고 아름답게 묘사된 것은 다시 봐도 감탄할 만하다.

(↑안티키테라의 청동상)

29번과 30번 전시실은 헬레니즘(Ελληνιστικός, Hellenism)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헬레니즘 시대는 BC323년~BC31년 사이의 기간으로 그리스 고전기 이후부터 로마가 그리스의 정복지를 지배하기 이전까지를 말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으로 영토 확장을 하면서 점령지에 적극적으로 그리스의 문화를 전파했고 이 과정에서 현지의 오리엔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이를 헬레니즘 문화(Hellenistic Culture)라 한다.

30번전시실에 있는 아프로디테, 에로스와 판(Aphrodite, Eros and Pan)은 BC100년경 제작된 것으로 델로스 섬의 상인조합 건물을 장식하던 조각상이었다. 판(Pan)은 그리스 신화에서 야생과 목동, 가축의 신으로 상체는 머리에 뿔이 달린 사람, 하체는 염소 모습을 한 반인반수(半人半獸)로 그려져 있다. 성격은 활달하나 화가 나면 난폭하고 늘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好色漢)이기도 하다.

이 군상(群像)의 세 인물들은 대체로 익살스러운 모습이다. 판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게 구애를 하고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슬리퍼를 들어 판을 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그녀의 아들인 에로스는 판을 저지하기 위해서 그의 뿔을 잡고 있다. 이 장면은 판이 아프로디테를 성추행하고 있는 모습인데 성추행을 당하는 아프로디테는 21번 전시실의 '정숙한 아프로디테'와는 달리 분노나 신으로서의 위엄을 드러내는 표정이 아니다. 또한 말리고 있는 에로스도 살짝 미소를 띈 듯하여 세 인물은 마치 이러한 상황을 가볍게 즐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프로디테, 에로스와 판)

31번~33번 전시실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 로마 점령기에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유물들이 전시된 방들이다. 32번 전시실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2세기경 제작된 잠든 미네드(Maenad) 조각상 앞으로 갔다. 1880년 아크로폴리스 서쪽 마크리아니 지역에서 발굴되었는데, 미네드(Maenad, 보통 복수 형태로 Maenads(마이나스)로 쓴다.)는 디오니소스 신을 모시는 여사제로 술에 취에 춤을 추고 남성들을 유혹하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기도 한다. 이 잠든 미네드도 아마 술에 취에 가무를 즐기다가 피곤해 잠시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는 모습일지 모른다.

(↑잠든 미네드 조각상)

미네드 조각상 뒤편으로 아스클레피오스(Ἀσκληπιός, Asklepios) 조각상이 있다. 이 작품은 160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1886년 아스클레오스 신전이 있는 그리스 에피다우루스(Epidaurus)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 조각상은 BC 4세기에 만들어진 원본 조각상을 복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로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전설적인 명의(名醫)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아스클레피온'은 고대 그리스의 종합 병원의 역할을 했던 곳을 말한다. 그는 항상 뱀 지팡이를 갖고 다녔는데 세계보건기구인 WHO의 로고에도 쓰이며 각종 의학 단체의 상징으로도 사용된다.

신화에 의하면 아스클레피오스가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어가는 글라우코스를 치료하던 중 뱀 한 마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놀라 지팡이로 쳐 이 뱀을 죽였는데 잠시 후 다른 뱀 한 마리가 입에 약초를 물고 들어왔다. 그리고 죽은 뱀의 입에 이 약초를 올려놓자 죽은 뱀이 살아나게 되었다. 이를 본 아스클레피오스는 그 약초를 글라우코스에게 먹여 그를 살리게 된다. 이후 아스클레피오스는 고마움과 존경의 뜻으로 지팡이를 감고 오르는 뱀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비록 양 팔이 손상되기는 했지만 조각상의 주인인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의 남성 일상복인 히마티온 의상을 입고 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한쪽 어깨에 걸친 옷이 흘러내린 모습이 섬세하며 자연스럽고 머리와 수염도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아스클레피오스 조각상)

아스클레피오스의 탄생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편 참조 https://blog.daum.net/audience65/258

 

그리스 아테네 2일(2)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신타그마 광장

우리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나와 매표소 근처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갔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Μουσείο Ακρόπολης, Acropolis Museum)은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크로

blog.daum.net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들을 중심으로 1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우리는 2층의 도자기 전시실로 이동했다. 2층의 전시실은 모두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는데 대체로 BC 9세~BC 4세기까지의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1층과 마찬가지로 아르카익 시기, 고전기, 헬레니즘 시대 순으로 둘러볼 수 있다. 도자기의 용도는 포도주를 담거나 올리브유를 담아 사용하던 것들이 많았다. 나는 도자기의 모양이나 종류도 많고 형태와 표현 기법도 여러 가지라 자세히 보기보다는 그냥 한눈에 죽 훑어보는 정도로만 감상하고 나왔다.

긴 시간 동안 돌아다닌 탓에 다리 쉼도 하고 차도 마시기 위해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카페로 갔다. 박물관의 카페는 큰 창을 통해 건물의 중정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있어서 예쁘고 아늑했다.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나서 꽃이 핀 잘 다듬어진 중정을 돌아보면서 사진도 찍었다.

(↑중정이 예쁜 박물관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