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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2016년 2월~4월 스리랑카, 남인도

인도 남부 9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4/6() 고아-(뭄바이)-아우랑가바드(Aurangabad)

06:00 기상

06:30 , , 목 세정

07:30 전신 마사지

08:50 아침(우유에 시리얼, 견과, )

09:20 처방 약(6,350Rs) 받아오기(3개월분)

10:20 Devaaya 체크아웃

10:30 차량 출발

11:20 Goa 공항 도착. 보안, 검색이 여러 번 있음

12:00 공항 라운지

15:30 비행기 이륙

16:30 뭄바이 공항 착륙

17:00 짐 찾기

18:00 뭄바이-아우랑가바드 버스(Red Bus) 761Rs

18:10 중국식 야채볼 튀김350, 로띠35Rs(뭄바이 국내선 식당)

19:00 홍차154Rs(공항 스타벅스)

20:50 버스 탑승 지 도착

21:30 버스 도착, 탑승

   아침에 디바야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타고 1시간 10분쯤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고아 공항에서 pp카드로 입장 가능한 라운지는 일반 식당과 겸하고 있어 복잡하고 다소 어수선하다. 탑승 게이트 앞 항공 스케줄 모니터에 내가 타야 할 비행기에 ‘DLEAYED’라는 붉은 글자가 뜬다. 비행기의 지연으로 뭄바이 공항 라운지에서 여유 있게 쉬고 가겠다는 내 계획은 수정돼야 할 듯하다. 어쩌면 공항에서 짐 찾고 터미널 이동까지 고려하면 빠듯한 시간에 허둥지둥 뛰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도 안 되면 뭄바이-아우랑가바드 구간 티켓을 날리고 공항에서 하루 노숙하게 될지도... 제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으윽~ㅠㅠ

   결국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 발생했다. 고아-뭄바이 행 비행기(Go Air)의 지연(2시간 반) 출발로 10만원 정도의 뭄바이-아우랑가바드 비행기(Jet Airways)를 놓쳤다.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 지연으로 놓친 거니 환불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원래 Jet Airways 고아(13:00)-(뭄바이)-아우랑가바드(17:50)(138,000) 비행편이 있었으나 망설이며 결정을 늦추는 바람에 일정이 꼬였던 것이다.

   나는 Jet Airways 항공사 카운터로 가서 얼마라도 환불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볼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괜히 설명하고 따지다가 흥분만 할 것 같아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안을 찾기로 했다. 아우랑가바드 비행편은 Jet Airways에서만 하루 한 편 운행하니 오늘 다른 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얼른 인터넷으로 밤 버스를 알아본다. 마침 야간 침대버스가 몇 개 보인다. 유니폼을 입은 상냥한 공항 여직원의 도움으로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탑승 위치도 확인했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서 결제가 안 돼 마음을 졸이다가 여러 번 실패한 후에 겨우 티켓을 발권했다. 이제 한숨 돌리고 저녁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전화기 충전도 하고 차도 한 잔 마신다. 지도에서 버스 탑승 위치를 확인해 보니 공항에서 약 650미터,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탑승 시각이 밤 10시니 시간은 넉넉하고 꼬였던 스케줄이 대충 정리되면서 복잡했던 내 머릿속도 한결 맑아졌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일이야 흔하긴 한데 나는 순간 당황스럽고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비행기 지연 순간부터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음에도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불안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버려야 할 것, 포기해야 할 것 앞에서 당당하게 결단하고 미련 없이 돌아설 수는 없을까? 갈등하고 망설이는 사이 나는 또 걱정과 근심을 얻고 귀한 시간과 노력을 헛되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시간과 노력이 예전에 비해 점차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정된 시각보다 40분이나 일찍 버스가 도착했다. 여유 있게 일찍 와 있지 않았다면 버스도 놓칠 뻔했다. 그런데 1시간 후 버스 회사에서 버스 안에 타고 있는 내게 어디 있느냐는 전화가 왔다. 나는 또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하고 타고 있던 버스 차장에게 확인해 봤다. 알고 보니 같은 회사에서 시차를 두고 2대의 버스를 운행한단다. 나는 마침 자리가 있었던 앞차를 탄 것이었다. 차장이 내 전화를 받아 회사 측에 사정을 설명했고 일은 정리됐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나는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로 가긴 가는 모양이다. 오늘 하루 이래저래 혼란스럽다.

 

4/7()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06:50 아우랑가바드 버스 도착

07:00 Panchavati Hotel 도착

08:00 한국식 아침 세트150Rs, 한국인 50대 부부(같은 호텔)

09:00 체크인

09:30 호텔 출발

10:30 판차키(Panchakki) 도착, 입장료20Rs, 모스크 안내 팁20Rs, 20Rs

11:40 비비까마끄바라(Bibi Ka Maqbara) 입장료200Rs

12:40 아우랑가바드 동굴군 입장료 200Rs

13:50 바나나210Rs, 망고1kg100Rs(노점)

14:10 비비까마끄바라-동굴군-판차바띠 호텔 오토250Rs

15:00 샤워, 휴식

19:30 야채죽150, 20, 라임소다40(호텔 식당)

21:00 취침

   버스가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에 들어설 즈음 나는 구글 지도로 내가 예약한 호텔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버스 정류장에 닿기 전, 호텔 가까운 곳에 버스를 세워 걸어서 판차바티 호텔(Panchavati Hotel)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체크인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엉성하지만 김치를 곁들인 한식 아침 세트를 주문했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넉넉한 양에 맛도 괜찮았다. 규모도 작고 위치도 애매한 호텔이지만, 식당은 한국에서 한식을 배워온 주방장이 있어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꽤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혼자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도중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부부가 들어왔다. 한쪽 테이블에 앉은 그들의 말을 언뜻 들어보니 틀림없는 한국인들이다. 나중에 말을 터서 알고 보니 이들은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남편은 두 살 위, 아내 되는 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 마침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다.

(↑판차바티 호텔(Panchavati Hotel)의 한국식 아침 식사)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에 오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의 주 목적은 아잔타(Ajanta), 엘로라(Elora)의 석굴군을 둘러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지역은 아우랑가바드를 중심으로 서로 반대편에 있고 차량을 이용해 간다면 1시간~2시간이 걸린다. 또 석굴군을 둘러보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한 지역에 하루를 다 보내야 한다. 게다가 아우랑가바드에서 가고 오는 교통편도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찌 가야 하나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 부부도 마침 내일 석굴군을 둘러보기 위해 호텔에 있는 작은 여행사에서 차량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먼저 내일 거리가 좀 더 먼 아잔타로 가기로 하고 그들 차량에 나도 합류하기로 했다.

  식당을 나와 체크인을 하고 짐만 대충 방에 옮겨 놓고 아우랑가바드를 둘러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먼저 간 곳은 물레바퀴라는 뜻의 판차키(Panchakki). 판차키는 파이프를 땅에 묻어 약 6Km 떨어진 캄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장치다. 좁은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면 물을 가둬둔 연못이 있고 그 연못 한쪽 끝에 다소 힘없이 작은 물레방아가 지금도 돌고 있다. 거대한 뱅골 보리수 아래 그늘에는 더위를 피해 쉬고 있는 사람들, 짙은 녹색의 탁한 연못에는 물고기 몇 마리가 간간히 보인다. 판차키 안쪽으로는 수피교의 성자로 아우랑제브의 영적 지도자였던 바바 샤 무자파르(Baba Shah Muzaffar)가 묻혀 있다는 사원이 있는데 잠시 돌아보고 나왔다.


(↑판차키로 가는 길, 아우랑가바드 시내)



(↑지금도 물을 끌어오는 기계가 돌고 있는 판차키(Panchakki))

(↑연못에 있는 거대한 뱅골 보리수)


(↑수피교의 지도자가 잠들어 있다는 사원)


   10시가 넘어가자 벌써 햇볕이 강렬해진다. 숨 막히는 이 더위에 나는 오늘도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강행군을 계속하기로 한다. 다음으로 간 비비까마끄바라(Bibi Ka Maqbara)는 언뜻 보아도 타즈마할(Taj Mahal)을 연상시키는 건물이다. 전체적인 구조도 비슷하고 입구에 있는 대리석 의자까지 타즈마할과 같이 배치한 생각이 든다. ‘가난한 자의 타즈마할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1679년 무굴 제국의 황제인 아우랑제브의 아내 라비아우드라우라니(Rabia-ud-Daurani)의 영묘(靈廟)로 지어진 것이란다. 대부분의 조각이 단순하고 소박한 데 비해, 중앙 건물 내부의 사면 벽의 대리석을 투각한 대형 창은 아주 정교하고 규칙적이다. 내부는 일부 훼손된 것도 있는 데 반해 외부의 벽면 조각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가난한 자의 타즈마할, 비비까마끄바라(Bibi Ka Maqbara))

(↑내외부의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들)

(↑건물에 올라 조망한 풍경)


   오전에 너무 먼 거리를 걸어 지치기도 했고 이미 중천에 뜬 해가 강렬해 더 이상은 걸을 수도 없다. 더욱이 동굴군이 있는 곳까지는 약 2km로 걸어갈 수도 없는 거리다. 어쩔 수 없이 오토를 섭외해 동굴군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실 아우랑가바드의 동굴군을 아잔타와 엘로라를 보기 전에 둘러보기로 한 것은 아주 잘 한 일이다. 그러나 비록 이 둘에 비해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아우랑가바드의 동굴군은 <론리플레닛>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잔타와 엘로라가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음직하다. 산 중턱쯤에 있는 동굴군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먼저 1~5번 중에는 가운데 3번이 가장 화려하고 규모가 크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1번~5번 동굴군 오르는 길)

(↑1번~5번 동굴군)


  1km 떨어진 6~10번 동굴군 중에는 6번과 7번이 중요한데, 특히 7번 동굴의 조각들 중 여인상은 입체감도 뛰어나고 옷을 걸치지 않고 보석으로 장식해 섹시미를 강조한 듯 보인다. 이것은 당시 유행했던 밀교 성격을 띠었던 탄트라(Tantra) 불교의 특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한다. 아우랑가바드의 동굴군은 대체로 훼손이 많이 됐지만 돌을 정과 망치로만 깎아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석굴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6번~10번 동굴군 입구)

(↑6번~10번 동굴군)


   오후에 호텔로 돌아와 샤워로 땀을 씻고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에 1층 식당으로 갔다가 30대 한국인 여행자 은정씨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다른 숙소에 묵고 있는데 저녁을 먹으러 왔다고 했다. 잠시 후 아침에 만났던 정신, 학수씨 부부도 식사하러 내려왔다. 그렇게 네 명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레 내일, 모레 아잔타, 엘로라에 함께 가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여행 막바지에 처음으로 잠시 동안이나마 동행자들과 함께 하게 됐다.


4/8() 아우랑가바드(아잔타 Ajanta)

06:00 기상

07:10 한국식 아침 세트, 점심 도시락 310Rs

08:25 차량 출발

10:30 아잔타 동굴군 4Km 전방 주차장 도착, 입장료10Rs

10:50 주차장-아잔타 동굴군 입구 전용버스 15Rs

11:00 아잔타 입장료 500Rs

13:00 점심 도시락

14:00 관람 완료. 26개 동굴(27번은 입장 금지) 라씨, 100Rs(입구 식당 ), 버스20Rs

15:00 자동차 출발, 차량 대여비 550Rs(2,200Rs/4)

17:20 Panchavati Hotel 도착, 한은정씨랑 같은 방 씀.

19:20 저녁 식사(김학수씨 부부, 한은정씨와 함께) 1,190Rs

22:30 취침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발하기로 했는데 아잔타 동굴이 많기도 하거니와 점심을 먹을 만한 곳도 없어서 미리 전날 호텔 식당에 말해 두어 점심을 준비해 갔다. 차는 825분쯤 호텔을 출발했고, 아잔타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1030분 무렵으로 거의 정확히 2시간이 걸렸다. 많은 기념품점들이 줄지어 서 있는 주차장은 아잔타 동굴군 입구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여기서 동굴군까지 전용 버스로만 이동할 수 있다.

(↑주차장과 매표소를 오가는 전용 차량 타는 곳)


   버스에서 내려 입장료를 지불하고 동굴들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길을 따라가면 된다. 평지와 돌계단을 오르내리면 드디어 첫 번째 석굴을 만나게 된다. 모두 29개의 석굴들이 있는 아잔타 동굴군은 총 26개의 석굴을 개방해 놓고 있다. 이 석굴들은 사원(석굴사당(石窟祠堂), 차이티야)으로 만들어진 것이 5(9, 10, 19, 26, 29번 석굴), 나머지 24개는 수도원(승방(僧房)(비하라)으로 수도사와 장인 200여 명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는 말발굽 모양으로 석굴들이 배치돼 있어 길을 따라 차례대로 하나씩 감상하면 된다. 석굴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각각 다른데 가장 초기의 것은 BC200년경이고 이후 AD650년까지 제작됐다고 한다. 대체로 초기의 석굴들은 구조도 단순하고 장식도 많지 않으나 6세기 이후 제작된 석굴들은 화려한 벽화나 조각이 많다. 엘로라의 동굴군과 비교하면 시기적으로는 앞서고, 엘로라 동굴군이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 여러 종교를 드러내는 데 비해 이곳은 불교로 통일돼 있다. 또한 엘로라의 석굴들 중 특히 힌두교 석굴들은 화려함의 극치를 넘어 현란하기까지 한데, 아잔타의 것들은 그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품위가 느껴진다. 석굴들이 있는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 작은 강을 건너 중앙 언덕에 오르면 동굴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View Point)도 있다.

(↑거대한 규모의 아잔타(Ajanta) 동굴군)

(↑저 언덕 정상에 있는 전망대)


   제일 처음 만나는 1번 석굴은 아름다운 벽화를 볼 수 있는데 내용은 본생경(本生經, 자타카(Jataka))으로 부처의 여러 생에 관한 설화와 몇몇 초상화도 있다. 4번 석굴은 28개의 석주가 받치고 있는 가장 넓은 곳으로 여러 조각들을 볼 수 있다. 6번 석굴은 2층 구조로 된 유일한 것이다. 또한 BC20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10번 석굴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번 석굴은 전체 동굴군의 출입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고, 17번 석굴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다양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을 볼 수 있다. 19번 석굴은 외관이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내부에 3층 다고바(불탑)가 있다. 24번 석굴은 미완성으로 남았는데 가장 큰 규모로 설계된 것으로 보이며 건축학적으로도 연구 대상이 될 만한 것이라고 한다. 26번 석굴은 사원(사당), 27번 석굴은 수도원인데 이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

(↑석굴 내외부에 있는 벽화, 조각, 불탑들)


   동굴군을 관람하는 데 약 3시간이 소용됐다. 처음 앞부분의 석굴들은 대체로 천천히, 상세히 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저한 체력과 집중력 저하로 뒤의 석굴들은 대충 훑어보게 되었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와 섬세하고 화려한 내외부 장식을 보면서 매 순간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어머어마한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던 힘은 당시의 강력한 왕권과 종교에 대한 인간의 맹목적이고 순수한 믿음, 예술 창작에 대한 인간 본성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이 놀라운 문화유산을 눈앞에서 목도할 수 있는 것이겠지? 과연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 존재들인가, 오늘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오후에 아우랑가바드 호텔로 돌아와 함께 갔던 은정씨와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그녀가 묵고 있던 다른 숙소가 썩 마음에 차지도 않을뿐더러 어제까지만 묵고 숙소를 옮길 예정이었단다. 그래서 침대 하나가 남는 내 방을 같이 쓰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마침 내일도 우리와 함께 동행을 해야 하므로 호텔에 도착해 그녀는 짐을 내 방으로 옮겨왔다. 프론트에 내 방에 한 사람이 더 들어오니 추가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원래 2인실이므로 따로 돈을 더 내지 않아도 된단다. 저녁에는 학수씨네 부부와 네 명이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4/9() 아우랑가바드(엘로라 Elora)

06:30 기상

07:30 여행자식 아침 150Rs

08:30 차량 출발

09:10 엘로라 도착

09:20 엘로라 입장료 500Rs

13:30 관람 종료

13:40 점심식사(학수씨 내외 삼)

14:40 아우랑제브, 아들 무덤(작은 이슬람 사원 내에 있음)

15:00 돌라바타드(Daulabatad Fort) 오르는 데 50분 소요

16:45 관람 종료, 차량 출발 물 2 40Rs

17:20 호텔 귀환, 차량 대여비 400Rs(1,200Rs) 샤워, 휴식

Panchavati Hotel 22,000Rs(원래 1박당 1,250Rs), 뭄바이 호텔 예약 23,344Rs(아고다)

19:30 저녁 식사 210Rs

22:20 아우랑가바드 기차역 오토50Rs

23:30 기차 도착, 탑승

  아침을 먹고 나서 바로 엘로라(Elora) 동굴군으로 간다. 숙소가 있는 아우랑가바드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의 엘로라에는 모두 34개의 석굴이 있는데 종교별로 불교 12, 힌두교 17, 자이나교 5개로 구분된다. 조성된 시기는 불교 석굴이 AD600~800년대, 힌두교 석굴이 AD600~900년대, 자이나교는 조금 늦은 AD800~1,000년대로 알려져 있다. 석굴들의 위치는 남쪽 끝 1~12번 석굴들이 불교, 가운데 13~29번 석굴들은 힌두교, 나머지 30~34번 석굴들은 자이나교 석굴들도 나뉘어져 있다.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약 2km에 걸쳐 거의 일렬로 늘어서 있어 차례대로 보면 각 종교의 건축 특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석굴군들의 조성 시기를 보면 대체로 겹치는 시기가 있는데, 이렇게 다른 종교 건축물을 한 곳에 나란히 지었다는 것은 당시 사회가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 종교에 대해서도 서로 존중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서로 경쟁하여 자신들 종교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소 과도한 장식을 한다든지 규모를 키우려는 의도도 보인다. 특히 힌두교의 석굴들은 규모도 크지만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이방인들은 알 수 없는 수많은 종교적 설화들을 벽면, 기둥, 바닥 등 석굴 구석구석을 여백 없이 조각으로 장식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들려주는 듯했다. 아잔타의 석굴군이 산 속에서 깊은 명상에 잠긴 수도승 같다면 엘로라의 석굴군은 다채롭고 화려한 색을 서로에게 뿌려 주며 봄을 맞이하는 홀리(Holi) 축제의 시끌벅적함이 느껴진다.

(↑엘로라 석굴군 입구)


   1~12번의 불교 석굴들 중 10번은 차이티야(Chaitya), 나머지는 모두 비하라(Vihara)로 지어졌다. 대체로 앞쪽의 석굴들은 단순하게 조성되었으나 그에 비해 후대에 지어진 11, 12번 석굴은 3층 구조로 지어 당시 웅장하고 화려했던 힌두 석굴과 경쟁했던 것이라 한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것은 6번 석굴이고, 가장 큰 규모는 5번 석굴로 가로 18m, 세로 36m로 당시 집회 장소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12개의 불교 석굴 중 유일한 사원(차이티야(Chaitya))이자 건축적으로 주목 받는 석굴은 10번으로 비스바카르마(Visvakarma, 목수의 석굴)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석굴 천장의 서까래를 목재 대들보를 모방해 조각했기 때문이란다. 11, 12번 석굴은 각각 3층으로 지어진 석굴로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탄드라(Tandra) 양식의 많은 조각상들이 남아 있다.

(↑엘로라의 불교 석굴들)


  열 두 개의 불교 석굴들을 지나 힌두교 석굴들을 둘러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간 3일 연속으로 봤던 수많은 석굴들이 머릿속에서 혼란스럽게 섞이는 느낌이 들었다. 건축 양식, 장식의 의미나 내용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장엄하고 화려한 크고 작은 석굴들은 그저 오래 전 사람들이 남긴 정성스런 작품이자 그들 종교의 신에게 바치는 경의의 표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힌두교 석굴로 들어서면서 오래 전 이 석굴들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생각이 다시 궁금해졌다. 돌조각을 두드리고 쪼는 행위를 무한 반복하면서 그들은 머릿속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로 이 석굴들을 완성했을까? 어쩌면 그들은 무념무상, 무아의 지경에서 누군가 보이지 않는 이의 조종으로 단순 행위만을 반복한 것은 아닐까? 처음 이 거대한 돌산을 깎아 사원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그들은 그 거대한 프로젝트가 과연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 정말 믿었던 것인가? 나는 허황되고 황당한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한 채 계속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엘로라 석굴군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많은 장식으로 정교하게 치장한 석굴들은 가운데에 자리한 힌두교 석굴들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은 16번으로 카일라샤(Kailasha) 사원이다. 티켓을 끊고 들어오는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거대한 사원이 바로 카일라샤(Kailasha)인데 시바(Shiva) 신에게 바쳐진 이 사원은 하나의 거대한 바위를 깎고 다듬어 만든 석굴로 약 7천 명의 장인들이 150여 년에 걸쳐 이루어낸 역작이라고 한다. 규모로는 단일 암석으로 된 세계에서 가장 큰 석굴로 면적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높이는 1.5배에 달한다. 카일라샤 석굴의 핵심은 거의 빈틈없이 빽빽하게 조각된 벽면의 수많은 부조들이다. 이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벽면의 조각들은 힌두교의 유명한 이야기들인데 하나하나 그 정교함에 그저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만약 엘로라에서 단 하나의 석굴만을 봐야 한다면 카일라사 석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관람이 될 것이다. 16번 석굴 외에 주목할 만한 힌두교 석굴로는 15번 석굴인데 2층 구조로 된 이 석굴 역시 힌두교의 시바(Shiva), 비쉬누(Vishnu), 브라만(Brahma) 등 여러 신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화려하게 조각했다. 14번 석굴은 원래 불교 사원으로 지어졌다가 7 세기에 시바(Shiva) 신을 모시는 힌두 사원이 되었다고 한다.

(↑엘로라의 힌두교 석굴들)

(↑카일라샤(Kailasha) 사원)


   29번 석굴에서 1km 떨어진 북쪽 끝에 모여 있는 다섯 개의 자이나교 석굴들을 보기 위해서는 햇볕이 따갑지 않다면 천천히 걸을 수도 있으나 입구 근처에서 출발하는 순환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자이나교(Jaininsm)는 부처와 동시대에 살았던 마하비라(Mahavira)에 의해 종교로서의 체계를 갖추었다고 한다. 불교에서와는 달리 자이나교에서는 극단적인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불살생(不殺生, 아힘사(ahimsa))의 계율과 무소유의 가르침으로 수행자들은 옷도 입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자이나교 사원에는 나신상(裸身像)이 모셔져 있다. 30번 석굴은 초타 카일라사(Chota Kailasa, 작은 카일라사)로 불리는데 카일라사 석굴을 모방한 것이고, 32번 석굴에는 몇 명의 위대한 교사로 칭해지는 지도자들의 상들과 창시자 마하비라의 가부좌상도 있다.

(↑엘로라의 자이나교 석굴들)


   나는 아우랑가바드, 아잔타, 엘로라의 석굴들을 보면서 거대한 암석을 일일이 손으로 깨고 쪼고 두드려서 파 내 공간을 만들고 층을 나누고 장식을 하고 탑과 조각상을 만드는 지난한 작업을 상상해 봤다. 도대체 이것을 종교의 성스러움, 인간의 예술혼, 집념, 끈기와 인내, 아니면 탐욕과 오기 이런 것들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장인들로 하여금 이 끝없이 반복되고 지루한 작업을 해 내도록 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나는 그저 입을 다물 수 없는 이 놀라운 광경 앞에서 나의 보잘 것 없음을 다시 깨닫고 오래 전 그 장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참고로 세 개의 석굴군을 모두 둘러볼 계획이라면 반드시 아우랑가바드, 아잔타, 엘로라 순서로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엘로라에서 동행들과 점심을 함께 먹은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우랑가바드를 수도로 삼은 무굴의 마지막 왕 아우랑제브(Aurangzeb)와 그 아들,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는 쿨다바드(Khuldabad)에 잠시 들렀다. 거룩한 거처(Heavenly Adobe)라는 뜻을 지닌 왕의 무덤 쿨다바드는 생각보다 훨씬 소박했다.

(↑아우랑제브(Aurangzeb)의 무덤이 있는 쿨다바드(Khuldabad))


  다시 차를 달려 넓은 평지에 솟아 있는 200m 높이 언덕 위에 있는 돌라타바드(Daulatabad) 요새로 갔다. ‘행운의 도시라는 뜻의 돌라타바드는 원래 데바기리(Devagiri, 신들의 언덕)라 불렸는데, 술탄 모하메드 투글라크(Sultan Mohammed Tughlaq)1327년 델리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이 허허 벌판에 느닷없이 수도를 건설하고 요새를 짓겠다고 한 그는 17년만에 이 요새만을 남겨두고 돌아갔다고 한다. 요새는 5k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200m 높이의 요새 꼭대기까지는 걸어서 약 50분이 걸린다. 입구에서 오르다 보면 적을 방어하기 위해 비치한 대포도 있고, 60m 높이의 찬드 미나르(Chand minar, 달의 탑)도 눈에 띈다. 미나렛(minaret)은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기 위해 만든 첨탑으로 감시탑의 기능도 있다고 한다. 수도 델리(Dehli)의 꾸뜹(쿠트브) 미나르(Qutb Minar)는 대표적인 미나렛으로 73m 높이의 5층 석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를 흉내낸 것 같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 수많은 계단과 미로처럼 좁고 어두운 길을 따라 오르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따가운 햇볕에 살갗을 그을리고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긴 여정이다. 하지만 폐허가 된 유적지의 정상에 올라 작은 마을이 있는 넓은 벌판을 한눈에 바라보면 오르는 길의 모든 수고를 한 순간에 날려 버릴 수 있다. 정상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땀을 식히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그렇듯 한결 가볍고 경쾌했다.

(↑돌라타바드(Daulatabad))


   저녁 무렵 숙소로 돌아와 며칠 간 함께 했던 학수씨 부부, 은정씨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했다. 저녁은 학수씨네 부부가 굳이 사겠다고 한다. 이들과 동행할 수 있어서 교통편 걱정 없이 아잔타, 엘로라 석굴을 편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짧지만 좋은 시간을 함께 한 이들과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내 마지막 여행지인 뭄바행 밤 기차를 타기 위해 아우랑가바드 기차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