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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2013. 12~ 2014.01 볼리비아, 페루

볼리비아 코파카바나(티티카카 호수)

2013년 12월 30일(월) 흐림->맑음, 라파즈->코파카바나(Copacabana)
06:40 기상
07:25 차량 도착
08:00 라파즈 터미널 도착
08:25 출발
09:30 휴게소 커피 5B 아침(빵, 바나나, 커피)
11:00 호수 도착 배삯 2B
11:30 호수 건너편에서 다시 차로 이동
12:20 투어회사 앞 버스 도착
12:30 Mirador Hotel 체크인(403호)

 

  7시 10분에 맞춰 부랴부랴 호스텔 로비로 갔다. 물론 23kg 짜리 내 캐리어는 직원에게 도움을 청해 겨우 옮겼다. 예상 대로 차는 15분쯤 늦게 도착했다. 큰 투어회사 버스였는데 이미 앞 자리에 5명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여러 호스텔을 돌아 제대로 출발하려면 8시는 훨씬 넘어야 할 것 같다. 드디어 차장이 표를 회수한다. 좌석이 다 차지 않았어도 이제 출발인가 싶었는데, 왠걸 버스는 터미널에 선다. 결국 터미널에서 만석을 채우고서야 본격적인 출발을 한 것이다.
  터미널에서 탄 옆 좌석의 아르헨티나 아가씨에게 표값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30B이란다. 거디다 터미널 이용료 2B를 따로 내야 하니 결국 터미널에서 타면 32B이면 된다. 내가 호텔 픽업 포함 50B에 샀으니 크게 손해인 것 같아 계산해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아침에 터미널까지는 짐 때문에 무조건 택시를 타야 하는데 택시비는 약 10~15B은 될 것이고 거기다 터미널 이용료 2B까지 지불하면 금액적으로 크게 과하다 할 것도 없다. 더구나 일찍 좌석을 잡아 앞자리에 앉아 가니 그것도 편리한 일이다. 
  차 안 통로 옆 자리에는 스페인어를 잘 하는 독일인 부부가, 내 앞 자리에는 여러 나라 인삿말을 건내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아저씨가 탔다. 차 안을 오가는 사람마다 말을 붙이는 다소 수다스럽게 느껴지는 이 아저씨 덕분에 시간이 지루하진 않았다. 한 시간 남짓 달려 차가 선 곳은 어느 휴게소 앞. 많은 차량들이 들고나고 있다. 덕분에 매점과 화장실은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 만원이다. 나는 매점에서 커피 한 잔을 사 바나나 하나와 어제 사 둔 치즈가 들어간 빵과 함께 아침을 해결한다.
  차는 드넓은 평원을 지나 드디어 호수가 보이는 길로 들어선다. 호수 앞에 버스가 서길래 여기가 코카카바나인 줄 알았는데 차장이 호수를 건너는 배를 따로 타야 한다며 2B씩 준비하고 외국인인 경우 여권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단다. 여기서는 모터가 달린 작은 배에는 사람만 싣고, 바지선 같은 조금 큰 배에는 차량만 싣고 호수를 건넌다. 호수 건너편으로 버스가 도착하자 다시 차를 타고 산길을 오른다. 약 40~50분쯤 산길을 타고 오는 동안 호수는 차창 밖으로 제 모습을 보였다가 감췄다가를 반복한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호수 티티카카가 바로 저기다.
   드디어 차가 도착한 곳은 선착장 가까운 여행사들이 늘어선 길이었다. 사람들은 여기서 페루의 티티카카가 있는 푸노나 바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한 전초지인 쿠스코까지 차를 갈아타고 떠나거나 나처럼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로 나뉜다. 나는 수다스럽지만 정겹게 느껴졌던 아저씨와 눈인사를 나누고 10분 거리의 미라도르 호텔(Mirador Hotel)로 갔다. 여기는 그제 달의 계곡 투어에서 만난 일명 '살사 아저씨' 부부가 묵었다는 곳이기도 하고 세계 일주를 하는 어느 블로거가 프로모션 기간인 작년 3월에 와 싸게(50B) 묵으며 추천한 숙소이기도 하다. 프론트의 젊은 청년에게 얼마냐고 물으니 트윈 베드 방이 100B이란다. 실랑이 끝에 1박 70B에 협상을 하고 방으로 갔다. 창을 열면 바로 호수가 보이고 화장실이 딸린 깔끔한 방이었다. 라파즈 Wild Rover Hostel 4인 도미토리(1박 69B)의 우중충한 방보다는 10배쯤 좋았다. 우리 돈 11,000원 정도에 이러 방을 얻을 수 있다니 참 고마운 일이다. 짐을 풀고 해가 질 무렵까지는 방에서 쉬면서 미뤄둔 여행기를 써야겠다. 

(↑선착장 전경)

 

  오후 5시쯤 선착장 있는 곳으로 나가 봤다. 흥겨운 리듬이 들리는 쪽으로 발을 옯기니 여행자들인 듯한 서양인 몇 명이 타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춘다. 앞에 모자를 뒤집어 놓아 10B이라도 주고 싶었으나 마침 10B짜리 지폐가 하나도 없다. 사진 한 장을 찍고 선착장을 뒤로 하고 가게들이 죽 늘어선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 입구 두 군데 여행사만 가격을 묻고 내일 태양의 섬(Isol de sol) 투어 30B, 1월 2일 저녁 6시 30분 출발 쿠스코 직행 soft cama(우리나라 우등 좌석 비슷함)를 160B에 그냥 예약해 버렸다. 이미 쿠스코에서 마추픽추 올라가는 일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여정은 망설일 필요가 없었고, 가격은 좀더 다니며 알아볼 수 있으나 흥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바로 결정해 버렸다. 

(↑투어를 예약한 여행사와 길거리 공연 중인 여행자들)


   일정을 확정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여유로워졌다. 오르막길을 따라 가게들이 늘어선 길을 두 블럭쯤 지나니 교회가 있는 작은 광장이 나온다. 길을 익힐 겸 왔던 길에서 왼쪽으로 한 블럭을 돌아가며 노점들을 구경하는데 나를 아는 체하는 사람과 마주쳤다. 아까 차 안에서 다소 수다스러웠던 아저씨였다. 허름한 건물에서 나오면서 안에 들어가면 도너츠와 빵, 커피와 맛있는 음료를 싸게 먹을 수 있다며 어서 가 보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다 아저씨를 불러 세웠다. 국적이 어딘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단다. 스페인어, 영어는 물론 독일어, 포르투칼어 등 대여섯 개 국어를 하신단다. 요즘은 불어를 공부 중이란 말도 덧붙이신다. 유쾌한 아저씨와 헤어져 시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밀가루 반죽을 고리 모양으로 튀겨 차와 함께 소스에 찍어 먹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내일은 한번 꼭 먹어봐야겠다. 

(↑마을 시장 전경)


   돌아오는 길에 내일 태양의 섬에 들어가 먹을거리로 빵 2개, 바나나 튀김을 샀다. 그리고 오늘 저녁 고추참치와 깻잎과 먹을 밥 한봉지를 사고 다시 거리를 지나다 달걀 프라이를 하나 사 밥 위에 얹어 왔다. 비록 통조림이긴 하지만 푸짐하고 넉넉한 저녁 식사를 했다. 반찬은 반씩 남겨 비닐에 잘 싸 두고 내일 다시 먹기로 했다. 
  오늘 티티카카 호수가 있는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3박을 할 예정이니 조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긴 하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계획한 볼리비아의 여정이다. 3일 후엔 드디어 페루를 향해 국경을 넘을 것이다.

 

2013년 12월 31일(화) 흐림, 비 코파카바나(태양의 섬(Isla del Sol) 왕복)
07:00 기상
07:50 아침(빵, 커피, 3가지 과일)
08:45 선착장 출발, 물 3B
10:10 첫 정차(신상, 계단 있는 곳)
11:00 두번째 정차, 하선
11:30 마을 박물관 입구 갔다 돌아옴.
12:00 점심(바나나 튀김, 빵, 코카차), 코카차 5B
13:30 트랙킹 포기, 다시 배를 타고 신상 있는 곳으로 가기로 함.
13:55 배 출발
14:40 신상 있는 곳 정차, 하선 입장료 5B, 계단 올라 전경 보기
15:40 화장실 2B
16:00 막배 출발
16:10 한 곳에 정차 계단 위 신전 비슷한 곳까지 다녀오는 동안(약 20분) 정차
17:40 코파카바나 선착장 도착, 달걀 후라이 2개 4B, 물2리터 6B
18:40 근처 호텔 식당 홍차 7B
19:30 저녁(밥, 달걀후라이, 참치, 깻잎)
10:00 취침

 

   빵과 커피, 과일로 넉넉히 아침을 챙겨 먹고 티켓을 산 투어 대리점에 갔다. 배 출발 시간이 다 돼 가는데 주인이 뵈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여행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근처에서 현지인인 듯한 사람에게 표를 보이니 길게 늘어선 줄 앞으로 가란다. 긴 줄에 선 사람들은 짐이 많은 걸로 보아 1박 2일로 가는 배고, 내가 탄 배는 당일 투어로 가는 사람들이 타는 것이다. 여행객들은 배위 지붕에 마련된 좌석에 타기를 좋아했으나 나는 아침부터 흐리고 쌀쌀한 날씨 때문에 배 안쪽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든든히 챙겨 먹은 아침) 


(↑아침 시간 부산한 선착장)

 

   내가 내릴 섬 남쪽 두번째 선착장까지는 2시간이 넘는 거리라 배 안에서는 아이 몇 명과 일부 어른들이 배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1시간 반쯤 가자 배는 두 개의 신상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계단이 있는 Escalinatas de Yumani라는 이름의 첫번째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몇 명이 내리고 배는 다시 출발해 40여분을 더 달린 끝에 마을 박물관(Museo de Oro)이 있다는 Challampa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자 가이드인 듯한 사람이 섬 주변 지도가 있는 표지판 앞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마을 입구에서 20B 짜리 박물관 입장표를 사서 둘러본 뒤 2시간 반 정도 트랙킹을 해 신상이 있는 첫번째 선착장 쪽으로 넘어간다는 얘기를 했다.(물론 옆에 있던 미국인인 듯한 사람에게 통역을 부탁해 들은 내용이지만) 지도를 보니 박물관이 있다는 곳과 트래킹할 코스가 반대편이어서 나는 그저 사람들과 함께 백사장이 있는 곳을 지나 박물관이 있다는 마을 입구까지만 갔다가 다시 내려와 사람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백사장 끝에 돌바닥으로 이어진 오르막이 있고 출입구 앞에 현지인 여자가 앉아 티켓을 받거나 돈을 받았다. 나는 입구에서 사진만 두어 장 찍고 다시 선창장 근처로 내려오기로 했다. 제법 길게 늘어선 모래사장에는 여기저기 텐트가 쳐져 있고 주로 젊은 여행객들이 눈에 띄였다. 젊어서인가,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그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 그런지 마을에는 숙소도 여럿 있고 큰길가에는 햄버거나 음료, 과자를 파는 가게도 몇몇 늘어서 있다. 나는 사람들이 내려오기를 느긋하게 기다리며 따뜻한 코카잎차 한 잔과 어제 미리 산 바나나 튀김, 빵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12시 반이 넘도록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2시간 반 트래킹을 하고 반대쪽으로 넘어가 4시 막배를 타려면 적어도 오후 1시에는 출발을 해야 되는데 마을 박물관쪽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1시가 다 되어 마음이 급해진 나는 길을 물어 혼자 산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산길을 올라 30여분을 따라갔더니 이런, 아까 그 마을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그곳에서 다른 여행객에게 물으니 내가 출발했던 곳에서 마을이 있는 안쪽으로 더 들어가 산을 올라야 한단다. 그래서 지도를 다시 살펴보니 마을 박물관 있는 쪽에서도 조금 둘러가지만 산으로 넘어가는 길이 연결돼 있고 그들이 가르쳐준 길은 호수를 바라보며 가는 길로 조금 더 짧았다. 어쨌든 이 두 길은 산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게 되어 첫번째 선착장으로 내려올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제 시간상으로나 내 체력적으로 산을 넘어가는 것은 무리인 듯해 결국 트래킹을 포기하고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태양의 섬 전도) 

(↑두번째 선착장이 있는 마을 전경)


   배는 2시가 다 되어서야 사람들을 꽉 채우고 출발했다. 신상이 있는 선착장에 내리니 입구에서 마을 입장료 5B씩을 받는다. 앞서 내린 곳에서 산을 타면 대체로 완만한 경사로 오를 수 있고 정상은 거의 평평해서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터라 나는 이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 오르기를 그렇게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는 결국 이 계단을 오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얻은 오늘의 교훈, 길을 모르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가라! 그러나 다른 한편 급경사인 와이나픽추를 오를 예정인 내게 이건 또 사전 훈련(?)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막상 힘겹게 끝없는 계단을 오르니 길가에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만 늘어서 있고 더 오를수록 멀리 광활한 호수 풍경은 보이나 특별한 것이 없는 마을뿐이었다. 이곳 마을은 주로 양, 알파카, 라마, 당나귀 등을 기르고 경사가 완만한 곳은 밭을 일구어 놓었다. 결국 성당이 있는 곳을 지나 길이 거의 끝나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보니 10살 남짓한 소년이 알파카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려면 2B을 내란다. 이곳(대부분 볼리비아가 그렇지만) 사람들은 사진 찍히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풍경 사진 찍는 척하며 몇 장을 찍었다가 혼이 좀 났다. 그런데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돈을 요구했다. 이곳 티티카카 호수도 관광객이 붐비면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너무 상업화에 물든 것 같아 조금은 씁쓸했다. 마을 곳곳에 여행자 숙소와 심지어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도 있었다. 이미 그들의 삶에는 인간적이고 전통적인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듯했다. 

 

(↑첫번째 선착장이 있는 마을 전경)

 

  코파카바나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4시 마지막 배를 탔다. 아무 배나 타고 표를 보여 주니 옆 배로 가란다. 각자 자기네 회사 배가 따로 있었던 거다. 출발한 지 10분쯤 지나 배가 작은 선착장에 선다. 날이 종일 춥고 부슬부슬 비가 내려 나는 굳이 내리지는 않았으나 지도를 보니 계단을 오르면 Templo del Sol "Picocaina"라는 신전이 있는 곳이다. 올라갔다 온 사람 말을 언뜻 들으니 소박하고 작은 사원이 있단다, 
  코파카바나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40분쯤. 나는 어제 갔던 노점으로 가 밥에 얹어 먹을 달걀 후라이 2개와 근처 매점에서 물을 사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햇반을 데워 어제 남겨둔 참치, 깻잎과 저녁을 먹을 생각에 흐믓했다. 햇반을 들고 프론트로 가 먼저 전자랜지가 있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즉석밥을 내밀며 물과 '끓이다'라는 단어를 쓰며 부탁했더니 부엌은 아침만 사용한다며 한 마디로 냉정하게 거절한다. 자기들도 늘상 차를 마시니 물 끓이는 일은 그리 어려운 부탁이 아닐 텐데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냉정하게 거절하는 모습에 순간 마음이 상한다. 더욱이 오늘 아침 방 열쇠를 맡겼을 때 나이가 꽤 든 주인인 듯한 노인이 계산기로 150을 찍어 보이며 숙박비를 내라는 듯한 말을 한다. 내가 3박을 할 예정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오늘 1박에 150B을 내라는 얘기를 하는 듯했다. 결국 다른 손님이 있어 모르는 척하며 열쇠를 맡기고 나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성수기라 손님이 많아 그런가 프론트에 있는 사람들이 웃는 낯으로 친절하게 대하는 법이 없다.
   나는 밥을 들고 비가 내리는 밖으로 나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근처 호텔로 들어가 홍차 한 잔을 주문하고 즉석밥을 내밀며 끓여 달라고 부탁했다. 10분쯤 끓여 달라고 해 가져왔는데 만져 보니 영 따뜻하지가 않다. 다시 5분쯤 더 끓여 달라고 해 가져왔으나 역시 뜨겁지가 않다. 다시 한번 부탁하기가 미안해 1/3도 마시지 않은 홍차값으로 7B을 지급하고 나왔다. 방에 돌아와 열어보니 거의 생밥이었다. 하는 수 없이 즐겁지 않은 12월 31일 저녁 식사를 혼자 쓸쓸히 할 수밖에 없었다.
  코파카바나 티티카카의 환상은 이렇게 실망스럽게 깨지고 말 것인가? 새해인 내일과 모레 저녁 차를 탈 때까지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을 꼭 만날 수 있기를...

 

2014년 1월 1일(수) 대체로 맑음, 코파카바나(Copacabana)
05:30 일출을 보기 위해 눈을 떴으나 실패
08:00 기상
08:30 아침(빵, 커피, 과일)
12:50 샤워
16:00 숙소 출발, 마을 구경
16:40 2월2일 광장(Plaza 2 de Febrero) 앞 대성당, 페루 세 수녀님 만남
17:10 저녁(피자, 콜라), 수녀님들께 기부 50$
17:45 수녀님들 배웅
17:55 시장 안 뻥튀기 5B
18:20 호숫가 산책, 낙조 기다렸으나 실패
18:40 호스텔 귀환

   사실 1월 1일 첫날 아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전날 밤 우울한 저녁에 대한 여파도 있고 새벽 일출을 끝내 볼 수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거기다 어제부터 그랬지만 오전 내내 더운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샤워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침을 든든히 먹고 방으로 돌아와 오전 내내 더운 물을 몇번이나 확인하면서 밀린 여행기를 정리했다. 결국 오후 한 시가 다 되어 찬물에 가까운 미지근한 물에라도 샤워를 하기로 했다. 추위를 유난히 타는 나는 더운 물 아니면 샤워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사흘만에 샤워를 하고 나니 개운해졌다. 속옷과 양말도 빨아 널었다.
   오늘, 내일 별 일정이 없는 나는 그저 음악을 들으며 미뤄둔 여행기를 계속 정리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4시가 가까워오니 지루해졌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마을이나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마을은 크지 않아 내가 첫날 돌아본 반대 방향 주택가 쪽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골목을 들어서자 마을은 한적했다. 대충 어제 내가 갔었던 대성당이 있는 광장 쪽으로 방향을 잡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다녔다. 집들은 대체로 잘 단장돼 있고 차가 있는 집도 여럿 보였다. 길은 보도블럭을 깔아 차가 잘 다니게 돼 있다.
드디어 2월2일 광장 앞 대성당에 도착했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성당은 사람들이 꽤 드나들고 있었다. 나도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중앙 설교단 벽면이 금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성당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 성스런 기도를 올리고 있다. 나도 앞쪽 한 자리를 차지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우선 지금까지 무탈하게 여행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일정도 잘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올해 신의 뜻에 따라 살겠으나 만약 내가 하려는 일이 신의 뜻에 합당하면 꼭 이뤄주시기를, 또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도 건강하고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일 볼리비아를 떠나기 전 좋은 사람을 만나 가난한 이들에게 쓰이도록 적은 돈이라도 기부할 기회를 달라고도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맨 앞자리에서 기도하는 세 수녀님을 봤다.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영어를 하실 줄 아느냐고 했더니 모릇신단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한하게 몇 개의 단어로 내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 것과 페루에 사신다는 이들 수녀님들 중 한분이 '김'씨 성을 가진 한국인 수녀님을 아신다는 내용으로 서로 얘기했다. 그리고 내게 카톨릭이냐고 물으셔서 그냥 하느님을 믿는다고 했더니 마리상이 새겨진 팬던트가 달린 하늘색 실 목걸이를 하나 목에 걸어 주시며 나를 보호해 주실 거라고 하신다. 나는 그저 감사 인사를 할 뿐 고마움을 더이상 표현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성당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기로 했다. 내가 즉석 사진기로 함께 찍은 사진을 드렸더니 아이처럼 모두 좋아하신다. 그리고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수녀님께서 함께 식사하러 가자는 제안을 하신다. 순간 너무 고마운 일이나 미안해서 잠시 망설였으나 성당 앞에서 젊은 청년 하나에게 영어 통역을 부탁해 꼭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 그러니 함께 식사를 하자신다. 나는 그러마고 대답하고 청년에게 적지만 얼마의 돈을 기부할 테니 가난한 사람을 돕는데 써 달라고 통역을 부탁했다. 수녀님들은 내 제안을 받아들이셨고 좋은 곳에 쓰겠다고 하셨다. 
  수녀님들은 나를 생각해서인지 굳이 피자집으로 갔다. 코카콜라에 피자 두 조각씩을 나눠 먹은 후 서로 이메일도 주고받고 각자 휴대전화로 서로 사진도 찍었다. 식당에서 나는 아까 얘기한 대로 적은 돈이지만 50$을 드렸다. 수녀님들은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하셨다. 식당을 나와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미리 예약해 둔 차가 수녀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라시아스(고마워요)', '아디오스(안녕히 가세요)'를 여러 번 말하고 포옹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러자 제일 연장자이신 수녀님은 쓰고 계시던 밀집 모자를 벗어 내게 씌워 주셨다. 페루 푸노 근처에 사신다는 이분들은 기회가 닿으면 꼭 들르라는 말을 남기시며 차로 가신다. 마지막 차에 오르면서도 여러 번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인사해 주셨다. 나도 차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배웅해 드렸다.

(↑마을 대성당) 

(↑수녀님들과 함께)

 

  내게 여행은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보다, 위대한 문화 유산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감동적이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그것도 기적처럼 성당에서 기도한 지 10여 분만에 내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올해도 크고 작은 일이 있겠지만 그분들의 축복 덕분에 내게도 행운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고마운 분들, 안녕히 가세요. 아디오스!
 수녀님들과 헤어져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식당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나는 어제부터 눈여겨 봐 둔 커다란 옥수수 뻥튀기를 5B에 한 봉지를 샀다. 겉에 단 것을 묻혀 그런지 바삭하지는 않으나 맛은 우리 것과 비슷했다.
  다시 발길을 호숫가로 돌렸다. 오리배가 많이 띄워진 쪽으로 갔더니 어린이용 놀이 시설도 있고, 부산에서도 볼 수 있는 해변 포장마차 같은 식당들이 죽 늘어서 있다. 한적한 오후 시간을 즐기려는 가족 단위 유람객들이 많이 보였다. 해가 질 시간이라 황홀한 석양을 보려 기다렸으나 하늘이 구름에 가려 채도를 달리한 푸른 빛과 연회색 사이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결국 티티카카 호수에서의 일출과 일몰은 포기하고 떠나야 할 것 같다. 7시가 채 안 돼 숙소로 돌아와 잘 터지지 않는 와이파이에 몇 사람에게 카톡으로 안부를 전했다. 이제 정말 우리나라도 이곳 시간으로도 2014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나는 내일 저녁 차로 페루 쿠스코로 간다.
 

 

 

<코파카바나 경비 : ₩60,864>

달러 : $50(≒₩54,000, 기부)

볼리비아 볼리비아노 : B44(≒₩6,864)